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렇지도 않지만 언젠가 이별이 슬퍼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우연히 차이밍량의 <애정만세>를 보았고, 죽고 싶었다.
슬플 땐 눈에 보이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파리행 비행기 안에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나쁜 교육>을 다시 봤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하면
나는 언제나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를 맨 먼저 생각한다. 언제부터일까, 이별 이후엔 그의 영화만을 찾아보겠다고 다짐한 시절이 있다.
그의 영화는 슬픔을 위안해 주기는커녕 이별을 시시하게 만들어버리는 묘한 재능이 있기 때문이다. 열광적인 파괴로 끝나는 사랑과 달리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주인공은 사랑의 파괴적인 힘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다문화적 관용의 시대와 동성애 혐오의 시대 사이에 놓인 어떤 역사적
거리와 상관이 있는지도 모른다. 기숙학교에서 질식할 듯한 성적 학대를 당해야 했던 소년과 무력하게 이를 관망해야 했던 다른 소년의 사랑,
그리고 지금은 커밍아웃하고 분방한 삶을 사는 게이 감독과 소설가가 되려는 어느 성전환자 애인 사이에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역정이 겹쳐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짐작한다.

그 목소리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냉담하게 떨리는 이상한 발성. 머리에 커다란 뿔이 솟은 노루의 눈망울처럼 구슬프게 아름다웠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심장에 멍이 들 것처럼 아팠다. 모르는 나라의 민요와 끈적한 블루스와 다 산 사람의 한숨을 한데 섞은 것 같은
앤터니 앤 더 존슨스의 노래를 하필이면 파리에 도착해서, 마음이 무너지기 좋은 깊은 밤에 우연히 다시 들었다. 거의 10년 만에. 밴드의 보컬인
앤터니 헤가티는 암스테르담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열두 살 때 처음 노래를 만들었다고 알려진다. 그의 첫 노래는 짙은 화장을 한 사람들이 거대한
거미에게 저항하는 내용이다. 어른이 되어 뉴욕에 정착한 다음 게이와 트랜스젠더, 무섭고 더러운 유머로 가득한 피라미드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가 보이 조지와 루 리드, 앤 드뮐미스터의 광팬이란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그를 더 사랑하게 된 셈이다. 사람이 얼마나 아픈 일을 겪으면,
그걸 다 견뎌냈으면 저런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한참 생각했다. 그의 노래를 듣다가 파리 길바닥에서 그냥 콱 죽어버려도 좋을 것 같다.
그런 마음이 든다. 이상 그냥 다 헛소리.

파리의 작은 호텔 방에 앉아 쫓기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새로운 시즌을 선도할 컬렉션을 쫓아 다니며 하품하거나 눈을 뜬 채 졸거나 혀를 차거나 저 재능과 끼는 뭔가 싶어 배가 아파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되거나 번뜩이는 순간을 지나치거나. 패션이 지겨워졌다가 이내 우러러보는 모순을 반복 실행 중이다. 틈틈이 사랑과 혁명에 관한 생각을 하면서. 요지는 간단하다. 나는 사랑과 혁명이 살아야 할 유일한 이유라고 주장한다. 사랑과 혁명은 서로 호환할 수 있는 동일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혁명은 아주 희귀하게 나타나는 사태다. 그러므로 혁명이 부재하다고 해서 절망에 빠질 이유는 없다. 우리는 그것을 평생 만나보지 못한 채 죽을 수 있고, 그렇다고 해서 비루한 삶을 살았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사랑이 희박해 보이는 세계에 살고 있다면 어떨까. 그것은 황량하고 공허한 세계에 살고 있다는 말에 불과할 것이다.
긴 터널도 반드시 끝이 있을 것이라는 맹목의 믿음.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냄새 맡고 싶고 온종일 꽉 껴안은 채 죽은 듯 함께하고 싶은 그리운 당신에게. 에르메스 쇼장으로 향하기 직전, 파리에서.

 

최지웅
Choi Jiwo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