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
런던에서 돌아오니 난세가 됐는데 빛이 보이지 않았다. 당초 계획이 모두 흐트러지니 갈등은 깊어지고 내 앞가림조차 힘들었다. 정면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만 생각했다. 그만둘까 생각한 건 수천 번이 넘었다. 지난봄부터 올봄까지 8평짜리 원룸에서 지독하게 부딪혔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져, 옷이 좋아야 다음을 약속할 수 있다고 했다.
주름은 펴지지 않았을 때 주름이다. 주름일 때야 그 사이가 마치 골이라도 난 듯 보이지만 펴지면 아무것도 아니다. 태연하다. 순식간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길 바랐다. 시간은 생각보다 더디게 갔다. 무언가 될 수 있을까. 무언가 완성할 수 있을까. 이것이 이렇다는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누군가에게 알기 쉽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을까.
배움의 시간은 예외 없이 인고를 동반한다. 깨우친 것은 옷을 대하는 태도와 이에 성의를 다하는 열정이었다. 그것은 어떤 숭고한 진실과도 같은 것이었는데, 그간 잊었다기보다 알고 있었지만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쯤이었다. 변명할 여지없이 내 스스로에게 증명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어려운 일이었다. 차라리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주체가 되는 것이 낫지, 타자를 통해 내 믿음과 선택을 증명받기는 죽기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내 손에서 장미를 피게 하려면 손바닥 전체를 후벼 팔 가시를 가득 움켜쥐어야 가능한 것.
멀티가 돼야 한다고 그렇게 떠들더니 결국 인터컴 헤드셋까지 뒤집어썼다. 그러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덜컥 쇼가 시작될 거다. 내 역할은 아, 모두 다였다. 쇼는 12시, 14시 30분, 17시, 19시 30분 총 네 번이었다. 하늘과 맞닿은 펜트하우스가 선물한 자연광은 해가 뜨고 짐에 따라 옷과 옷을 보고 있는 마음과 생각이 천차만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래서 쇼는 시간이 중요하구나. 배움은 여지없이 계속된다.
마지막 쇼의 중간 무렵 기어이 석양이 통창을 뚫고 서울과 나를 동시에 비췄다. 아주 무겁고 뜨거운 어떤 것이 폭발하듯 밀려왔다. 세 차례 정도 격정의 고비를 극복하자 피날레가 이어졌다.
무서워요, 내가.
이제 나의 쇼를 할 차례가 왔다. 이 봄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