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온다
내게는 쉰두 살 먹은 사진가 친구가 있다. 눈이 펄펄 내린 날,
그가 사는 서래마을 대저택에 눌러앉아 늦도록 트러플 새우깡에 펩시 제로를 마셨다.
그가 날 이렇게 바라보더니 그랬다. “넌 기복이 없어서 좋아. 배배 꼬인 게 없잖아.
네 엄마, 아빠가 널 아주 많이 사랑해서 그럴 거야. 사랑받고 자란 애는 달라. 티가 나.” 어렴풋이 웃고 말았다.
어린 시절 내 얼굴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탓은 아닐는지. 망각은 참으로 편리해.
이달 인터뷰한 <애프터썬>의 샬럿 웰스 감독이 샹탈 아커만이라는 이름을 말했을 때, 그가 죽기 전에 만든 영화 <저기>를 생각했다.
이 질식할 듯한 롱테이크가 작렬하는 영화는 오직 블라인드가 드리운 텔아비브 어느 아파트의 바깥과 안의 풍경만으로 이뤄져 있다.
영화의 끝에 이르러서야 관객은 저 멀리 거울에 비친, 그러나 어떤 초점도 없이 나타나는 거무튀튀한 형체로서의 인물,
샹탈 아커만을 보게 된다. 영화를 보며 이 영화가 몇 개의 샷으로 이뤄져 있는지 셈을 하려다 포기해 버렸다.
서른? 아니면 마흔? 아마 그 어느 즈음일까. 모르겠다. 우리는 오직 샹탈 아커만의 얼굴 없는 목소리만을 듣는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자란 그는 단지히에서 이스라엘로 넘어가려다 일자리와 안전이 보장된 브뤼셀로 이주한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지중해의 그 도시로 향했다. 그는 가만히 앉아 자살을 선택한 고모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반유대주의에 관한 책을 읽고 히브리어를 떠올리며 하염없는 무력감을 고백하고,
집 근처에서 벌어진 살인 테러에 관해 말한다. 이 영화는 어떤 초점도 없는 디지털 캠코더로 대상을 기록한다.
초점 없는 흐릿한 눈길. 관객은 블라인드를 통해 비친 평평하고 밋밋한 화면의 어떤 귀퉁이에서
차를 마시거나 화초에 물을 주거나 하는 인물을 찾아보고 잠시 그곳에 시선을 집중한다.
이 초점 없는 화면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 영화를 보며 나는 내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졸음과의 혈투를 벌이며 답을 찾으려 했다. 모르겠다.
아무튼 우울증이라는 구덩이에 빠진 젊은 아빠와 어린 딸의 짧은 여름휴가를 캠코더로 간직한 <애프터썬>의 햇빛과 뒷모습,
어떤 디졸브는 마치 거울을 보듯 민망하고 아파서 눈물조차 나질 않았다.
나 역시 “Don’t trust over thirties” 어쩌구 하며 서른을 넘기 전에 사라질 것처럼 공언하던 때가 있었다.
자살을 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서른 뒤의 삶은 기생일 뿐이라는, 그래서 죽음과 진배없는 삶일 것이라는
자기 자신을 향한 몹쓸 저주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젠 서른도 그 끝자락에 와 있다.
맙소사, 그런데도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으며 삶을 돋울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접지 않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내게 아이가 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고, 원통해진다.
난 아마 그 아이를 키우며 제 삶을 키웠을 것이다. 늙은 자들은 그렇게 삶을 연명하는 것 같다.
그토록 몇 년간 아이를 기르고 싶어 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바쁘다는 말로는 부족한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 쓰라는 원고는 단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어영부영 취해 소파에 누워
<일타 스캔들>과 <대행사>를 필두로 한 밀린 드라마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던 때,
5년 전 일기가 적힌 새벽 문자 한 통을 받고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다가 냉장고 속 청하를 탄산수처럼 벌컥벌컥 들이켰다.
5년 전 일기는 아래와 같다.
“집으로 가는 취한 택시에서 무턱대고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태원 영이네에 마주 앉아 꼬막을 주워 먹었다.
잠깐이었지만 나는 그를 사랑했던 것 같다. 제대로 된 이별을 고하지 못하고 뒷걸음질 친 건 그의 고통을 마주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머지않아 심하게 망가져 주저앉을 것이다. 그리고 단단하겠지. 나는 그날만을 기다린다.”
이어진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5년 전 형의 예언인데 형이 보기에 지금 나 어때? 심하게 망가진 것 같아?
내가 보니까 망가진 것 같기도 한데, 망가진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 형은 알 것 같아서.
나는 요즘 화가 많이 나는데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 가슴이 막 갑갑하네. 아무튼 그래.
따뜻한 봄 되면 밥 먹자. 지금 말고.”
내 예언은 단 한 번도 들어맞은 적이 없으니까.
감정이 달라지는 건 당혹스럽지만, 그 마음만은 정직하다. 어떤 것에 대한 애정은 갑자기 피어나고 또 사라지기도 한다.
2월 어느 날, 이제 겨울은 완전히 끝났다고 느끼는 것처럼. 그게 뭐라고 좋은 마음을 먹는다.
최지웅
Choi Jiwo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