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찾는다.
진심으로 나와 함께해 줄 친구를 찾고 있다.
오죽 간절하면 이 가치 있는 지면을 빌려 부탁할까. 이해를 바란다.

노력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10년 전인가. 인터넷 동갑 모임에 참여해 본 적도 있고
친구라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 사정은 고려하지 않은 채 투자도 해봤고 마음이 통하는 것 같은 상대에게 눈에 불을 켜고 우정을 구걸한 적도 있다.

문제는 나다.

오래가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초등학생 시절부터 그랬다. 학기마다 친구가 달랐다.
뭔가 지친 느낌이 들면 연락을 끊거나 피했다. 도망 다녔다.
대학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1, 2년 잘 지내던 무리를 떠나 잠적하길 반복했다. 당하는 쪽에서는 별안간이었을 거다.

사회에서는 일과 생활의 경계를 나 스스로 무너뜨렸다.
20대는 그래도 꽤 괜찮았다.
‘패션’이라는 틀 안에서 같은 꿈을 꾼 동지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낮으로 시시덕거렸다. 돈 한 푼 없어도 그저 세상이, 패션계가 온통 별천지였다.

30대에 들어서면서 증상이 발현됐다.
월간지의 특성상 일하다 보면 매달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이 사이클 자체가 내 본질에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졌다. 1월호 친구, 2월호 친구, 3월호 친구···. 과장을 좀 보태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일과 연관된 사람 이외의 관계 맺기가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결정타는 30대 중반이었다.
꿈에서조차 꿈꿔 본 적 없던 사업을 시작하면서다.
작정한 게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시작한 것이었으니 처음에는 몰랐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반드시 잃게 된다는 것,
내 편을 택하면 동료의 적이 될 수 있다는 것,
성공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

지금 알고 있는 것의 단 0.1%만이라도 미리 알았다면 절대 시작하지 않았을 것을.

6년이 흘렀다.
지금 곁에 아무도 없다.
오로지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
삶은 먼지보다 못한 자국에 불과하다는데, 나 또한 그 찰나에 갇혀 있다. 누구도 구원할 수 없는 헛발질.
너희의 일탈을 함께할 수 없듯 나는 고독이라는 천벌을 받고 있다. 안다.

“왜 이렇게 멍을 때려?”

어제도 이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저 멀리서 친구가 보여서요.’

헛것이다. 아닐 수도 있다. 아니어야 한다.

이겸
李兼
Guiom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