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험해지고 불안해질 때 그건 언제나 무엇에 대한 반동이다. 그 무엇에 관해 알기를 포기하거나 기피하는 것이다. 음험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은 채 부릅뜨고 볼 수는 없는 것일까. 히스테리처럼 누군가의 안색을 살피고, 자신을 생쥐 취급하며 타인에 의해 잠식되어 잡아먹히기를 기대하는, 기다리는 싹수없는 마조히즘. 그것이 어쩌면 나의 본성인지도 모를 일이다. 전능한 척하다가 전무한 척 꾀피우며 앓아눕는 일. 절대적으로 윤리적인 척 고고한 얼굴을 하다가 갑자기 모든 악덕의 편에 뛰어들어 불경한 윤리적 추문을 즐기는 것. 가족 오락관도 아니고 단지 오락가락. 거지 같은 삶. 그걸 멈춰 세울 수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은 삶일 텐데. 그거 다 알고 있음. 근데 그냥 두는 것일 뿐.

만취할 만큼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술을 잔뜩 마시고 누웠더니 오한이 온몸을 훑는다. 두 시간 남짓 잠깐 눈을 붙인다. 무슨 꿈이었을까. 두 노래가 같았고, 똑같은 진실을 폭로하는 그런 불쾌한 꿈. 괘씸한 것. 고얀 것. 괴팍한 파스빈더 같은 것.

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스스로 우둔한 프롤레타리아 게이 주인공을 연기하고 또 감독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우아하고 세련된 중간계급 게이가 복권 당첨으로 벼락부자가 된 게이를 등쳐 먹고 버리는, 어쩌면 신파적인 게이 멜로다. 할리우드의 멜로 황제인 더글러스 서크를 사숙한 파스빈더의 작품 가운데 아마 이 영화가 가장 신랄할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파스빈더 식으로 살겠다고 다짐한다. 파스빈더처럼 살아도 좋을 것만 같다. 그는 계급과 사랑, 섹스, 섹슈얼리티를 파고드는 갈등과 불화, 적대를 탐색한다. 단, 정체성에 관한 지루한 농담은 금지. 어떤 의미에서 파스빈더의 지난 영화는 과거로부터 오늘에 날아온 냉정한 야유가 아닐까.

사진가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어느 자리에서
“항문에 손을 넣은 사진과 그릇 속에 카네이션이 담긴 사진 사이에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특유의 태연한 얼굴로. 아마 이 말은 그의 미학적 충동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는 듯하다. 포르노그래피적인 것을 예술이라고 우기기는 쉽다.
쉬워도 너무 쉽다. 그러나 둘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하며 예술이 휘두르는 밥맛 없는 권위에 저항하는 것은 무정부적인 반항에 그친다.
그러나 메이플소프는 여봐란듯이 그를 성취한다. 그의 가장 중요한 사진 프로젝트라고 할 만한 ‘XY포트폴리오’는 성적 이미지와 꽃의 이미지를
병치한다. 성적인 것과 미적인 것을 등가화 하는 것이다. 메이플소프는 자신의 사진이 포르노그래피의 단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실로
자신의 사진에 극도로 건전한 정물성을 부여한다. 성적인 것과 미적인 것을 등가화하기 위해 둘을 같은 대상으로 나란히 두고 바라보며
호환할 수 있는 것쯤으로 능청스럽게 양식화하는 일.

4월에는 고약한 주제에 사랑스러운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회고전이 열리고, 이를 기념하며 MISBHV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을 갖다 박은 티셔츠를 파페치에서 대량 구매했다. 영문 없이 콧속으로 흘러 들어온, 흐릿한 복숭아 냄새가 나는 그의 하얀 배꼽에 코를 푹 박고선.

나의 귀여운 따봉 슬라임아, 우리 그거 나눠 입고 같이 극장에 가자. 못생긴 파스빈더를 만나러.

 

최지웅
Choi Jiwo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