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거리에는 연말 분위기가 물씬하던 이맘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얄팍한 패션 지식으로 온몸에 흐르던 땀을 숨기며 면접을 보던 날. 머릿속이 새하얘져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난 항상 나에 대한 질문으로 넘쳐났고, 이제껏 못난 답변으로 대변하던 스스로를 질척거리지 않게 한마디 한마디 충실히 대답했다.

꽤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던 나를 담백하게 설명하는 건 말이다. 운이 좋았는지,
소같이 일하게 생긴 증명사진 덕분이었는지 와 함께하게 되었고, 오늘로 꼬박 1년 하고도 한 달이 조금 넘었다.

무지한 열정을 다독이며 옆 동료들을 따라도 해보고, 그 아류가 되는 건 아닌지 주제 넘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힘들다고만 생각한 시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 시간들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라 마음속에 정의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거라는 명확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건 앞으로도 큰 숙제가 될 것 같지만 어쩐지 두렵지는 않다. 
안에서라면. 왠지 이 여정에 흠뻑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나만의 기호(嗜好)를 펼쳐가면 된다는 걸 배웠다. 
용기와 담대함 그리고 격심해도 닳지 않을 사랑.

 박기호
Park Kiho

 

 패션이라는 물살에 이끌려 정처 없이 항해하다 표류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어떠한 파도가 몰아쳐도 그게 패션과 관련한 것이라면 상관없었다. 그저 이유 없이 패션이 좋았다.
이런 생각은 중학생 때부터 지속되어왔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입사 동기인 기호와 ‘동시대적 움직임’에 대해 자주 얘기하곤 한다.
누구보다 앞서야 하고, 같은 걸 보더라도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고.
때로는 얼굴 전체보다는 눈 옆에 있는 작은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이다.

나 또한 시야가 좁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을뿐더러 평면적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다.
입체적이고 다각적인 시야로 패션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이제 막 에 입사한 지 1년이 되었다.
촬영 준비와 본촬영 그리고 원고 작성을 하며 매일매일을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멀어져 있음을 강렬하게 느끼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핑계로, 좋아하던 전시회나 갤러리 방문, 영화 감상과 책 읽기를 일절 멈췄다.
그저 침대에 누워 핀터레스트와 인스타그램에 의지하며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영감을 받으려 아등바등하고 있다. 
나를 발전시키는 데 매우 소홀해진 것이다. 게을러진 내 생활을 스스로 반성하며 다가오는 2022년에는 좀 더 적극적이고 
부지런히 살기로 다짐한다. 본질에 더욱 근거해 의미가 담긴 행동들 말이다.

2022년에도 여전히 촬영이 끝난 뒤 네댓 시간 동안 죽음의 세레나데를 부르며 수십 벌의 옷을 패킹하는 날이 계속될 것이다.
그동안 비록 몸이 고되고 눈앞에 수북이 쌓인 옷을 보면 정신이 아찔할 때도 있었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결과물로 움츠러드는 순간도 많았다. 
어쩌면 행복한 순간보다 힘들고 괴로운 순간이 더 많았음에도 에 온 것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저 앞으로 더 다양한 것을 접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앞으로 어떤 존재로 에서 살아가야, 살아남아야 할까? 이 질문을 여전히 좇고 있으며, 어쩌면 영원히 지속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라는 울타리 안에서 발아하는 내가 앞으로 어떠한 새싹으로 자라날지, 어떠한 양분을 먹으며 점진적으로 자라날지 
나 자신도 궁금해진다.

이승연
Lee Seungy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