자신이 편집증적인 집착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면 어떤 대처를 할 수 있을까.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아수라장이라는 것을 매일 아침 목격하던 순간,
그런 발견과 자각은 분명 자신이 고집스럽게 발견하려고 했던 그 무엇을 향한 편집증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어떤 경우에도 일이 나를 압도하거나 잠식하거나 집어삼켜 버리지 못할 거란 확신도 자존감도 있지만,
가끔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뿌옇고 어두운 불안감이 닥쳐온다.
일하기 좋은 날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지만 어차피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달을 때.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상식적으로 당연하거나 중요하다고 통용되는 일 중에는 놀랍도록
불투명한 모순과 혐오가 더 많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거나 몸으로 경험할 때.
그런 생각들이 겹치면 우연히 불행해진다. 우울한 마음이야 어떻든 상관없지만 불행한 감정은 싫으니까,
화가 나니까 나름의 방법을 찾는다.
매번 우왕좌왕하며 실패해 버려서 문제지.
중요한 건 마음인데 마음은 늘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마음은 어제보다 오늘 ‘요만큼’이라도 더 잘하고 싶다.
하지만 방법을 몰라서 기분이 어두워질 땐 좋아하는 것들을 보고 듣고 만진다.
아끼는 영화를 돌려 보고 좋아하는 사진집을 열어 보고 머리맡에 뒹구는 책을 쥐고 읽는 둥 마는 둥 한다.
쿰쿰한 책 냄새를 맡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과 마음을 조율하고 다잡기 전에 술 한잔하는 건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샴페인이나 와인은 좀 질렸고, 차라리 샘물 같은 청하는 어떨지.
다만 이 경우, 한 잔만 마셔도 산송장의 몰골로 만취해 버리거나 아무리 퍼마셔도 정신이 또렷하다는 기묘한 부작용이 있다.
베냐민은 과거는 자신을 구원함으로써 완전해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럴싸해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 다시 보니 그의 말은 어딘지 의아하고 엉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그 말이 어느 정도 옳다고 생각한다. 그는 어쩌면 미래로서의 과거를 말하고 있는 것 아닐까.
과거에 예정되어 있었으나 봉쇄되어 버린 미래, 그런 미래로서의 과거 말이다.
그 미래를 소생시키기 위해 우리는 다시 또 과거로 가야만 한다.
거기에 잠자고 있는 미래를 흔들어 깨워 일으켜 세우는 일이야말로
과거를 소중히 기억하는 일이다. 그래야 기억은 역사가 된다.
낮과 밤이 뒤바뀐 마감 기간, 해가 다 뜬 아침에 겨우 눈을 붙이려고 침대 속에서 펼친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생각하는 자에게 하나는 둘로 쪼개진다.” 잠결에 받아 적은 내용이라 정확하지는 않다. 핑계는 만들 요량이면 얼마든지 있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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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 그리 싫다던 샤넬은 오랫동안 살아온 파리 리츠 호텔에서 일요일에 죽었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가 숭배하던
흰 꽃을 바쳤지만, 오직 루키노 비스콘티만이 새빨간 꽃을 놓고 갔다. 내일, 아니 오늘은 일요일.
최지웅
Choi Jiwoo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