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EDITOR’S LETTER

202205 #183

By EDITOR'S LETTER

 

불과 일주일 전, 할머니와 헤어졌다. 새까만 컬 헤어에 붉은 립스틱을 바른, 영정 사진 속 할머니. 낯설다.
가족이란 뭔지. 혈연으로 묶이면 상대를 사람 대 사람, 여자 대 여자로 바라보는 눈을 가지기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선 엄마도 그렇지.
나는 이제 오십을 넘은 엄마의 마음을 같은 여자로서 얼마나 헤아렸는가, 그의 주장을 얼마나 포용했는가,
부모가 아닌 여자로서 얼마나 사랑했는가. 

휴고 우에르타 마린이 지은 <예술가의 초상>은 현 세상을 지배하는 ‘여자들’ 25인을 조명한다.
샤를로트 갱스부르부터 오노 요코, 아녜스 바르다, 그리고 좀처럼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레이 가와쿠보까지
섬세하면서도 뾰족한, 유약한 듯하면서도 대찬, 조용하면서도 강단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들.
그들 중 미우치아 프라다는 이렇게 말한다.
“패션은 자신을 똑바로 마주 봐야 해요. 현실 감각을 잃지 않아야 하는 의무를 지닐 필요가 있어요.”
1977년 파산 위기에 놓인 프라다를 살려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사명감으로 패션업계에 들어선 후
50년 가까이 수십 번도 넘는 컬렉션과 협업 속에서 그는 지금까지도 자기 확신에 대한 끝없는 의심,
시대를 향한 저항, 아름다움으로 빚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패션을 계속할 수 있는 근원은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비로소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희망 안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우린 또 얼마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했을까.
창간 14주년을 핑계로 <데이즈드>가 목놓아 외친 ‘독립’, ‘저항’, ‘자유’ 정신을 재정비하기에 앞서
지금의 우리를 어떻게 자평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진다.
그리스어로 사랑은 에로스와 아가페로 나뉜다.
에로스가 자극적이면서도 화려한, 들끓는 욕정에 가까운 본능적 사랑을 갈구한다면,
아가페는 사람과 사람 간 독립적 존재에 바탕을 둔 사랑이다.
<데이즈드>의 아가페, 이제는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이라는 가치 아래 자유를 외쳐보려 한다.
내일부터 우린 그렇게 달릴 것이다. 사랑아.

 

오유라
Yura 

202204 #182

By EDITOR'S LETTER

성수역에서 <데이즈드>까지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출근하기 좋은 길이 깔려 있다.
그래서 일부러 뚝섬역 대신 성수역에 내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출근한다. 스케이트보드가
왜 좋으냐고 묻는다면, 첫째는 타는 사람이 멋있다. 남 눈치 안 보고 보드를 어떻게 하면
잘 탈까 하는 순수하고 깔끔한 고민, 그리고 그들만의 문화를 표현하는 수많은 그래픽과
옷가지. 둘째는 수많은 시도와 실패 그리고 고통 속에 이뤄내는 단 한 번의 성공. 그 성공을
무수히 쌓아 비로소 자기만의 것으로 만든다. 처음 스케이트보드를 타다 엉덩방아를 찧었을
때 알 수 없는 개운함을 느끼곤 든 생각이, 내가 마지막으로 넘어져본 지가 언제였더라.
그땐 넘어지는 게 무섭지도 창피하지도 않았을 때.

나는 <데이즈드>에서 영상을 촬영한다. 여러 하이패션 브랜드를 찍으며 든 생각은
내가 입을 일 없는 옷,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왠지 그 옷들을 입으면 내가 변할
것 같은 느낌. 서서히 바깥부터 안쪽 깊숙이까지. 내가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할 때 겸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하이패션을 경멸하는 게 네가 생각하는 순수는 아니라고 말했다.
스케이트보드를 어떤 마음으로, 또 어떤 생각으로 타는지가 중요하다고.
그러고는 너를 잃지 말고 차근차근 쌓고 재단하라고 조언했다.

시간이 지나 내 생일. 핑크색 셀린 티셔츠를 선물 받았다. 당장 입어보라는 동료들 말에
회사에서 입어보고는 쑥스러워 얼른 벗어 대충 포장해 집으로 왔다. 분더샵 쇼핑백에
담긴 핑크색 셀린 티셔츠. 혼자 방에서 다시 입어보고 거울을 봤다. 여전히 나.
심지어 생각보다 그 옷을 입은 내가 싫지도 않았다. 피식 웃고는 다시 그 옷을 개어
스케이트보드 티셔츠 사이에 넣었다.

내일 입고 가야지, 낄낄.

 

전기성
Jun Giseong

202204 #181

By EDITOR'S LETTER

 행동

2022년 4월호 표지에 김연아를 담았다.
걸음, 눈인사, 포즈, 말씨. 연아의 몸가짐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담백했다.
안 꾸민 미소, 성긴 문장. 연아가 우리 마음의 반석이 된 데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해요. 어떤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하든 
좌절도 하고 성공도 맛보고, 롤러코스터 같은 업앤다운이 없는 인생은 없으니까요. 
스포츠 선수인 제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기억하시는지도 몰라요.”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난 2월 말, 김지수 기자의 인터뷰 기록인
을 펼쳤다.
“둥글둥글,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의 세계에선 관습에 의한 움직임은 있지만, 적어도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자가발전의 동력은 얻을 수 없어. 타성에 의한 움직임은 언젠가는 멈출 수밖에 없다고. 작더라도 바람개비처럼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자기만의 동력을 가지도록 하게.”

“나뿐이 아니네. 글을 쓰는 사람들, 한 치 더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고통을 겪게 돼 있어. 요즘엔 더하지 않나?
생각이 자랄 틈을 안 주잖아. 인터넷에 물어보면 다 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내 머리로 생각한다네.
모르는 시간을 음미하는 거야.”

 사랑

3월 둘째 주엔 에바 차우Eva Chow를 만났다.
가 칭한 LA의 컬처 퀸, 10년째 LACMA 아트+필름 갈라의 공동 의장을 역임하며
대한민국의 감각과 미감을 여실히 세상에 증거하는 시대의 아이콘.
“제 나름의 능력과 노력을 다해 아트 커뮤니티를 서포트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뿌듯해요.
더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도 많지만, 저 또한 조금이나마 사회에 환원할 책임은 있다고 생각해요.”
돌연 물었다. 마음을 다하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그 마음을 이용하면 어떻게 해요?
“아유, 이용 좀 하면 어때요. 그렇게 하도록 두세요. 그렇게 내가 도움이 됐다면 좋은 일이지요. 받은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돌아와요. 그때 나에게 돌려줄 거예요.”

봄이 완연한 어느 저녁에는 스물한 살 피아니스트 이혁의 리사이틀에 갔다.
지난해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결선에 진출해 화제를 모은 귀재다.
배꼽 인사를 할 땐 영락없이 앳되던 소년이 연주를 시작하자 무섭게 몰입했다.
대신 감정선이 좀 약했다. 슬픔을 흉내 내는 듯했다.
그런데 아뿔싸.
스무 살 청년의 슬픔이 심해 같다면 그것대로 우스울 일이다.
깊은 감정을 구태여 미래로부터 당겨와야 할까.
바로 그 순간의 우리만 표현할 수 있는 게 있다.
흉내 내는 아이는 오늘을 송두리째 잃어버린다.
깊이와 솔직함 중 내 손에 쥔 게 무엇인지 알 때.
다시 봄이 왔다.
또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우리가 만들었다. 

 

 Lee Hyunjun 

202203 #180

By EDITOR'S LETTER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하루에 한 장씩 매일 읽었다.
한 페이지를 몇 번씩 곱씹으며 읽느라 아직까지 다 읽지는 못했지만 기억에 남아 자꾸 맴도는 문장들이 있다. 
슈타인의 편지를 함께 읽으며 니나는 언니에게 말한다. 슈타인은 니나를 사랑했음해 불행했지만,
그 사랑이 그를 살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모든 개념은 반대되는 성질의 것으로 정의된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니나의 말에 크게 설득당했다.
살아 있다는 건 괴로움을 동반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두 달 전, 택시를 타고 다리 위를 지나는데 뒤 차가 살짝 받아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났다. 이달에는 화보 촬영을 마친 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반대편 차선에서 교통사고가 나 택시 뒷좌석이 완전히 찌그러진 광경을 목격했다.
사고가 난 차량은 내가 탄 것과 똑같은 주황색 택시였다. 뒷좌석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운전석에만 에어백이 터져 있었다. 설핏 젖어 있는 도로 위는 사고 차량의 잔해로 가득했다. 
그 앞으로도 줄줄이 찌그러진 차량들. 30분만 일찍 나왔으면 저 차 안에 내가 있었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니 크게 보면 삶의 반대는 결국 죽음이라서 ‘살아 있다’라는 감각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쿵쿵 쿵, 맥박이 빨라지고 손끝이 뜨거워지는 아주 섬뜩한 기분이었다.
그러니 한순간도 아쉬움을 남기지 말자고 누군가 나를 몰아가는 신호 같았다.
니나의 말을 빌리자면 생이 나를 휘몰아치게 만드는 것일까.

2022년, 내 나이는 사람들이 예찬하는 시절의 딱 중반부로 접어들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짐작할 수 있다면 한 시절의 절반을 지나는 이 시점이 아닐까?
의미를 부여해도 이상하지 않고 이전과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혹은 달라지기 위해 결심하게 만드는 바로 이 시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할 것 같이 울렁대는 바로 지금.
그래서 작년부터 ‘2022년은 특별하게 보내고 싶어.’ 그렇게 노래를 불러댔다.
그래서인지 아쉬움이 남는다는 말이 참 싫었다. 해묵은 감정을 남기며 지나간 시간에 미련을 두고 싶지 않았다.
지금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 좀 더 후련하게 살고 싶다. 
좋든 싫든 <데이즈드>에서의 모든 과정은 불안으로, 긴장으로, 걱정으로 계속해서 심장이 뛰게 하니까.
그래서 온몸에 피가 돌고 감각이 날카로워진다. 손끝이 저리고 안절부절못하니까 움직이지 않고선 참을 수 없는 거다.
그래서 계속 달리고 또 뛰게 된다. 불안한 울렁임과 귓가에 울리는 심장 소리. 딱 살아 있다는 기분이다.
그래서 심장이 쿵 떨어지는 그 순간에, 모든 감각이 여기야라고 말한 듯하다.

202203 #179

By EDITOR'S LETTER

  “Who’s That Pokémon?” 
나와 피카츄.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밝고 경쾌한 샛노란색 보디, 
귀여움을 배가하는 빨간 볼, 그리고 상징 같은 번개 모양 꼬리. 
그 어떤 강력한 포켓몬Pokémon이 등장하더라도 
자신만의 존재감과 고유함을 잃지 않는 캐릭터.

누구나 이 정도 얘기하면 바로 피카츄인 걸 알겠지?
왜 그토록 피카츄를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겠어.
그냥 왜 그런 거 있잖아. 언제 어디를 가든 함께하고 싶은 그런 대상.
아무것도 아니지만 같이 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그런 존재.

나는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어.
형제들에 둘러싸여 형성된 기질 때문에
누구에게나 사랑받았을 거란 얘기도 자주 들었지.

그럼에도 나는 너무 외로웠고,
어릴 때부터 혼자서 고민하고 이겨내야 할 일이 많았어.
성인이 된 지금까지 피카츄에 남다른 애착을 느끼는 건 그 때문 아닐까?
아직도 내 방 침대 한쪽엔 여러 피카츄 친구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
피카츄와 리바이스가 컬래버레이션한 청바지도 가지고 있는데,
그걸 입으면 왠지 든든해.

어느덧 <데이즈드>에서 3년 차에 접어들었어.
언제 어떻게 이렇게까지 이 공간에서 지내왔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왔고, 제법 멀리 잘 온 것 같아.
비록 누구보다 이 모든 것에 무지했던 내가,
나와 피카츄에 대한 이야기를 <데이즈드>에 쓸 날이 올 줄 몰랐어.

얼마 전에는 프라그먼트Fragment와 포켓몬이 협업해 만든 
피카츄 인형을 선물 받았어.
후지와라 히로시Fujiwara Hiroshi의 검은 번개 심벌이 새겨진 피카츄.

그래서 지금 말도 안 되게 행복해.
자랑하고 싶었어. 한정판이거든

 

 이동걸
BOSCO LEE 

202202 #178

By EDITOR'S LETTER

새벽 택시의 무서움을 안 것은 <데이즈드>에 입사한 이후다.
야근할 때면 자주 택시에 몸을 맡긴다.
택시 안 특유의 적막함이 전투적으로 보낸 하루와 대조되며 나른함 속으로 나를 이끈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목적지가 가까워지는 게 싫을 때가 있다.
그냥 어디든 계속 타고 가고 싶다.

27분. 회사에서 집까지의 소요 시간.

일 때문에 잊고 있던 것들이 밀려온다. 차창에서 흩어지는 가로등 불빛, 익숙하고도 낯선 한강의 풍경.
그 속에서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낸 나를 위한 보상 심리가 고개를 든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충동구매를 했던가.
몇 주 동안 찜해두기만 했던 코트를 샀고, 무의식적으로 인스타그램 속 곳곳에 널린 광고에 홀렸다.
어떤 날은 미뤄둔 잠을 자기도 한다.
머리를 쥐어짜던 기획안이 불현듯 떠오르기도 하고,
창밖 잠든 도시의 모습에서 내 미래를 가늠해보려 애쓰기도 한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나는 매 순간 선택한다.
그 선택의 시간이 모여 나를 택시로 이끈다. 일의 방향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나 자신이 너무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시간이 나를 어떤 목적지에 데려다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선택했고, 그 선택을 믿기로 한다.
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미래지만 내가 이 일을 사랑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나의 목적지는 내가 어떻게 느끼고 살아내는지에 달려 있다.
이제는 아무리 내리기 싫을지라도 택시는 결국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 놓는다는 것은 안다.

오늘도 새벽 택시에 몸을 맡긴다.
하루의 마지막 순간이 내게 압축해 들려주는 것을 꽤 즐기고 있는 까닭이다.

이남훈
Lee Namhoon

202201 #177

By EDITOR'S LETTER

나는 물방개야. 

동심은 무지를 동반하기 마련이잖아.
어릴 적, 한사코 나는 아니었고, 나는 지금이나 그때나 겁쟁이니까.
동네 개천에 삼삼오오 모여 물방개를 톡 터뜨리는 걸 본 적 있어.
물방개를 손가락으로 꾹 누른 그들 입장에서는 터뜨리는 거고
원치 않게 수심 위로 나온 물방개 입장에서는 터지는 거였겠지. 

숨고 싶고
도망치고 싶고
내 예민과 과민으로 시험에 들고 싶지 않고
공상과 상상을 굳이 망상보다 선한 거라고 나누고 싶지 않고
이따금 아닌 매 순간 바람처럼 증발해서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그래, 내가 나 스스로 그 세기를 조절할 수 있어서
살랑살랑했다가
휘몰아도 쳤다가
연하고 유하고 부드럽게, 세차고 모질고 표독스럽게 

수심 위로 날 올리지 마.
뻐끔뻐끔 살게 내버려둬.
터트릴 거잖아.
알아. 

내가 물방개였으니까.
터져버린 물방개를 보고 시시덕거리던 그 시절 개천 애들처럼
킥킥거렸겠지.
치졸하고 처절하며 처참해. 

새 집에는 우선 암막 커튼부터 달아야겠어.
지금보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보다는
잠을 더 잘 필요가 있어. 

내가 꽤 오랜만에 레터, 이 지면으로 돌아온 이유는
2022년 1월호라서야.
맞아,
희망, 사랑, 유대, 뭐, 그런 따뜻한 감정을 나누고 싶어서. 

그런데 혹시 물방개가 날아? 날기도 해? 날개가 있어?

 

 이겸
李兼
Guiom Lee 

202112 #176

By EDITOR'S LETTER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거리에는 연말 분위기가 물씬하던 이맘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얄팍한 패션 지식으로 온몸에 흐르던 땀을 숨기며 면접을 보던 날. 머릿속이 새하얘져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난 항상 나에 대한 질문으로 넘쳐났고, 이제껏 못난 답변으로 대변하던 스스로를 질척거리지 않게 한마디 한마디 충실히 대답했다.

꽤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던 나를 담백하게 설명하는 건 말이다. 운이 좋았는지,
소같이 일하게 생긴 증명사진 덕분이었는지 와 함께하게 되었고, 오늘로 꼬박 1년 하고도 한 달이 조금 넘었다.

무지한 열정을 다독이며 옆 동료들을 따라도 해보고, 그 아류가 되는 건 아닌지 주제 넘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힘들다고만 생각한 시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 시간들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라 마음속에 정의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거라는 명확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건 앞으로도 큰 숙제가 될 것 같지만 어쩐지 두렵지는 않다. 
안에서라면. 왠지 이 여정에 흠뻑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나만의 기호(嗜好)를 펼쳐가면 된다는 걸 배웠다. 
용기와 담대함 그리고 격심해도 닳지 않을 사랑.

 박기호
Park Kiho

 

 패션이라는 물살에 이끌려 정처 없이 항해하다 표류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어떠한 파도가 몰아쳐도 그게 패션과 관련한 것이라면 상관없었다. 그저 이유 없이 패션이 좋았다.
이런 생각은 중학생 때부터 지속되어왔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입사 동기인 기호와 ‘동시대적 움직임’에 대해 자주 얘기하곤 한다.
누구보다 앞서야 하고, 같은 걸 보더라도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고.
때로는 얼굴 전체보다는 눈 옆에 있는 작은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이다.

나 또한 시야가 좁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을뿐더러 평면적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다.
입체적이고 다각적인 시야로 패션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이제 막 에 입사한 지 1년이 되었다.
촬영 준비와 본촬영 그리고 원고 작성을 하며 매일매일을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멀어져 있음을 강렬하게 느끼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핑계로, 좋아하던 전시회나 갤러리 방문, 영화 감상과 책 읽기를 일절 멈췄다.
그저 침대에 누워 핀터레스트와 인스타그램에 의지하며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영감을 받으려 아등바등하고 있다. 
나를 발전시키는 데 매우 소홀해진 것이다. 게을러진 내 생활을 스스로 반성하며 다가오는 2022년에는 좀 더 적극적이고 
부지런히 살기로 다짐한다. 본질에 더욱 근거해 의미가 담긴 행동들 말이다.

2022년에도 여전히 촬영이 끝난 뒤 네댓 시간 동안 죽음의 세레나데를 부르며 수십 벌의 옷을 패킹하는 날이 계속될 것이다.
그동안 비록 몸이 고되고 눈앞에 수북이 쌓인 옷을 보면 정신이 아찔할 때도 있었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결과물로 움츠러드는 순간도 많았다. 
어쩌면 행복한 순간보다 힘들고 괴로운 순간이 더 많았음에도 에 온 것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저 앞으로 더 다양한 것을 접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앞으로 어떤 존재로 에서 살아가야, 살아남아야 할까? 이 질문을 여전히 좇고 있으며, 어쩌면 영원히 지속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라는 울타리 안에서 발아하는 내가 앞으로 어떠한 새싹으로 자라날지, 어떠한 양분을 먹으며 점진적으로 자라날지 
나 자신도 궁금해진다.

이승연
Lee Seungyeon

202112 #175

By EDITOR'S LETTER

변화하지 않는 것은 변화밖에 없다.
누가 얘기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누가 얘기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현재 내가 변화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메타버스, NFT, 수소경제, 탄소중립 등 불과 몇 년 전까지는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말이 
바로 옆에서 사용되고 있고,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렇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중요하게 생각하던 것 
역시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있고, 중요도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 가 화제다. 스트리트 댄서들의 경연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모든 방송사를 온통 이들이 도배하고 있다.

나는 이런 현상에서 두 가지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첫째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다양해지고 있고, 그전까지 중요하게 생각하던 것에 대한 변화가 있다는 점이다.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누구나 아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기르고, 아파트 한 채 소유하고 
노후를 준비하는···. 이런 틀에 박힌 ‘잘 산다’는 것에 대한 가치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중요하지 않았고
눈길조차 받지 못하던 것이 관심을 받고 그로 인해 부를 얻을 기회가 찾아오고, 다시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우리의 가치관이 변화했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고, 새로운 기회로 여기게 된다는 점이다.

둘째는 어느 분야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집중하면 기회가 온다는 점이다.
1세대 댄서들은 방송을 통해 자신이 처음 춤을 시작한 때의 어려움에 대해 얘기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부모님조차 평범한 삶을 
살라고 애원하고. 하지만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고 노력하며 사는 것에 의미를 두었고, 이제 그 시간이 온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어려웠던 과거를 후배들에게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경연에 참가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기회로 이용한 것이 아니기에.

이 두 가지는 자기 자리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현재 남들이 인정하는 것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하면 자신의 시간이 왔을 때 기회가 되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최근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한 제한 조치가 완화된 시점에 소풍과 운동회를 의미하는 ‘소동회’의 이름으로 워크숍을 했다.
이번 워크숍의 룰은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간 나이와 역할, 관심사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거나 
자주 볼 수도 없던 우리가 갑자기 존댓말을 하지 않는 것은 사실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말을 아끼는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단어로만 의사를 전달하는 것으로, 나중에는 어색한 반말로 소동회를 마무리했다. 현재는 업무에 복귀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나는 이번 시도에 매우 만족한다. 사용하는 말로 인해 갇힐 수 있는 사고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현재 새로운 세대가 사고하는 것에 아주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한 변화가 필요하고, 내가 변화해야 하는 데 이런 기회들이 나만의 결심에서 비롯되는 한계에서 
벗어나 환경 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나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곳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변화하려 하지만 개인의 결단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지속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경험한 어려움에 대한 보상을 떠올리거나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결정권자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작게나마 시작되었고, 이어가려 한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 있다.

202111 #174

By EDITOR'S LETTER

 1
epilogue
to survive, not survive

시작이 그러했습니다. 
10여 년 전 패션 매거진에 들어설 당시, 
페이퍼 매거진의 미래는 디지털에 의해 운명이 결정될 거라 예측됐습니다.
그리고 실제도 그러했습니다. 

살아남거나 혹은 사라지거나.
수많은 매체가 폐간의 수순을 밟고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반면 새로이 강자 타이틀을 달고 보다 단단하게 입지를 굳히는 곳도 존재했습니다. 
디지털과 페이퍼를 대립 관계로 받아들인 곳은 도태했고, 
협력 관계에 선 곳은 여전히 우리 곁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동일한 시대의 흐름을 탔지만 살아남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태도’는 분명 달랐습니다. 

2
old and new

삶에 있어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것에 직면합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전에는 없던 것이 최근 생겼거나 만들어졌거나 도입되었거나 한’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new’는 ‘old’를 전제로 하기에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old and new = 공생관계
공존과 상생은 서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을 근간으로 합니다. 
과거(old)는 미래의 자원이고, 새로움(new)은 과거의 결과입니다.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만이 공생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3
prologue
restart, we will survive

공식적으로 11월 1일부터 ‘위드 코로나’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눈앞에 다가온 미래는 팬데믹 속에 억눌려 있던 포텐이 터지면서 과거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할 것입니다.
(침체된 지난 1년 반 사이, 유일하게 활기를 띤 디지털 세상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테지요.)

새 시대의 변화를 앞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태도’가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은 2021년은 기존의 것을 존중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 
‘태도’를 갖추는 데 집중하려 합니다.
언제나 곁에 함께하기 위해,

이제 다시 ‘시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