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안이다. 정확히 1년 7개월 만에 잊고 있던 순간을 다시 맞닥뜨리는 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여전히 기압은 고막을 내리치고, 파리에서 든 사사로운 감정을 모두 끌어안은 채 서울로 향한다.
기내에서만 느끼는 우울함이 몸서리치게 싫은 것도 여전했다.
전염병은 바이러스로 불릴 게 아니라 바이러스로 매개되는 사람과 사람 간 사회적 관계를 남긴다는 말, 역시 기억한다.
출장만 가면 단절된 관계들이 있다. 고작 그 며칠이 대수냐 싶으면서도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자 아차 싶더군.
트라우마가 별게 아니다. 아직도 난 그 이유를 모른다. 누군가에겐 어떤 열과 성의를 다했든,
결국 같은 이유로 관계는 일순간 멈췄다. 손에서 열을 내던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별안간 수명을 다했을 때,
곧이어 잇따르는 불안과 허무, 초조 그리고 불쾌는 쉽게 지울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출장에서 새로 주고받는 관계도 있다.
호텔, 터미널, 공항처럼 늘 그 자리에 존재하지만 여러 사람이 나타나 머물고 다시 지나가는 임시 공간,
동시에 한정된 기간에 발현되는 새로운 순간. 이 만남은 서로 헤어질 걸 알고 반복해 되새기다 보면 순간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더없이 평범한 대화가 가장 시적인 경우가 있으며, 가장 시적인 것이 바로 글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관계 사이에 커다란 공백을 남겨두기도 하고, 이것은 어떤 의미로는 가득히 찬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삶, 이보다 더 순수한 관계가 있을까.
나는 기자라는 직업으로 일하며, 대개는 후자의 관계 맺음에 익숙해졌다. 짧고 폭발적인 감정일지라도 비교적 진실되다 말할 수 있는
그 관계가 좋다. 적어도 거짓된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도 위안받기도 하며.
파리에 가 있는 동안 크리스토 자바체프와 장 클로드 부부의 유작 ‘포장된 개선문L’Arc de Triomphe’을 볼 수 있었다.
약 2주간 은빛 포장지를 덮은 개선문이 시사하는 바는 생각보다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줬다.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이렇게 화답했다.
“미쳤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불가능한 꿈이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 나는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라 생각한다.”
전 세계를 통틀어 예술적 모험을 이토록 과감하게 행할 수 있는 나라가 프랑스 말고 또 있을까.
동시에 이 작품은 일정 기간 이후에 사라지는 대지 미술이라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있다.
값이 매겨지기보다 존재 가치를 불특정 다수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철거 바로 직전 새벽 6시에 그곳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은빛의 장대한 개선문, 그리고 그 사이로 파리한 초승달이 떴는데 그 소월이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이러나저러나 다시 파리를 찾은 건 행운이었다.
어느덧 렉스트림이 창립 4주년을 무탈하게 넘기고, 11월에 워크숍을 떠난다. 총 서른 명이 한뜻을 모아 <데이즈드>를 지키는 중이다.
아직 서로 대면식조차 하지 못한 친구도 있고, 직함이나 직책이 명확하지 않은 친구도 있다.
판권에 이름이 빠지고 추가되길 지켜보며 염려를 내비치는 사람도 있겠지. 당장 한 달 일하고 관둘지도 모르고,
몇 년을 가족처럼 보낼 사이도 될 수 있겠지만, 이 무모하면서도 불안정한 관계가 마크롱의 말마따나
패션계의 새 희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믿음. 그러면서도 동시에 각 구성원이 잃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있는데,
바로 개인주의다. 보통 회사가 집단의 한뜻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데 비해, <데이즈드>는 개개의 독립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매체다.
가장 강렬한 형태의 개인주의가 예술 형태를 띨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나.
각자의 개성, 그리고 개인주의가 모여 당대의 패션계를 교란하고 붕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얻을 때까지 힘써주길 바라며,
오늘 그 이름들을 한 자씩 남겨보았다.
<데이즈드>의 관계가 새로이 시작됐다.
오유라
Yura O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