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은 잴 수 없는 것

이라, 에밀리 디킨슨은 말했다.
고독, 외로움, 은둔, 적막 같은 단어는 어쩌면 자유와 독립, 해방을 낳을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 하나로 스스로를 방치했다. 그렇게 살았다.

위 제목으로 된 그의 책 첫 장을 열면 다음의 시가 가슴을 묵직하게 때린다.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사랑이 참 그렇대. 네 그릇은 어떤 모양이고 얼만큼 담을 수 있겠니? 내 몫은 손톱달 같아서, 너를 담지 못하고, 나처럼 무심한 너일 뿐인데 네가 이기적이라 비난하고 탓한다. 그럼에도 이런 나를 네 그릇에 담아줄 수 있겠니?

에밀리 디킨슨의 고독은 비극이 아닌, 낭만의 한편처럼 들린다. 그가 자초한 슬픔은 살아생전 써내린 2000편이

넘는 시를 모두 흘러 되레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신념을 불러일으키고, 미묘한 감정들을 통달한 뒤 비로소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말한다. 100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현대적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는 간결하고도 건조한 문체는 또 어떤가? 단조로웠던 그의 일생에 반해 죽음과 영원, 이별과 사랑처럼 파격적인 주제를 다룸으로써 이는 상반된 문학적 전개를 이뤘고, 오늘날에도 그의 작품이 더 사랑받는 이유라고 짐작한다. 그에게 하루의 시작은 어땠을까? 매일 밤 죽음이었을까, 환생이었을까, 또는 필멸이었을까.

한편, 마크 로스코에게 가장 큰 영감이 된 책 중에는 니체의 <비극의 탄생>이 있다. 고대 그리스 비극을 그린 명화는 보는 이들을 죽음의 공포에서 구원했다는 설명이 있는데, 비극의 숭고함이 보는 이들의 감정의 골을 해결한다고 주장한다. 마크 로스코는 예술만이 정신적 공허함을 해결한다고 예술적 자기의 행보를 합리화한다. 그의 작품에서 숭고함마저 느껴지는 이유는 인간 본연의 감정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색과 면만의 본질을 담은 다층 형상의 레이어는 ‘무엇을 느끼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또 던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류이치 사카모토가 7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연초에 그가 마지막으로 발매한 앨범 <12>를 들으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 그때도 “살아남은 자는 삶이 무한할 것처럼 마구 써버린다. 그러니 사랑을 해야 한다”라고 또 써버렸다. 어제는 만우절이고,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날이기도 하다. 어젯밤 우리는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 죽음을 말하다 잠이 들었던가. 죽음이 매일 공기 중에 부유하는데, 우리는 누구를 사랑하고, 또 무엇을 포용할 수 있을까.

잔인한 4월의 시작이다.

오유라
Oh Yu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