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원고 마감이 늦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고질병이다.
써야 할 양이 절대적으로 많든 적든, 촬영이 많든 적든, 출장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딱 그만큼 마감이 늦는다.
그쯤 되면 해야 할 일을 앞에 두고 척추를 늘어뜨린 채 가만히 앉아서 생각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아.
어떤 습관은 천성과 같아서 누가 누구를, 무언가가 또 무언가를 달라지게 하거나 나아지게 할 순 없어.
행동은 세상을 인식하는 태도. 행동이 습관이 되는 건 반복 때문이야. 반복을 통해 얻은 나쁜 습관을 못 고치는 건 따지고 보면
마음이 그걸 좋아하기 때문이지. 다시 좋은 습관을 지니려면 또한 고통스러운 반복이 필요한데, 천장 보고 누워 있고 싶은 본능과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싶은 마음은 마감보다 우주보다 힘이 강하니까. 이런 식의 자기 위안에 빠져 있다 보면 환멸을 못 이겨 폭식하거나 구토하고 말 것 같다. 두 가지 반응 다 그다지 세련되지 않은 구식이라는 걸 알지만, 동시에 인간은 완전하지 않고 죄 또한 많다는 괜한 동정심이 깃든다.
용서만이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다는 하나 마나 한 속 편한 소리나 죽음으로 씻지 못할 죄는 없다는 성인의 말씀?
어휴, 됐다 그래. 다 필요 없어. 꺼져. 지겨워.
그토록 날카로운 날, 살갗에 닿는 바람이 한결 온화해진 이후 창밖을 자주 보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밤에. 매일 보는 풍경이어도 매번 달랐다. 어둠의 깊이와 밀도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가 되었고, 나무는 대체로 어떤 사물로, 드물긴 하지만
가끔은 온전한 나무로 보였다. 뜨거운 샤워 후 촉촉한 감촉을 느끼면서 새까만 밤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웬일인지 신경이 부드럽게 풀린다.
한낮의 격한 울분, 두통, 경멸은 흐릿해지고 때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분노를 직면해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라는, 그럴듯한 이성 대신 그런 품위 없고 어리석은 감정이야말로 버리는 게 상책이라는 답 없는 낙관의 기분마저 든다.
쉬이 잠들지 못한 채 밤에 깨어 있는 시간은 늘었지만 술은 덜 마시게 되었고, 정기적으로 불쑥 치밀어 오르는 절망적인 기분의 시간도
차츰 줄어들었다. 입춘이 지난 며칠 전 밤은 유난히 어두웠다. 창밖의 은행나무 군락은 평소와 다르게 싸늘하고 냉정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밤의 부드러움에 취해 곁에서 서성대기만 하다가, 그러다가 밤이 곧 끝나버리고 말겠군.
푸른 밤에는 주로 영화를 본다. 혼자서. 일본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감독 중 가장 좋아하는 이는 단연 데라야마 슈지다.
그가 1971년에 만든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는 잔뜩 선동적인 제목을 붙인 허무주의에 심취한 철부지 아나키스트의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다시 볼 때마다 매번 통렬하다. 먼발치에서 세상을 향해 훈수 두는 것이 아니라 살갗에 바로 닿을 듯이 붙어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에 주목한다. 영화가 끝나갈 즈음 주인공 소년이 성난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듯이 카메라를 향해 퍼부어대는 대목에서
쨍한 마음과 태도가 된다. 콜라병에 갇힌 도마뱀!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를 보고 나선 밤. 종로3가 맥도날드 앞에 혼자 홑겹 우비를 입고 서 있는데 와우, 기분 참 야하더라.
비는 억척스러웠고, 살아야겠다는 몸부림과 사라지는 세계가 짬뽕이 되어 질척이는 우주가 약 먹은 것처럼 두둥실.
최지웅
Choi Jiwoo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