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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201702 #106

By EDITOR'S LETTER

술을 어른에게 배우지 못했습니다.
학창 시절 그놈의 생일 파티에서 시작된 술버릇은 따라서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몰래 급하게
마시는 것이 몸에 밴 나머지 술 마시는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LTE급이며, 누구도
잔소리한 사람이 없었으니 술에 취하면 그냥 산이고 들이고 뻗어버리고 맙니다.
고로 요즘 술자리에서의 제 유통기한은 90분이 채 되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개념도 어른에게 배우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건 오히려 제 부모의 경제관에 반하고자 한 나머지 역효과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들의 타고난, 철저한 절약 정신이 마냥 안타까웠고 ‘그래 나는 젊으니 현재를 즐기겠소’라고
부르짖으며 적금은커녕 저금도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고로 제 통장은 한여름에도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달랐습니다.
시작은 유년기에 만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습니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에게
느끼는 이분적인 동경과 그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통해 느끼는 양면성은,
사랑은 자아의 실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제 세대의 필독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해변의 카프카>는 습하고 외졌지만 곧고 개인적인 사랑을 가르치며 사랑의
정신적인 폭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더불어 그쯤 함께한, 김한길 씨가 쓴 소설 <여자의 남자>는
쾌락과 유희가 주는 사랑이 지닌 게임의 법칙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10대 시절 끝 무렵에 만난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영화들은 단편, 장편 가릴 것 없이
사랑이 주는 판타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목도하게 만들었습니다.
고로 술버릇이나 경제 관념과 달리 제 사랑은 언제나 풍요롭고 안락하며 행복하…다고
말하면 참 좋겠는데 말입니다.
사랑은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만만치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노란색 숫자 1에 애간장을 태우고
틈만 나면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상상의 날개가 지구를 넘어 우주로 향하곤 하니,
말이 사랑이죠. 정신병입니다. 네. 그러합니다.

맞네요.
사랑은 술버릇이나 경제 관념처럼 어른에게 배우는 어떤 이론이나 습관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제가 판단하기에 사랑은 저 스스로 깨지고 부딪히며 일어서고
나아가서 쟁취해야 할 치열한 전쟁, 그것과도 같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르만 헤세, 무라카미 하루키, 김한길, 프랑소와 오종 등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들의 안내 덕분에 사랑이 차고 넘치는 사랑제일주의자가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오글거려도,
전 이렇게 말하며 이 글을 맺으려 합니다.

사랑을 배울 수는 없지만, 사랑이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랑을 사랑하시길.

201701 #105

By EDITOR'S LETTER

11월 말,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10대 젊은 프랑스 디자이너들과 대화하면서 생긴 일이죠.
어떤 디자이너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시큰둥합니다.
한국 음악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반에 빅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제게 묻는 것이,
“북한은 괜찮냐?”는 것입니다.
뭐 해외에서는 늘상 듣는 질문이지만 고등학생이 물으니 약간 당황스럽더군요.
“우리는 한 가지의 언어를 쓰며, 우리는 통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통상적인 제 답변에 그들이 다시 말합니다.
“그러나 김정은(똑똑하게 발음하며)은 젊어서 어디로 튈지 모른다. 게다가 남한(우리는
우리를 그렇게 부르지 않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영어는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그저
South Korea이지요)도 정부 문제로 시끄럽지 않은가.”

카페 내부가 제법 추웠음에도 웃옷을 벗었습니다.

꽤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눈빛이 생생합니다.
맹세코, 사대주의자는 아닌데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태도는 조금
부러웠습니다.

프랑스의 논술형 대입 자격 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eate)는 1808년 나폴레옹 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그 철학적인 질문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합니다.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가?(1993)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1996)
타인을 심판할 수 있는가?(2000)

우리가 정답을 찾는 동안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적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표현합니다.

다시, 우리의 광장을 봅니다.

엄마에게 귀에 박히게 들었던
친한 친구와도 하지 말라는, 해코지 당한다는 그 정치와 사회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는
우리의 10대들이 있습니다.
무너진 이 땅의 자존심을 다시 세울 훌륭한 자양분입니다.

더 이상 그런 그들에게 오지선다형 ‘수능’을 강조하는 것은 ‘죄’입니다.
이제 반성을 넘어 결심을 합니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차마 품는 것조차 안 됐던 ‘생각’을 하려 합니다.
패션 잡지에게 생각이란, 바로 ‘저널리즘’일 것입니다.

코리아는 우리의 생각을 말하고 표현하겠습니다.
이제 2017년입니다.
벌써 그렇게 됐네요.

201612 #104

By EDITOR'S LETTER

“학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가슴 언저리에 흰 손수건을 옷핀으로 고정하며 엄마는 말을 이어갔다. 설거지를 하다가 막
나온 듯 손에는 물기가 묻어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완공된 50제곱미터가 채 안 되는
주공아파트의 신발장은 지금 떠올려보면 보잘것없었다. 다행인지 내 키는 135센티미터도 안
됐다. 엄마의 훈계가 이뤄지기엔 그 신발장은 여느 강당 부럽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밤바람 쐬면 감기 안 낫는 댔지?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지. 빨리 들어오렴.”
“아빠 회사 사모님들이 놀러 오신 댔으니 동생하고 신발장 정리 잘해놓고.”
“새로 이사 온 아래층 형들한테 대들지 말고. 한 살 차이라도 형님은 형님이란다.”
“중학교 때부터는 선배님들 말씀 잘 들어야 한다더라. 상냥하고 깍듯하게 행동해.”

그러면서 모든 당부의 끝엔 ‘Fine thank you’ 뒤에 자동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and you?’처럼
“엄마는 하나뿐인 우리 아들을 믿는단다”가 이어졌다. 그렇게 그 작고도 큰 신발장에서, 남의 콩
반쪽도 탐내지 않던 엄마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배웠다.

10대 후반 무렵, 먼 길을 떠나던 그날 아침에도 신발장은 여전히 바빴다.
“타지에서 공부하면서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조용히 네가 하는 일을 성실히 해나가야 해. 그게
세상을 돕는 거란다.”
순응, 엄마가 사회에서 배운 대응은 순응이었다.
엄마의 믿음을 나 역시 믿었고, 믿고 싶었다. 말마따나 하나뿐인 ‘아들’이고 싶었다.

선배님, 선생님, 의사 선생님, 판사님, 변호사님, 검사님, 대장님, 교수님, 법관님, 박사님,
부녀회장님, 친목회 대표님, 산악회 회장님, 볼링센터 센터장님, 차장님, 부장님, 상무님, 이사님,
사장님, 그리고 대통령님….
엄마는 내게 수많은 ‘님’을 가르쳤다. 정체불명의 높고 다른 ‘님’들의 말씀을 믿고 따름으로써
우리는 안전하고 안정하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 가장 꼭대기,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우리
스스로 겹겹이 둘러싸고 또 둘러싸 그들을 보호해주는 것이 바로 순리라고 가슴에 못
박았더랬다.

며칠 전 그런 엄마에게서 믿기 힘든 문자를 받았다.
‘아들, 세상이 미쳤어.’
그 흔한 돌았다는 표현도 한 번 안 하던 우리 엄마가 미쳤다니, 엄마가 미쳤다고 말하다니.
엄마는 그렇게 신발장을 흔들었다. 알면서도 채 다 알지 못했던 지금의 세상. 나는 맹물조차 삼킬
수 없었다.

학교 선배님도 나쁜 짓을 하면 인사를 안 할 수도 있고,
의사 선생님도 거짓말을 하면 욕을 할 수도 있으며,
회사 사장님이 부정을 저지르면 경찰서에 신고할 수도 있고,
대통령님도 잘못을 하면 대가를 치를 수 있는 것이거늘.

엄마는 결코 가르친 적 없던, 권위주의.
이것이 만든 현대판 신분과 계급의 올가미 속에 우리 사회는 곪고 썩었다.
창조는커녕, 상식은커녕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

엄마는 그 시절 주공아파트 신발장에서의 나만큼이나 한없이 작아졌다.
하나뿐인 엄마를 이 ‘미친’ 세상에서 구해주는 것이야말로 이제 내 몫이다.
가슴팍 손수건의 온기는 아직 남아 있다.
나는 ‘님’이 아닌 ‘우리’를 믿는다.

201611 #103

By EDITOR'S LETTER

착하게 산다고 해야 할까요?
요즘 그렇습니다. 꼬박꼬박 장도 보고, 톡톡한 털 슬리퍼도 사고, 제법 근사하게 커튼도
만들었습니다. 빗소리도 챙겨 듣고, 못 믿으시겠지만 감정에 따라 변하는 다람쥐의
걸음걸이까지도 느끼고 삽니다. 친구 녀석들이 찍어대면 그렇게 타박하던 ‘음식 사진’도 나서서
찍고,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근처 공원에서 들꽃을 꺾을 예정이니 말 다 했죠. 행복이 가득한 집,
그 표본입니다.

자유. 거창하게 이런 말을 써봅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유는 통속적으로 크게 세 가지 의미인
듯합니다. 일제 강점기를 벗어난 뒤 누렸던 민족적인 독립과 교도소를 출소한 후 얻게 되는
육체적인 해방, 그리고 사춘기 학생이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김혜자 씨처럼 남들은
이해 못 하는 3차원적인 가출. 그렇다면 지금 제가 누리는 자유는 독립이며 해방이자 일종의
가출입니다. 육체적으로 제약에서 벗어난 것은 사실이나 남들에게 마냥 다 이해를 바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하나 더,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다. 제게 자유는 생활이더군요.

‘분명 살긴 살았는데, 산 적이 없었구나.’
비로소 ‘생활’을 하다 보니 참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날이 갈수록 또렷하고
선명하게 나 자신을 발견하는 체험은 에디 슬리먼의 패션쇼를 보며 울고 웃었던 감개무량함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사회가 씌운 녹슨 코뚜레를 벗고 보니 오히려 진짜 용기가 생겼습니다.
명함에 기댄 채 뒤로 숨던 그 녀석은 비겁하고 멍청했습니다.

한마디로 내가 누리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이 시간, 전
최대한 깊고 충분히 자유로울 예정입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패션을 찾을 것입니다.
똑같이 살지 마세요. 한국의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자유’는 자유가 아닙니다. 서서히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조금씩 혹은 크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모든 것은 이 거짓말에서부터 시작됐을
겁니다. 미안합니다.

자유를 찾으세요.
여기는 런던입니다.

201610 #102

By EDITOR'S LETTER

화요일, 목요일이면 아파트에 장이 들어섭니다.
제가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생선 가게입니다. 흰 살 생선을 유독 좋아해 가리지 않고 먹는 편입니다.
지난 화요일 장, 이제는 뭐 떨어져 사는 어머니보다 자주 뵙는 생선 가게 아주머니가 민어 한 마리를
권합니다. 큰 것은 8만원, 작은 것은 3만5000원. 만만치 않은 가격입니다.
짐짓 뜸 들이는 제 옆으로 이내 다가오더니 제철이고 더위를 쫓는 데 효과적이며 맛이 기가 막히다,
또 오늘따라 싱싱한 국내산이 들어왔다고 한 번 더 속삭입니다. 까짓 고생한 제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싶어 작은 것 두 놈 구입해서, 먼저 한 마리 구워 먹어봤습니다.

입에 살살 녹는다고 해야 할까요? 그냥 프라이팬에 올리브 오일 휘 둘러 구워냈을 뿐인데
담백하다 못해 구수하기까지 합니다. 머리 부분 구석구석 발라 먹다 보니, 가시조차 달콤합니다.
비싼 값어치를 하는 놈이더군요.

문득 왜 백성 민(民)의 민어(民魚)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세종실록>에 도미찜보다 한 수 위라고 기록될
만큼 예로부터 임금의 음식, 귀족 생선이라고 칭하고, 여전히 누구나 맘 편히 먹기는 어려운 고가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알아보니 그 까닭이 어처구니없었습니다. 중국인들이 면(綿)어라고 불렀던 발음이
‘민’과 비슷하고, 획수가 많은 면보다 민이 더 편해 민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백성이 힘들게 잡아
올리면 귀족이 먹는, 백성의 피땀으로 점철된 ‘민’어였던 셈입니다.

그날 저녁 주변에 사는 패션업계 사람들을 집에 불러 남은 민어 한 마리를 더 구웠습니다. 이놈의 민어가
화이트 와인 안주로도 기가 막히지 않느냐는 자랑을 곁들여 저도 모르게 이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어쩌면 마냥 패션이 좋다고 이러고 사는 우리 다 민어가 아닐까.
면어를 민어라 부르며 양반의 밥상에 나르던 그 어부의 심정이 우리 신세와 별반 다르지 않지 않을까.

요즘 패션계는 서로 자신의 몫을 차지하려는 혈투로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무섭습니다.
누구도 넉넉하지 못하니 작은 먹이라도 떨어지면 전력투구해서 서로의 육신이 갈기갈기 찢어질 정도로
다투고 싸워서 쟁취하는 게 일상입니다. 한 달 마감이 끝나면 마치 거친 황소와 투우라도 벌인 듯 녹초가
되고 맙니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너무 많이, 너무 멀리 와서가 아니라
지금 제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서입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척박한 한국 땅에서
패션을 사랑하는 여러분마저 민어의 모순을 범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데이즈드>는 몫을 챙기지 않는 패션 잡지가 되고자 합니다.
진실로 귀하지만 패션을 사랑하는 약자와 소수, 모두 함께 먹을 수 있는 진짜 민어가 되겠습니다.
+
<데이즈드> 100호 파티를 한 푼의 몫도 바라지 않고 도와준
패션 칼럼니스트 오선희 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16 SPECIAL EDITION

By EDITOR'S LETTER

100권째,
그게 뭐라고…
유난스럽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판 의 99권을 지배하고
뿐만 아니라 지난 10년간 국내외 10~20대 젊은이들의 문화를 재편한,
빅뱅의 탄생 10주년,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면

이건
안경을 쓰고 싶어서 눈을 안 좋게 만든 게 아니다.
원래 안경을 달고 태어났던 거다.

8월 19일,
이럴 때 쓰는 말, 공교롭게도
빅뱅이 태어나고 10주년이 되는 날 한국판 의
100번째 생일이 겹친다.

‘경사’다.

하려면 제대로 할 것.

같은 포부로 지난 4월 8일, 이 사실을 공유한 후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수백 통의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 미팅, 회의…
서울뿐 아니라 일본의 오사카, 홍콩 등을 당일치기로 오가며
약 20여 일간 빼곡하게 촬영하며 완성한 수천 장의 사진에 담긴

빅뱅 다섯 멤버
지드래곤, 탑, 태양, 대성, 승리의 가장 사적이고 극적이며 충동적인
진짜 ‘LIKE’를 고르고 골라 최신의 컬렉션과 함께 담았다.

“다신 이런 일은 없을 거야.”

촬영 내내 그렇게 외쳤지만
누구보다 패션 사진의 위대함을 알고 한 컷의 창조물을 뽑아내기 위한
고단함을 즐겼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지은, 포토그래퍼 홍장현,
헤어 태현, 메이크업 임해경 외 수많은 어시스턴트 친구들과 촬영에
협조해준 시민, 국민, 여러분. 그리고 진정성이 뭔지, 아티스트가 뭔지
배우게 해준 빅뱅 다섯 멤버.

힘주어 말하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덕분에 훗날 내 무덤 옆이 외롭지 않게 생겼다.
한국판 가 이 세상 어디에도 꿀리지 않게 생겼다.

100th issue.
What’s the big deal? I thought.
I didn’t want to make a big fuss about it, nor do anything about it.

However,
After looking over 99 issues of Korea.
We got the chance to cover BigBang’s 10-year anniversary.
They are the artists who reinvented the culture of teenagers and people in their 20s.

It is like the saying:
“I didn’t make my eyes worse to wear glasses,
I was born with glasses.”

19th of August.
Funnily enough,
BigBang’s 10-year anniversary is the exact same date with
Korea’s 100th birthday.

This is a call for a ‘celebration’.

If we were going to do it, we were going to do it right.

I shared my thoughts and details on the matter to my staff members on 8th of April.
Since then, we went through hundreds of messages, emails, meetings, and brainstorming
for over 100 days. We worked in not only Seoul, but also took one-day trips to Osaka and
Hong Kong. In just about 20 days, we took thousands of photos of BigBang’s 5 members.

G-Dragon, T.O.P, Taeyang, Daesung, and Seungri.
We tried to express their most personal, extreme, and impulsive
‘LIKE’s through the new collection.

“This won’t happen again.”

I told my staff members during the whole process.
I would like to thank our creative director Gee Eun, who knows the greatness of fashion
photographs and enjoys the suffering in order to achieve that one great shot, along with
our photographer Hong Janghyun, hair artist Taehyun, makeup artist Lim Heakyung,
our assistants, and even random members of the public who helped us during the whole
process. Lastly, I would like to thank the members of BigBang who showed us what being
authentic, and being a true artist is like.

I really don’t like making heavy statements.
But I realize that I won’t feel alone when it’s my time to go.
Korea will now stand proud by itself in the middle of the world.

 

201609 #101

By EDITOR'S LETTER

 

1년이 되었습니다.
한국판 <데이즈드>에 작년 8월 27일 입사했으니까 말입니다.
날짜까지 세고 있지는 않았는데(의식은 했지만) SNS가 편하게도 알려줍니다.
이로써 이번 9월호가 제가 만든 12번째 한국판 <데이즈드>입니다.
더불어 100호를 기념하는 특별판 5권도 곧 세상에 나올 예정이니 1년 사이 17권을 만들었네요.

또렷하게 기억하는 작년 8월 27일입니다.
15년여간 여러 다른 잡지 회사도 거쳤고, 패션, 뷰티 할 것 없이 크고 작은 이 바닥 회사에서 회사원 생활을 했던 터라
강단은 센 편이라 자부했는데
<데이즈드>는 <데이즈드>답게 그 시작부터 남달랐습니다.

에디터가 없어도 너무 없더군요.
정식 에디터가 지금도 패션팀에서 근무하는 서석빈 기자 한 명뿐이었습니다.
잡지사라는 곳이 편집장이 바뀌고 또 다른 흐름이 오게 되면 당연히 에디터들이 싹 바뀌는 과정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한 명이라뇨.
단 하루 만에 아주 자연스럽게 데이즈드(DAZED; 충격을 받아서 멍한 상태)화된 것은 맞습니다.
감사한 일일지도요.

바꿔 생각해보니 에디터가 한 명은 아니더군요.
저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눈빛이 초롱초롱한 인턴 에디터 한 명.
도합 2.5명.

이젠 제가 왜 이런 불가능하고 무모한 상황에 기어들어 오게 됐는지 명분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마저도 없다면 이곳에 꿈과 열정을 바칠 까닭은 당연히 없을 테니까요.
답은 하나였습니다.
‘맞다. 패션을 하기로 했었지. 나는 패션 콘텐트를 만들고자 했었지.’
패션 콘텐트 제작에 순수하게 돈을 쓰는 곳, 아무리 생각해봐도 패션지뿐이더군요.

2.5명으로는 전화를 받기도 힘들었습니다. 주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대략 이랬던 것 같습니다.
“가진 게 없어서 물질로 드릴 건 없습니다.
대신 여러분의 작업이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을 수 있도록 자유를 드리겠습니다.
그저 <데이즈드>란 이름을 충분히 파시고 공유하면서, 놀이터라고 생각하고 즐겨주세요.
주신 도움은 살면서 갚고, 해보고도 안되면 제가 먼저 스스로 물러나겠습니다.”

삶이 바빠 죽겠는데
정말 이건 말도 안 되는 건데
한 명씩 두 명씩 수십 명씩
<데이즈드>의 ‘사외’ 에디터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2.5명이 25명이 되고 250명이 되면서
제가 <데이즈드>에서 꼬박 1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놀라운 일도 발생했습니다.
이제 정식 에디터만 5명이랍니다. 하하. 물론 저 빼고 말입니다.

패션지에 대한 존경은커녕 존재감마저 사라지는 어려운 시기,
한국판 <데이즈드>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고맙고 기쁘고 행복한지는 말이 아닌 다짐으로 하겠습니다.

전 패션 콘텐트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한국판 <데이즈드>는 패션 콘텐트를 만드는 패션지입니다.
앞으로도, 그 어떤 순간에도 이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201608 #100

By EDITOR'S LETTER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에 들어갑니다.
인스타그램 2번 들어갈 때 페이스북은 1번꼴로요.
세 달 전쯤에는 스냅챗도 깔았습니다. 아직 남의 것은 볼 줄 아는데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릅니다.
포켓몬 GO 게임이 유행이라고 해서 어제 새벽에는 어떻게 하는지도 살펴봤습니다.
속초 갈 정도로 흥미는 없지만요.

뉴스는 JTBC <뉴스룸>을 챙겨 봅니다.
모바일로는 ‘다음’ 홈페이지를 주로 접속하는데, 검색은 구글로 하는 편입니다.
죄송합니다. 신문은 사서 읽지는 않고, 가리지 않고 웹으로 봅니다. .

드라마는 KBS 일일드라마 <여자의 비밀>을 즐겨 보고,
영화는 1만원을 지불하고 그제 <비밀은 없다>를 VOD로 봤습니다. 공교롭게도 둘 다 ‘비밀’이 들어가는군요.
예능 프로그램은 <라디오스타>, <엄마가 뭐길래>를 좋아하고 <음악의 신 2>는 끝나서 아쉬워했습니다.
음악은 가장 최근에 닉 조나스의 새 앨범을 유튜브에서 뮤직비디오와 함께 들었고요.
XXX의 ‘디올 옴므’란 곡도 가사가 재미있기에 찾아 들었습니다.

패션 잡지로는 가장 최근에 <시스템(System)>을 구입했습니다.
온라인으로는 비즈니스 오브 패션(Business of Fashion)이나 모델스닷컴(Models.com)을 자주 들어갑니다.

심심하면, 홈쇼핑 방송을 틀어놓고
잠이 안 오면, <섹스 앤 더 시티>를 봅니다. 시즌 4가 가장 재미있어서 잠들기 어렵습니다.

미디어가 만든 거대한 숲 속에서 제 취향은 까발려집니다.
전 발가벗겨진 채 오늘도 작디작은 램프 하나를 들고 <데이즈드>의 갈 길을 찾습니다.
옅은 바람에도 꺼질락 말락 하는 볼품없이 낡은, 구형 램프입니다.

누군가는 <데이즈드>가 여성지라고 하더군요.
여배우만큼이나 싫어하는 말입니다만,
기왕 하나의 성(性)으로 패션 잡지를 나누려거든
차라리 <데이즈드>는 ‘양(兩)성지’라고 불리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그래봤자 <한국판>이라고 하더군요.
라이선스 잡지라는 한계는 인정합니다만,
한번 굳은 마음 먹고 조금이라도 더 글로벌한 영향력을 갖춘 에디션이 되어볼 테니
<데이즈드> 한국판이 아닌 한국판 <데이즈드>라고 불리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대부분은 ‘잡지 시장은 죽었다’고 하더군요.
무슨 말인지 그분들보다 훨씬 더 피부로 느낍니다만,
시류에 개의치 않고 ‘패션 잡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인쇄물로 영원할 테니
클릭이 아닌 ‘소장’하고 싶은 잡지로 불리면 좋겠습니다.

구구절절한 까닭은 사실 이번 8월호가,
<데이즈드> 한국판이 100번째로 숨을 쉬는 꽤나 의미 있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호가 100호가 아닌 99.9호로 표기된 이유,
전 그것을 위해 다시 달려가겠습니다.

이제는 너무도 친숙해진 작은 램프가 숲을 향해 불빛을 당돌하게 비춥니다.

201606 #98

By EDITOR'S LETTER

중학교 시절 제가 쓰던 방에는 작은 창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창은 제 키보다 두 뼘은 더 높이 있어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려면 의자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뭐가 그렇게도 답답했는지 한겨울에도 전 의자에 올라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그럴 때면 늘 여지없이 저를 맞은 것이 바로 달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습으로, 또 어느 날은 뾰족하게 날이 선 모습으로, 가끔씩은
소시지 반찬, 네, 그 동그란 미소를 띠기도 했습니다.

그 달이 많이 좋았나 봅니다.
중학교를 다니던 3년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달을 향해 뭔가를 썼으니까요.
달의 모습이 매일 변화하는 것처럼 달에 대한 역할도 매일 달랐습니다. 친구도 됐다가 짝사랑하는
연인도 됐다가 미래의 내 자신도 됐다가 하나님도 됐습니다. ‘달’이라는 제목으로 들쑥날쑥
써 놓은 메모가 3권의 노트에 빼곡하게 담긴 것을 보면 참 많이도 의지했나 봅니다.
누구나 그렇듯 이상을 찾아 헤매던, 외롭던 사춘기 시절이었으니까 말입니다.

지난 한 달 좀 힘들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제때 못 가 생니를 뽑아낼 만큼 곪아버린 교정 치료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불어온 봄바람에 싱숭생숭 코 평수가 넓어져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랬습니다.
누군가가 나사 하나가 빠진 것 같다고 하기에 저도 모르게 이래버렸습니다.

“몰라. 사춘기인가 봐.”

思春期. 한자로 사춘기는 생각할 사, 봄 춘, 때 기, 이렇습니다.
여기서의 봄은 만물이 소생함을 의미합니다. 땅속에서 솟아 껍질을 깨는 아픔, 그러면서 어떤
세상 밖 풍경이 펼쳐질지 꿈과 호기심을 갖게 되는 그런 봄을 말입니다.

그렇게 따져보니 사춘기가 꼭 10대만의 특권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열매를 맺는 쾌락을 좇기보다는 세상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동기 부여를 싹 틔우려는
창조적인 소수, 그들에게 사춘기는 끝이 없는 터널처럼 반복될 테니까요.
멀리서 찾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척박한 한국 잡지 시장에서 남성지도, 여성지도 아닌 패션지의
형태로 미국도 아닌 영국에서 태어난 <데이즈드>야말로 평생 사춘기 팔자, 아니겠습니까?
마냥 씨앗만 뿌리다 보니 독자 여러분에게 휘황찬란한 부록 한번 못 드린 마음에서 아마도 제가
대신 사춘기 병에 걸렸나 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인 사춘기를 즐기겠습니다.
안정보다는 변화, 기득권보다는 미래의 세력, 라이프스타일보다는 독창적인 패션을 지향하며
지속적으로 새싹이 움트도록 씨앗을 뿌리고 거름을 줄 것입니다.
이달 6월호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역시 저희와 맥락을 함께합니다.
제 작은 창을 비추며 저를 달래던 그 달은 <데이즈드>에게도 ‘유효’합니다.

 

201607 #99

By EDITOR'S LETTER

아이가 아버지의 손바닥을 샌드백 삼아 잽을 날린다.
“원, 투, 원, 투.”
아버지의 기함에 따라 고사리손이 하늘을 찌르듯 재빠르다. 기척도 좋다.

다음은 기마 자세다.
아버지의 무릎 위로 아이의 두 발이 각각 나뉘어 포개진다.
“원, 투, 원, 투.”
한결같은 아버지의 기함에 아이는 양팔을 벌린 채 무릎을 굽혔다 펴길 반복한다.

실수를 할 때면 더 행복해진다.
아버지 품에 안기면 그만이다.
아버지의 두 팔을 딛고 푸른 하늘을 나르는 관람은 보너스다.

오늘 한 생명과 헤어졌다.
내내 울었다.
보내고 오는 길,
구름이 어찌나 그림 같은지, 또 공기는 어찌나 부드러운지
화딱지마저 났다.

그리고 창을 열어봤던 장면,
아이와 아버지는 서로의 정(情)을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다.
유한한 유통기한이 주는 번뇌는 이놈의 정의 힘으로 미덕이 된다.

되레 나는 애써왔다.
정 따위,
실속 있게 살려면 쿨해져야지,
이 반대의 끝에 있는 것이 정이지, 없애야지 했다.

낯설었다.
정을 뗄 때 일어나는 감정에 이리 솔직해도 되는지 겁이 날 정도로
낯설었다.

마음이 한없이 작아진다.
약해지고 마구 구겨진다.

혼탁한 망상에 기대 울고 싶다.

보니,
낯설지가 않다.

욕 나오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