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즈카 요스케Yōsuke Kubozuka는 10대 중반부터 줄곧 내 롤모델이었다.
그의 사진을 수집하려 당시 명동에만 있던 일본 서적 판매점에서 매달 <맨즈 논노> 잡지를 사 모으며 현재 패션 잡지를 하는 사람이 됐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가 입은 옷을 따라 만들려 의상학과에 입학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열아홉 살에 200만원을 들고 무작정 그가 살고 있는 도쿄로 유학까지 갔다.
도쿄에는 형편이 어려운 나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중고 서점이 잘돼 있는 덕분에 그의 사진이 담긴 패션 잡지는 꽤나 구입했지만, 그가 나온 드라마를 보기는 힘들었다. 오로지 그가 무슨 옷을 입고 움직이는지 봐야겠다는 일념으로 구석구석 길거리를 뒤지면서 누군가 버린 비디오테이프도 넣을 수 있는 도시바의 TV를 한 대 주웠다. 2000년 봄, 딱 이맘때 날씨였던 그날이 잊히지 않는다. TV를 켜니 나온 그의 모습, 드라마의 이름하여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당시 나도 이케부쿠로에 살았는데, 이 또한 필연이라 믿었다.
그의 말을 알아듣고 싶어 열심히 일본어를 공부했고, 그가 입은 옷은 아니더라도 저렴하게 나온 비슷한 디자인의 것이라도 사기 위해 아침 6시부터 신주쿠 서구의 높은 빌딩 꼭대기에 있던 한 레스토랑에서 쥐들과 싸워가며 청소했다. 저녁에는 ‘후쿠신’이라는 라면 체인점의 ‘스무 살 주방장’으로 불리며 뜨거운 화로 앞에서 청춘을 불태웠고, 수업이 없는 날이면 도쿄 방방곡곡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아가며 수천 장씩 전단지도 돌렸다. 말이 좀 트여 조금 나은 아르바이트 자리가 생겼지만, 이 또한 신주쿠 번화가에 있는 술집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수건을 빨고, 점장이 먹고 싶다 하면 가끔씩 달걀 프라이를 부쳐주는 게 다였다. 해외에 가면 한국 사람은 믿지 말라던가. 하필 제일 힘들었던 청소 용역업체 사장이 한국 사람이었는데, 1년여 일해 번 800만원 남짓한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해 전전긍긍했던 기억은 어제 일보다 선명하다.
월세와 학비, 쌀값을 대고도 돈이 남으면 자전거를 끌고 하라주쿠로 갔다. 2주에 한 번씩 주말에는 요요기 공원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에 들렀다가 하라주쿠로 향했다. 주머니 안에는 언제나 잡지 등에서 오린 구보즈카 요스케의 사진이 있었다. 그의 옷과 헤어스타일, 그가 다닌다는 피부 관리실, 그가 광고로 출연한 개츠비 왁스, 하나하나 탐닉했다. 풍족히 먹을 돈도 없었지만, 그처럼 깡마르고 싶어 56kg까지 감량했다. 그런 몸에 그를 따라 드레드 펌까지 했을 땐 다들 뱀 같다고 했다.
어렴풋이 바랐던 것 같다. 언젠가 그를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그의 스타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당신이 내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줬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의 존재를 다시 자각하게 된 것은 마치 그가 나온 잡지 사진 한 장을 낡은 서점 귀퉁이에서 처음 본 과거만큼이나 정말 지극히 우연히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발견하게 된 것에서부터다. 지난달 이 무렵이었다. 그날 그는 자신의 계정에서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었다. 보니 술도 마시는 것 같았다. 과거와 달리 한없이 촉촉, 아니 축축한 눈빛으로 집 같은 실내에서 긴장감 없는 말투를 섞어가며 술 마시는 그의 모습을 휴대폰으로 넋 놓고 보다 보니 온갖 감정이 몰려왔다. 나를 보는 건지, 오랜 친구를 만난 기분인 건지,
아니 이 사람, 대체 뭐지? 뭐였지? 내게.
그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아 라이브 방송 보기를 멈추고 그의 계정에 올린 사진을 찬찬히 내려봤다. 이 역시 몇 장 보다 쉽지 않음을 깨닫고 멈췄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기분이지?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사람의 나이도 모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뿔싸, 찾아보니 내가 빠른 생이기는 하나 학번이 같은, 그러니까 동갑내기와 다름없었다. 그가 1995년도에 데뷔했으니 나는 줄곧 한참은 연배가 위라고 생각했던 터라 순간 놀람을 금할 수 없었다.
내가 그토록 따라 하고 싶던 당신은, ‘너’였구나.
어젠가, 구보즈카 요스케의 인스타그램에 그의 가족사진이 올라왔다. 갭GAP의 모델로 온 가족이 등장해 촬영한 것으로 보였다. 그의 아내, 아들딸, 누가 봐도 예쁜 가족. 그의 아들인 구보즈카 아이루는 2003년생으로 최근 모델로 데뷔했다.
최근 나는 많은 것을 샀고, 많은 것을 분실했으며, 구보즈카 요스케를 다시 떠올렸다. 나의 구보즈카 요스케는 그가 만든 것이 아닌 내가 선택한 것이라는 당연한 이치를 나는 왜 지금에야 알게 됐을까. 다행히 아직 내겐 반 이상의 시간이 남았다.
구보즈카 요스케는 내 롤모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