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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202111 #173

By EDITOR'S LETTER

비행기 안이다. 정확히 1년 7개월 만에 잊고 있던 순간을 다시 맞닥뜨리는 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여전히 기압은 고막을 내리치고, 파리에서 든 사사로운 감정을 모두 끌어안은 채 서울로 향한다.
기내에서만 느끼는 우울함이 몸서리치게 싫은 것도 여전했다.
전염병은 바이러스로 불릴 게 아니라 바이러스로 매개되는 사람과 사람 간 사회적 관계를 남긴다는 말, 역시 기억한다. 

출장만 가면 단절된 관계들이 있다. 고작 그 며칠이 대수냐 싶으면서도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자 아차 싶더군.
트라우마가 별게 아니다. 아직도 난 그 이유를 모른다. 누군가에겐 어떤 열과 성의를 다했든,
결국 같은 이유로 관계는 일순간 멈췄다. 손에서 열을 내던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별안간 수명을 다했을 때,
곧이어 잇따르는 불안과 허무, 초조 그리고 불쾌는 쉽게 지울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출장에서 새로 주고받는 관계도 있다.
호텔, 터미널, 공항처럼 늘 그 자리에 존재하지만 여러 사람이 나타나 머물고 다시 지나가는 임시 공간,
동시에 한정된 기간에 발현되는 새로운 순간. 이 만남은 서로 헤어질 걸 알고 반복해 되새기다 보면 순간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더없이 평범한 대화가 가장 시적인 경우가 있으며, 가장 시적인 것이 바로 글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관계 사이에 커다란 공백을 남겨두기도 하고, 이것은 어떤 의미로는 가득히 찬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삶, 이보다 더 순수한 관계가 있을까. 

나는 기자라는 직업으로 일하며, 대개는 후자의 관계 맺음에 익숙해졌다. 짧고 폭발적인 감정일지라도 비교적 진실되다 말할 수 있는 
그 관계가 좋다. 적어도 거짓된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도 위안받기도 하며.

파리에 가 있는 동안 크리스토 자바체프와 장 클로드 부부의 유작 ‘포장된 개선문L’Arc de Triomphe’을 볼 수 있었다.
약 2주간 은빛 포장지를 덮은 개선문이 시사하는 바는 생각보다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줬다.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이렇게 화답했다.
“미쳤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불가능한 꿈이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 나는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라 생각한다.”
전 세계를 통틀어 예술적 모험을 이토록 과감하게 행할 수 있는 나라가 프랑스 말고 또 있을까.
동시에 이 작품은 일정 기간 이후에 사라지는 대지 미술이라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있다.
값이 매겨지기보다 존재 가치를 불특정 다수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철거 바로 직전 새벽 6시에 그곳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은빛의 장대한 개선문, 그리고 그 사이로 파리한 초승달이 떴는데 그 소월이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이러나저러나 다시 파리를 찾은 건 행운이었다. 

어느덧 렉스트림이 창립 4주년을 무탈하게 넘기고, 11월에 워크숍을 떠난다. 총 서른 명이 한뜻을 모아 <데이즈드>를 지키는 중이다.
아직 서로 대면식조차 하지 못한 친구도 있고, 직함이나 직책이 명확하지 않은 친구도 있다.
판권에 이름이 빠지고 추가되길 지켜보며 염려를 내비치는 사람도 있겠지. 당장 한 달 일하고 관둘지도 모르고,
몇 년을 가족처럼 보낼 사이도 될 수 있겠지만, 이 무모하면서도 불안정한 관계가 마크롱의 말마따나
패션계의 새 희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믿음. 그러면서도 동시에 각 구성원이 잃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있는데,
바로 개인주의다. 보통 회사가 집단의 한뜻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데 비해, <데이즈드>는 개개의 독립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매체다.
가장 강렬한 형태의 개인주의가 예술 형태를 띨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나.
각자의 개성, 그리고 개인주의가 모여 당대의 패션계를 교란하고 붕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얻을 때까지 힘써주길 바라며,
오늘 그 이름들을 한 자씩 남겨보았다. 
<데이즈드>의 관계가 새로이 시작됐다.

 

 오유라
Yura Oh 

202110 #172

By EDITOR'S LETTER

 

(폴 에디션에 이어)

그것은 바로 화상 통화로 진행된 프랑수아 오종 감독과의 인터뷰였습니다.
그는 프랑스의 자택에서, 전 서울의 <데이즈드> 사무실 1층에서였죠.
대체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 제게 어떤 존재냐 하면요,
당시 인터뷰 기사에도 썼지만 제 삶을 바꾼 사람입니다.
열일곱 살 무렵, 아주 우연히 그 말도 안 되게 느린 속도의 인터넷을 휘젓다가
그가 만든 15분짜리 단편영화 <썸머 드레스A Summer Dress>를 보게 됐는데요.
네, 자막도 없어서 프랑스 말을 들리는 대로 번역하면서 말입니다.
거기에 이런 장면이 있어요.

소년이 꽃무늬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장면요.
그때 네, 전 뭔가 자유를 느낀 것 같아요.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할지.

같은 거 반복하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제가 
이 영화를 열 번, 백 번, 천 번도 넘게 다시 보면서요.
내 존재에 대한 현재와 미래 그리고 꿈을 생각했습니다.

모르겠지만, 특별하고 싶었어요. 다르고 싶었어요.

그렇게나 큰 선물을 준 프랑수아 오종과 대화를 나누다니 얼마나 행복했는지요.
그 영화처럼 딱 15분간이었지만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 인터뷰를 마치고 기사를 작성하고 난 후 말입니다.
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어요.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우울해졌죠.
프랑수아 오종은 그 뒤로도 제게 수많은 영감을 선사한 작품을 연속으로 세상에 선보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전 대체 뭘 했나 싶더라고요.
그 감독에게 아마도 전 그저 전 세계 수많은 팬 중 한 명인 동양의 에디터일 뿐이라고 생각하니제가 한없이 작아졌습니다.
열일곱 살 때 품은 그때 그 마음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건지 제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달에도 썼지만, 전 이야기를 만들고 캐릭터를 창조하고자 하는 사람이고자 했으니까요.
그래, 그렇게 염원하던 그거부터 해보기로 했습니다.
장편 필름, 네, 그걸 흔히 영화라고 부르죠. 그 플랫폼에 맞서보자.
결심했습니다.
그래야만 다음에 어디선가 프랑수아 오종 감독을 만나면 떳떳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올 초부터 준비했습니다. 프랑수아 오종과 인터뷰하던 <데이즈드> 1층을 본거지 삼아 말입니다.
무조건 촬영은 저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데이즈드>의 영상을 만드는 ‘렉스트림’과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배우고 깨지고 아프게 성장하면서 우리끼리의 스토리도 정성껏 만들고자 했습니다.
지난 샤넬 제주 행사에 주요 멤버 셋 유록, 윤우, 성재를 데리고 가서 제 포부를 밝히고 일종의 도원결의를 했습니다. 
<데이즈드> 팀에도 양해를 구하며 이야기했습니다.
따뜻한 응원과 지지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라는 작업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대본도 써야 하고, 캐스팅도 해야 하고, 아카이브 패션 영화다 보니 옷도 준비해야 했습니다.
우리 ‘렉스트림’ 크루들은 너무도 현명하고 매력적이지만
나도 그들도 영화는 처음이었으니 울다 헤매길 몇 날 며칠.
매번 촬영이 끝나면 드는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관둬야겠다.

오늘이 9월 17일이니까 촬영한 지 벌써 두 달여가 되어갑니다.
촬영으로 따지자면 75% 정도 마쳤고, 모레면 촬영 순서상 마지막 장면도 찍습니다.
일부러 맞추려고 한 건 아니지만, 첫 촬영일이 하필 7월 27일이었는데요,
그날은 4년 전 ‘렉스트림’을 시작한 날이기도 하니 감회가 더욱 남달랐습니다.
네, 제가 영화 이야기를 처음 꺼낸 그 제주도에서 그렇게 시작했으니까요.

전염병을 뚫고 하나가 되어 
이렇게 지금까지···.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살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깨달았습니다.

영화는 후반 작업이 중요하다잖아요.
촬영도 한 달 정도 더 해야 하지만 마지막 작업까지 마무리하려면 
앞으로의 여정 또한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 정도는 말하고 싶었습니다.
2022년 봄, 가장 화창하고 아름다운 날,
여러분에게 보여주게 된다면 참 좋을 테니까 말이지요.

현장에서 접해보니 지금까지의 지식만으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지난주부터 영상 촬영과 편집에 대한 과외도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재밌는지는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네, 전 다시 <썸머 드레스>에 잠 못 이루던 열일곱 살로 돌아가려 합니다.
이 영화에 OST로 쓰인 ‘Bang Bang’을 들으며 살포시 몸을 흔들던 그때로 말입니다. 

부디 절 지켜봐주시고 사랑해주시길 바랍니다.
전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니까요.
표현하는 사람이 될 테니까요.
순수하게, 저답게.

+

2015년 10월호부터 ‘에디터스 레터’를 쓰기 시작했으니 이번 2021년 10월호가 딱 6년이 되는 레터입니다.
지난 6년 동안 정말 많은 이야기를 토해냈습니다. 
전 이 소중한 공간에 책에 대한 자랑보다는 제 생각과 시간을 공유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는 이곳이 제 영혼을 도려내는 쓰라린 고통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이제 이 공간에 대한 예의로라도 조금 휴식을 가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데이즈드>에는 글을 잘 쓰는 에디터가 많으니까요.
당분간 그들의 이야기를 번갈아 담으면서 <데이즈드>의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주는 진짜 ‘에디터스 레터’로 가보려 합니다.
그간 제 주접, 똥글, 다 받아주시고 들어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사랑했고, 사랑합니다. <데이즈드>의 이겸은 계속되니 이쯤 하겠습니다.

 

이겸
李兼
Guiom Lee

 

202109 #171

By EDITOR'S LETTER

전 영화에 위로를 받아요.

열아홉 살이었어요.
충무로 영상작가 전문교육원에 무작정 찾아가 시나리오를 배웠죠. 
6개월씩 1년 반 과정으로 초급·중급·고급반 순서로 구성됐어요.
학원비가 당시 제 형편으로 감당하기엔 상당히 비쌌는데, 거길 다니려고 청소부터 서빙까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매주 화요일, 금요일 저녁에 수업이 있었죠.
수업도 좋았지만 수업 후 충무로 구석구석에 있는 선술집에서 같은 반 형, 누나 때로는 선생님과 마시던 막걸리와 소주가 더 좋았어요.
밤새 영화 이야기를 했어요.
어떤 시나리오가 좋은지,
우리 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한 번은 비가 막 쏟아지는 날
막걸리에 파전을 먹으며 한참 영화 이야기를 하는데요,
꿈만 같더라고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행복하더라고요.
아, 그때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요.

전 머리가 노랬어요.
처음 딱 학원에 들어섰는데, 웬 양아치가 시나리오를 배우러 온 거지? 딱 그 생각을 하고 계신 것처럼 깜짝 놀란 선생님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죠.
형, 누나들과 전 열 살 이상 차이가 났고 40, 50대도 꽤 계셨죠.
전 스스럼없이 어울리려고 노력했어요.
영화를 정말 좋아하고 꼭 좋은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분들이 절 귀여워해주셨어요.
기특하다, 잘해라. 네 나이엔 뭐든 할 수 있다, 이러면서요.

그렇게 반짝반짝 6개월 초급반 코스가 끝나고 마지막 과제가 주어졌어요.
통과하려면 단편 하나를 써서 제출해야 했죠.
제 인생 첫 시나리오 제목이 뭔지 아세요?
리. 모. 콘. 맨.

한 사람이 사고를 당하고 우울한 일에 빠졌는데 우연히 병원에서 얻은 리모컨을 눌렀더니 그 사람이 원하는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실로 유치 찬란하고 기상천외한 이야기였죠. 결말은 좀 슬펐어요. 결국 리모컨이 그 남자를 공격하게 되니까요.

제 과제를 보시곤 선생님이 두 가지를 말씀하셨어요.

“노란 머리, 넌 맨날 술만 마시는 줄 알았더니 그래도 가르친 대로 기본 구성에 충실하게 썼네. 계속해보자. 패스!!!” 이런 기쁜 이야기와 또 하나는요,

“노란 머리, 내가 왜 합격을 줬냐면 KBS 2TV에서 하는, 왜 그 어린이 판타지 드라마 있지? 그런 거 쓰면 잘하겠단 생각이 들어서야.” 쾅쾅쾅, 머리를 때리는 ‘기쁜’ 이야기도요.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선생님, 제가 아직 어리지만 언젠간 꼭 어른스러운 판타지도 해보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라고요.

그다음 6개월은 중급반이었죠.
주객전도 아시죠? 다시 말하지만 그때 전 열아홉 살이었다고요.
학원비 벌려고 다닌 아르바이트가 어찌나 재밌던지요. 그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연신 지각, 결석을 밥 먹듯 하다가 채 중간을 채우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어요.

그런 제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휴대폰으로 혹은 집으로 같은 반 형, 누나, 심지어 선생님까지 전화를 하셨죠.
“너, 할 수 있어. 학원에 나와. 같이 영화 이야기하자.”
엄마가 선명히 기억하세요. 그분들의 설득을, 음성을, 바람을.

저도 보고 싶어요. 연락을 피한 건 아니었는데, 정말 미안하고요.
어렸나 봐요.

그러고 전 일본 도쿄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조금 개인적 이유로 급하게요.

그렇지만 시나리오 공부에 대한 꿈은 잃을 수 없었어요.
일본에서 3년여 공부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와 제일 먼저 한 것도 충무로 
그 학원을 찾은 거였으니까요.

다시 중급반으로 등록했어요.
도쿄에서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한 덕에 자금 사정은 넉넉했어요.
그렇게 한 번 두 번 수업을 이어가고 있었는데요,
네, 전 동시에 패션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이기도 했고요.
운 좋게도 재학 중에 캐주얼 브랜드 VMD 파트 인턴으로 취직을 하기도 했어요.

아시죠? 첫 사회생활, 게다가 패션계.
얼마나 화려하고 재밌었겠어요?

청담동, 압구정동의 화려한 조명과
말발 좋고 근사한 옷차림으로 무장한 패션 피플에게 현혹돼
결국은 시나리오 공부를 포기하고 말았죠.

청담동 바닥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 피플이 될 테야!

제 꿈은 영화작가에서 패션계 히어로로 그렇게 수정됐습니다.

또 시간이 흘렀어요.
참 속절없이 계속 흐르는 게 시간이라고, 지금부터라도 좀 잡고 싶은데 말이죠.
그렇게 20여 년 남짓 전 제 혼을 바쳐 패션계에서 열심히 일했어요. 
에디터, 마케터, 스타일리스트, 방송, 책, 강의, 패션쇼, 쇼룸 비즈니스, 뷰티··· 
뭐, 안 해본 거 없이 다요.
그러다 이렇게 <데이즈드>까지요.
꽉꽉 채웠죠. 패션으로.

그런데 그럼에도 뭔가 허전했어요.
거의 매일 영화 한 편은 꼭 보고 자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영화에 대한 꿈은 버리려야 버릴 수 없었으니까요. 네, 전 이야기를 만들고 캐릭터를 창출하는 사람이고자 했으니까요. 어떤 방식으로든요.

그러다 작년 12월,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준 큰 사건이 하나 발생하게 됩니다. 네, 추운 겨울이었어요.

+10월호에 계속 이어집니다. 에디터스 레터 연재는 처음 보셨죠?

 

 이겸
李兼
Guiom Lee

202109 #170

By EDITOR'S LETTER

초등학교 5학년 때 첫 가출을 했습니다.
이유는 제가 가장 아끼던 보물을 아버지가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건 다름 아닌 제가 신문을 볼 수 있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꾸준히 모아온 여자 농구 신문기사 스크랩이 담긴 30권 남짓의 스케치북이었습니다.
박정숙, 조문주, 이강희, 박현숙 선수 등이 활약한 국민은행 여자 농구단의 팬이었으나 그와 라이벌이던 성정아, 최경희 선수 등이 뛴 동방생명(현 삼성생명)부터 한국화장품, 상업은행 등 모든 여자 농구 팀의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보았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니까 경기에 대한 기사는 오로지 다음 날 새벽 집으로 배송되는 신문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 매일 아침 아버지보다 빨리 일어나 맨발로 현관문을 살짝 열고는 신문을 옆에 끼고 신이 나서 제 방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곤 서둘러 농구 기사를 찾아 꼼꼼히 읽은 뒤 정성껏 가위로 잘라 스케치북에 풀로 붙였죠.
행여나 선수들의 모습을 잘못 자를까 노심초사하면서 말입니다.
특히나 제가 좋아하는 선수의 사진이 크게 실리면 드래곤 볼이라도 모은 것처럼 그렇게 들뜨던 기억이 납니다.
이 스크랩북의 백미는 사진이나 기사마다 펜으로 일일이 써놓은 저만의 분석 메모였습니다. 
승리와 패배 요인부터 각 선수별로 잘한 점, 잘못한 점을 마치 농구 전문가라도 된 양 하나씩 쭉 기록해뒀으니까요.
매일 아침 한 시간 정도 누리던 그 행복한 여정의 마지막 행동은 농구 기사가 잘려 나간 신문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아버지 방에 갖다 두는 것이었습니다.
집이 풍족하지 못해 제대로 된 로봇이나 게임기 하나 없던 형편에서 체조나 농구 선수가 되고 싶어 하던 어린 아들의 유일한 취미였던 그 스크랩북을 왜 내다 버리셨는지 사실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유를 듣긴 했는데 잘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그 당시 제가 겪은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가늠조차 안 됩니다.
기억에 또렷이 남는 것은 제 울음이 파도가 되고 바다가 됐던 것.
목청이 찢어져라 울다가 그 화와 설움이 멈추질 않아 집을 나갔던 것.
그리고 아버지가 이 일을 만회한다고 수원으로 날 데려가 현대와 한일합섬의 여자 배구 경기를 보여준 것.
그 경기장 맨 뒷줄에 앉아 까마득하게 내려다보던 선수들의 서브와 스파이크 장면, 관중석을 빼곡히 메운 응원의 함성과 그 울림.
그 경기가 3:2로 끝났는데 어느 팀이 이겼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전 지경희 선수를 응원했죠.
아버지는 아마도 농구장은 집에서 너무 멀어 제가 농구 다음으로 좋아하던 배구 경기가 열리는 곳으로 데려간 걸로 기억합니다. 
네, 이것이 제 인생 첫 번째 가출이자 첫 번째로 직관한 스포츠 경기에 대한 기록이며 더불어 사랑하는 것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느끼게 해준 첫 번째 이별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전 스포츠 선수가 되고 싶었으나 그만한 체력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 커서 꼭 부자가 돼 농구, 배구를 비롯한 스포츠 경기를 직관하는 것을 꿈꾸던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스포츠 캐스터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이런 제게 4년마다 열리는 동·하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은 가장 큰 축복이고 축제였습니다.
언젠가 좀 더 큰 TV로 스포츠 경기를 볼 테다,부터 언젠가 꼭 개막식에 가볼 테다, 언젠가 꼭 올림픽을 직접 보고 말 테다,까지의 꿈을 꾸던.

노심초사 오매불망 기다리고 기다리던 2020 도쿄 올림픽이 막을 내렸습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1년이나 연기됐고, 여전히 관중도 없는 운동장에서 뛰던 선수들의 피땀, 눈물을 보면서 전 다시 스포츠 선수를 꿈꾸던 어린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어찌나 기쁘던지요. 어찌나 감격스럽던지요.

그리고 이달 <데이즈드>에는 도쿄 올림픽을 통해 세계 4위라는 숭고한 기록을 세운 여자 배구 정지윤 선수와 다이빙 우하람 선수, 기계체조 류성현 선수를 담았습니다. 또 올림픽 최종 예선에서 아깝게 떨어졌지만 제가 그토록 좋아하던 성정아 선수의 아들인 동시에 현재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NBA에 가장 근접해 있는 농구 선수 이현중도 만났습니다. 

행복합니다. <데이즈드>는 스포츠와 스포츠인에 대한 존엄을 저희만의 미학으로 계속해서 응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게 된 지금 제 스스로에게 약속합니다. 다시는 스포츠를 향한 저만의 스크랩북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 8월 24일부터 9월 5일까지 도쿄 패럴림픽이 이어집니다. 인간의 한계를 감동의 드라마로 풀어내는 스포츠는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우리 같이 응원해요. 

202108 #169

By EDITOR'S LETTER

 터널이 기네요.
아무렇지 않은 듯 의기양양 기세 좋게 마냥 그렇게는 안 되네요.
함정에 빠져요.
누굴 원망해서 뭐 해요.
결국 따지고 보면 제 스스로 쳐놓은 함정이에요.
가만 있으면 없었을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자꾸 벌이니까 이렇게 돼요.
터널이 끝날 줄 몰라요.

좀 편하게 살아도 될 텐데, 어쩌겠어요.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라 그게 안 되는 운명인 거예요.
너무 원망스러워요. 진심이에요.
괴롭고 지치고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하고,
멈추지 못하니 체력도 정신도 해지고 문드러졌어요.

7월 초, 뜻하지 않게 확진자 접촉으로
2주간 격리 시간을 갖게 됐어요.
괴롭고 답답하고 힘들 줄 알았는데
하루이틀 지나니 웬걸요.

이 시간이 없었으면 큰일 났겠다 싶은,
제가 절 오롯이 볼 수 있던,
아마도 열아홉 도쿄에서 전단지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후 
2주간의 육체적 멈춤은 처음이 아니었나 싶은, 
물론 손으로 입으로 일이란 건 해야 했지만요.
그 시간이 어찌나 아늑하고 황홀하던지요.

갇혀서야 비로소 느낀 살아 있음.

그 기간 동안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랜만에 책 선물을 받고 알았는데요. 

그 냄새요.

왜 확진되면 후각을 잃는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선물 받은 그 책으로 제 후각을 시험하면서 알았는데요.

네, 책을 읽을 힘은 없었고요.

책마다 냄새가 하나같이 다르더라고요.

네, 하물며 책도 이리 다른데, 그렇다면 전 대충 이렇게 다른 냄새겠더라고요.

202107 #168

By EDITOR'S LETTER

444
결국 444페이지짜리 7월호.

여름 호러 무비 느낌의 444도 되고
<데이즈드> 많이 사달라는 애교와 아양의 사! 사! 사!도 되고
그래서 부끄러워진 샤샤샤shy shy shy도 되니까,
웃어요.
그럴게요.


울부짖음과 쥐어짜기
그러나 현실의 나는 미처 담지 못한 몇십 페이지까지 생각하며 밀려오는 자책감에 그야말로 울부짖으며 이 공간을 채우기 위해 뇌와 심장을 쥐어짜고 있다. 적당했어야 했나?


순수
눈앞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좇지 않고 상대의 장점을 보려고 하는 것.

고치고 싶었지만 알겠어, 고치지 않을게.
하나하나, 한 명 한 명에게 긴 애정을 가질게.


위로
나는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어요.

아무것도 모를 때니까 이런 말과 행동도 이럴 때 할 수 있는 거야,라고 넘겨가며 때로는 네가 나를 향해 찌르는 칼도 두 손으로 꼭 잡은 채 꾹 참고 견뎠어요. 피가 철철 나는 순간에도 까짓것 내가 더 뭐라도 해주려고 노력했어요. 누군들 매일같이 쏟아내는 한참은 미숙한(내가 보기엔요) 아우성을 일일이 다 들어가며 답하기가 쉬운 줄 아세요? 혼이 탈탈 털리는데 마냥 행복하기만 하겠어요? 대체 누군들.
나도 사람이거늘, 한낱.
이젠 저도 위로받고 싶어요.
저도, 여러분, 네? 여러분.
위로해주세요.
주는 거 말고 저도 좀 받고 싶어요.
대체 어떤 것이든 좀 따뜻한 걸로.
모자라도, 별로라도, 가짜라도, 그 누구더라도.


유서
갑자기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지닌 내 그릇보다 가진 것이 많아졌다는 거다. 안다.
차오르다 못해 넘쳐흐른다.
잘 알고 있다.
공증을 받은 유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서는 뭐 서른 살부터 남기기도 하는데요.” 자연스러운 거라며 변호사가 안심시켜준다.
뭘 가지고 있지? 누구에게 줘야 하지?
이것도 생각이었다. 일이었다.
갑자기 죽을지도 모른다.


5월 7일~6월 2일
<데이즈드> 아트 페어와 퓨처 소사이어티 쇼룸과 함께한 팝업 스토어를 보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주신 모든 분,
족히 1만 명은 넘는 것 같아요. 고마워요.

더현대 서울, 고마워요. 당신이 품은 혁신적 메시지가 있어요. 잃지 마세요. 단 한 명에게도 RSVP를 제대로 못 했는데도 찾아와주신 업계의 모든 분,
고마워요. 덕분에 제가 존재합니다.

참여해주신 전 세계의 아티스트 여러분,
패션 디자이너 여러분, 고마워요.
정말 많이 배웠어요. 한 분 한 분 눈 감아도 생각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방문해주고 독려해주신, 곱씹어봐도 나눈 대화 하나하나가 예술 그 자체였던 육준서 님과 백화점 내 샘플 세일이라는 무모할 만큼 독창적인 제 제안에 자신의 사옥에서 진행하려던 샘플 세일을 포기하고 현장에서 몇 날 며칠 고생하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혜미를 비롯한 잉크EENK 팀, 더 오래 생각날 거예요.
함께한 퓨처 소사이어티 쇼룸과 호스팅 하우스, 블루 프로젝트 팀 그리고 세일즈 열심히 한 모델들, 제가 뱉은 말을 주워 담느라 늘 고생인 우리 렉스트림 팀, 모두 고마워요. 술은 제가 정신을 회복하면 살게요.
그리고 지드래곤.
근 한시간 반 가까이 머물며 제 어설픈 설명 하나하나 다 들어가며 당신이 얼마나 아트를 사랑하는지 늘 그렇듯 되레 배운 시간이었어요. 생각해보니 샴페인 한 잔은커녕 맥주 한 병, 물 한 모금 못 줬네요. 제가 늘 그렇죠, 뭐. 고맙고 존경해요. 내년에도 이런 날이 올까요?
어찌 보면 부모와 마찬가지인 <데이즈드> UK에서 내년에는 아트 페어를 함께 해보면 어떻겠냐는 이메일을 보내주긴 했으니, 고맙게도요.
어떻게 보면 일이 커질 수도요.

네, 늘 그랬듯이 말이에요.

202106 #167

By EDITOR'S LETTER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할래요.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할래요.
그동안 왜 그랬나 몰라요.
숨기고 살았어요.
외로웠어요.

전 아름답고 싶어요.
전 아름다운 걸 탐닉해요.
고백조차 아름답고자 했나 봐요.
그럴 여력도 없으면서.

안 그럴래요.
이젠 툭 이럴래요.
좋아해요.
사랑해요.

태도를
눈빛을
그림을
이야기를
배려를
유연함을
열정을
순수함을
박애를
희생을
그리고
절 향한 동정과 애정을.

<데이즈드>는 언제나 젊고 기발하며 희망이 가득한 <데이즈드> 팀원을 통해 보여져야 해요.
전 이 부분에서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써요.
전성기라는 것이 있잖아요.
제가 이 플랫폼과 함께하는 전성기는 얼마 남지 않았을 거예요.
저도, <데이즈드>도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해야 해요.

얼마나 고맙고 좋은지 몰라요.
제 전성기를 함께해주는 팀원들이 친구들이 독자들이 아티스트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요.

고백할래요.

더 끊임없이.
나와 함께한 이 시간.
나의 의지를 공유하는 이 순간.
함께하고 있는 모든 여러분을 향해.

좋아해요.

사랑해요.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고백에는 헤플 테지만 그거까진 부끄러우니 접어둬요.

그저 싱긋, 아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남아요.

+

<데이즈드> 아트 페어를 통해 기회라는 단어를 배웠어요.
전 세계의 젊은 작가가 보여주는 기회, 전 세계의 친구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그것을 보는 기회,
그게 얼마나 근사하고 절실한 일인지 직접 경험을 통해 깨달았어요. 이 놀라운 가치를 선물해주신 모두에게 진심으로 사랑을 전해요.
5월 19일부터 6월 2일까지 더현대 서울 지하 2층 아이코닉존에 또 오세요. 이젠 제대로 고백할게요.

202105 #166

By EDITOR'S LETTER

제 책상 오른편에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친필 사인이 담긴 ‘캠벨 수프 통조림’ 그림이 있어요. 제 휴대폰 속 케이옥션 앱에는 막 대니얼 아샴Daniel Arsham이 디올 맨의 킴 존스와 함께 만든 협업 제품 중 하나인 동그란 벽시계가 추정가 2200만~3500만원으로 표시된 채 업로드돼 있어요. 제 맞은편 옷장 위에는 2년 전 겨울, <데이즈드> 1층 팝업 공간에 전시했던 발렌시아가의 비주얼로 콜라주한 조 웹Joe Webb의 작품 하나가 올려져 있어요. 제 왼편 창을 뚫고 지나가면 모델 최소라의 파트너인 아티스트 코베가 찍은 최소라의 사진이 있고, 그 옆에는 이동기 작가의 아토마우스 그림 중 ‘샘’이란 작품이 있어요. 제 정면 입구에는 티보 에렘Thibaud Hérem의 작품 중 하나이자 제 학창 시절 별명이기도 한 ‘잉어’가 있고, 그 밑에는 몇 해 전 런던 멀티숍 브라운스에서 구입한 재기 발랄한 그라피티 아티스트 네온 세비지Neon Savage의 작품이 있어요. 이 친구는 브라운스의 벽면에 낙서를 하고 도망갔는데, 브라운스 대표가 그 낙서에 반해 수소문 끝에 이 친구를 찾아냈고, 그 덕분에 지금과 같은 아티스트가 되었다는 후일담이 있어요.
버질 아블로가 협업한 바카라의 머그잔과 브라운의 탁상시계도 자리 잡고 있죠.
지난주에는 지인들을 만나 세계 예술 시장에 합류한 NFT, 즉 대체 불가능 토큰(Non-Fungible Token)에 대해 각자 열변을 토하기도 했죠.

그런데 대체 아트가 뭐죠?
그게 대체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거죠?
여러분은 아직 아트가 어렵고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나요?
한 번쯤 갖고 놀고 즐겨보고 싶은가요?

<데이즈드>는 열세 살을 맞아 전 세계 신진 아티스트와 <데이즈드> 아트 페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오는 5월 5일부터 <데이즈드> 1층 팝업 공간인 퓨처 소사이어티에서 먼저 선보인 후 요즘 가장 뜨겁다는 더현대 서울 지하 2층 바로 그 MZ 존에서 2주간 아트 페어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더현대 서울과 함께하는 팝업 스토어에서는 퓨처 소사이어티 쇼룸과 함께 전도유망한 패션 디자이너의 의류도 만날 수 있습니다. 
아트 페어의 취지에 걸맞게 모든 작품은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전 한마디로 아트 맥시멀리스트입니다. 아트가 넘치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 소원입니다. 저와 <데이즈드>는 새로운 아티스트를 소개함과 더불어 예술 시장의 저변을 지속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또다시 답을 찾아가고자 합니다.
아트는 결국 ‘시작’이니까요.

202104 #165

By EDITOR'S LETTER

런던에서 돌아오니 난세가 됐는데 빛이 보이지 않았다. 당초 계획이 모두 흐트러지니 갈등은 깊어지고 내 앞가림조차 힘들었다. 정면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만 생각했다. 그만둘까 생각한 건 수천 번이 넘었다. 지난봄부터 올봄까지 8평짜리 원룸에서 지독하게 부딪혔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져, 옷이 좋아야 다음을 약속할 수 있다고 했다.

주름은 펴지지 않았을 때 주름이다. 주름일 때야 그 사이가 마치 골이라도 난 듯 보이지만 펴지면 아무것도 아니다. 태연하다. 순식간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길 바랐다. 시간은 생각보다 더디게 갔다. 무언가 될 수 있을까. 무언가 완성할 수 있을까. 이것이 이렇다는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누군가에게 알기 쉽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을까.

배움의 시간은 예외 없이 인고를 동반한다. 깨우친 것은 옷을 대하는 태도와 이에 성의를 다하는 열정이었다. 그것은 어떤 숭고한 진실과도 같은 것이었는데, 그간 잊었다기보다 알고 있었지만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쯤이었다. 변명할 여지없이 내 스스로에게 증명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어려운 일이었다. 차라리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주체가 되는 것이 낫지, 타자를 통해 내 믿음과 선택을 증명받기는 죽기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내 손에서 장미를 피게 하려면 손바닥 전체를 후벼 팔 가시를 가득 움켜쥐어야 가능한 것.

멀티가 돼야 한다고 그렇게 떠들더니 결국 인터컴 헤드셋까지 뒤집어썼다. 그러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덜컥 쇼가 시작될 거다. 내 역할은 아, 모두 다였다. 쇼는 12시, 14시 30분, 17시, 19시 30분 총 네 번이었다. 하늘과 맞닿은 펜트하우스가 선물한 자연광은 해가 뜨고 짐에 따라 옷과 옷을 보고 있는 마음과 생각이 천차만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래서 쇼는 시간이 중요하구나. 배움은 여지없이 계속된다.

마지막 쇼의 중간 무렵 기어이 석양이 통창을 뚫고 서울과 나를 동시에 비췄다. 아주 무겁고 뜨거운 어떤 것이 폭발하듯 밀려왔다. 세 차례 정도 격정의 고비를 극복하자 피날레가 이어졌다.

무서워요, 내가.

이제 나의 쇼를 할 차례가 왔다. 이 봄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

202104 #164

By EDITOR'S LETTER

구보즈카 요스케Yōsuke Kubozuka는 10대 중반부터 줄곧 내 롤모델이었다.
그의 사진을 수집하려 당시 명동에만 있던 일본 서적 
판매점에서 매달 <맨즈 논노> 잡지를 사 모으며 현재 패션 잡지를 하는 사람이 됐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가 입은 옷을 따라 만들려 의상학과에 입학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열아홉 살에 200만원을 들고 무작정 그가 살고 있는 도쿄로 유학까지 갔다.

도쿄에는 형편이 어려운 나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중고 서점이 잘돼 있는 덕분에 그의 사진이 담긴 패션 잡지는 꽤나 구입했지만, 그가 나온 드라마를 보기는 힘들었다. 오로지 그가 무슨 옷을 입고 움직이는지 봐야겠다는 일념으로 구석구석 길거리를 뒤지면서 누군가 버린 비디오테이프도 넣을 수 있는 도시바의 TV를 한 대 주웠다. 2000년 봄, 딱 이맘때 날씨였던 그날이 잊히지 않는다. TV를 켜니 나온 그의 모습, 드라마의 이름하여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당시 나도 이케부쿠로에 살았는데, 이 또한 필연이라 믿었다.

그의 말을 알아듣고 싶어 열심히 일본어를 공부했고, 그가 입은 옷은 아니더라도 저렴하게 나온 비슷한 디자인의 것이라도 사기 위해 아침 6시부터 신주쿠 서구의 높은 빌딩 꼭대기에 있던 한 레스토랑에서 쥐들과 싸워가며 청소했다. 저녁에는 ‘후쿠신’이라는 라면 체인점의 ‘스무 살 주방장’으로 불리며 뜨거운 화로 앞에서 청춘을 불태웠고, 수업이 없는 날이면 도쿄 방방곡곡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아가며 수천 장씩 전단지도 돌렸다. 말이 좀 트여 조금 나은 아르바이트 자리가 생겼지만, 이 또한 신주쿠 번화가에 있는 술집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수건을 빨고, 점장이 먹고 싶다 하면 가끔씩 달걀 프라이를 부쳐주는 게 다였다. 해외에 가면 한국 사람은 믿지 말라던가. 하필 제일 힘들었던 청소 용역업체 사장이 한국 사람이었는데, 1년여 일해 번 800만원 남짓한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해 전전긍긍했던 기억은 어제 일보다 선명하다.

월세와 학비, 쌀값을 대고도 돈이 남으면 자전거를 끌고 하라주쿠로 갔다. 2주에 한 번씩 주말에는 요요기 공원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에 들렀다가 하라주쿠로 향했다. 주머니 안에는 언제나 잡지 등에서 오린 구보즈카 요스케의 사진이 있었다. 그의 옷과 헤어스타일, 그가 다닌다는 피부 관리실, 그가 광고로 출연한 개츠비 왁스, 하나하나 탐닉했다. 풍족히 먹을 돈도 없었지만, 그처럼 깡마르고 싶어 56kg까지 감량했다. 그런 몸에 그를 따라 드레드 펌까지 했을 땐 다들 뱀 같다고 했다.

어렴풋이 바랐던 것 같다. 언젠가 그를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그의 스타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당신이 내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줬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의 존재를 다시 자각하게 된 것은 마치 그가 나온 잡지 사진 한 장을 낡은 서점 귀퉁이에서 처음 본 과거만큼이나 정말 지극히 우연히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발견하게 된 것에서부터다. 지난달 이 무렵이었다. 그날 그는 자신의 계정에서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었다. 보니 술도 마시는 것 같았다. 과거와 달리 한없이 촉촉, 아니 축축한 눈빛으로 집 같은 실내에서 긴장감 없는 말투를 섞어가며 술 마시는 그의 모습을 휴대폰으로 넋 놓고 보다 보니 온갖 감정이 몰려왔다. 나를 보는 건지, 오랜 친구를 만난 기분인 건지,
아니 이 사람, 대체 뭐지? 뭐였지? 내게.

그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아 라이브 방송 보기를 멈추고 그의 계정에 올린 사진을 찬찬히 내려봤다. 이 역시 몇 장 보다 쉽지 않음을 깨닫고 멈췄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기분이지?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사람의 나이도 모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뿔싸, 찾아보니 내가 빠른 생이기는 하나 학번이 같은, 그러니까 동갑내기와 다름없었다. 그가 1995년도에 데뷔했으니 나는 줄곧 한참은 연배가 위라고 생각했던 터라 순간 놀람을 금할 수 없었다.

내가 그토록 따라 하고 싶던 당신은, ‘너’였구나.

어젠가, 구보즈카 요스케의 인스타그램에 그의 가족사진이 올라왔다. 갭GAP의 모델로 온 가족이 등장해 촬영한 것으로 보였다. 그의 아내, 아들딸, 누가 봐도 예쁜 가족. 그의 아들인 구보즈카 아이루는 2003년생으로 최근 모델로 데뷔했다.

최근 나는 많은 것을 샀고, 많은 것을 분실했으며, 구보즈카 요스케를 다시 떠올렸다. 나의 구보즈카 요스케는 그가 만든 것이 아닌 내가 선택한 것이라는 당연한 이치를 나는 왜 지금에야 알게 됐을까. 다행히 아직 내겐 반 이상의 시간이 남았다. 
구보즈카 요스케는 내 롤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