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세계적으로 남성복 패션위크가 한창 열리는 중입니다. 2019년도 S/S 컬렉션입니다.
2019년, 실질적으로 그 숫자를 맞닥뜨리기에는 6개월이나 남았지만 벌써부터 경건해집니다.
1999년이 2000년을 코앞에 둔 세기말의 불안감을 억지로라도 즐기게 했다면, 2019년은 ‘벅차긴 한데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나는 과연 2020년을 버틸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라는 스스로의 존재에 관한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2000년과는 감히 비교가 안 될 정도로 2020년은, 인류 모두가 어린 시절부터 한 번쯤 그려본 ‘초’미래적인 시기가 될 테니까 말입니다.
2000년과 2020년이 뭐가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는 오늘 아침, 보테가 베네타의 이메일을 보고 한결 더 와닿았습니다. 2001년부터 17년여 동안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한 토마스 마이어가 떠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토마스 마이어를 조금 더 근거리에서 만날 기회는 에디터로서 두세 차례 있었습니다. 5년 전쯤 중국 상하이에 보테가 베네타의 플래그십 스토어 오프닝 행사가 열린 날이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인 프레스와 토마스 마이어의 디너가 있던 저녁, 한 가지 지령이 떨어집니다.
“그와 사진은 찍지 말아주세요. 혹여 몰래 찍더라도 소셜 네트워크에 올리지 말아주세요.”
우리는 대다수, 이 부탁 아닌 부탁을 이해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대중에게 보일 자신 모습의 가이드라인을 잡는다는 것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보고 배워온 우리에게는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유명한 사람과는 반드시 함께 사진을 찍어야 직성이 풀리는 에디터 A의 소셜 네트워크 피드에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마이어는 화난 표정이었을까요? 무표정,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답일 것 같습니다. 약간은 체념한 듯 아니면 허탈한 듯, 표정이 없을 뿐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 런던에서 디자이너 톰 포드를 만나는 이벤트에 취재차 갔습니다. 톰 포드 역시 더하면 더했지 사진을 편히 찍을 수 있는 디자이너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시아 마케팅 디렉터가 속삭입니다.
“웬일인지 모르겠는데 오늘은 사진을 마음대로 찍어준대요. 그러니까 날 따라와봐요.”
네, 그날 저는 톰 포드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더 좋았던 것은 톰 포드가 거기에 참석한 모든 사람과 사진을 찍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날 전 그에게 선택받은 사람이었습니다.
2000년에서 2019년 사이 저는 사진 찍는 것을 마냥 불편해하던 토마스 마이어와 시대가 변했다고 느꼈는지 몇몇에게는 사진을 허락한 톰 포드 사이를 우왕좌왕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굉장히 빠르고 다이내믹했으나 그래도 예측 가능한 변화였고, 또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말고의 문제는 남이 아닌 내가 결정하는 것이던 시기, 우리는 그렇게 2000년부터 오늘을 살아왔습니다.
2019년이 가슴 깊이 무겁고도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2020년은 지난 20년과는 달리 한마디로 예측 불가능한 시기가 될 거라는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예측 불가능한 상황의 전조는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급변하고 있는 것 또한 2020년이라는 시기가 상징하는 변화에 대한 중압감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2000년에 태어난 사람들이 물리적 성인이 되는 바로 지금, 1900년대의 가치관은 말 그대로 ‘옛날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아무리 폐쇄적인 인물이라도 과거를 좇는 ‘꼰대’로 비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네, 2020년은 새롭다는 것으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울 것입니다.
2018년 하반기, 이제 우리에게 남은 숙제는 과거 영광과의 이별에 둔감해져야 하는 일입니다. 아마도 훗날 2000년과 2020년 사이에 머물던, 이 시기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기억될 보테가 베네타의 토마스 마이어를 떠나보내야 하듯 말입니다.
저와 <데이즈드>는 2019년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기차를 타고 북한을 넘어 중국, 러시아를 거쳐 프랑스 파리로 갈 그날을 말입니다. 정정합니다. 2019년을 단지 기다리는 것이 아닌 가장 능동적으로 그 시기를 데려오는 데 앞장서는 존재가 되겠습니다.
결코 한발 앞서 걷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미 시작된,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부디 이 미지의 길에 동참해주십시오. 발맞춰 먼저 갑시다. 그곳을 향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