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어른에게 배우지 못했습니다.
학창 시절 그놈의 생일 파티에서 시작된 술버릇은 따라서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몰래 급하게
마시는 것이 몸에 밴 나머지 술 마시는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LTE급이며, 누구도
잔소리한 사람이 없었으니 술에 취하면 그냥 산이고 들이고 뻗어버리고 맙니다.
고로 요즘 술자리에서의 제 유통기한은 90분이 채 되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개념도 어른에게 배우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건 오히려 제 부모의 경제관에 반하고자 한 나머지 역효과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들의 타고난, 철저한 절약 정신이 마냥 안타까웠고 ‘그래 나는 젊으니 현재를 즐기겠소’라고
부르짖으며 적금은커녕 저금도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고로 제 통장은 한여름에도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달랐습니다.
시작은 유년기에 만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습니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에게
느끼는 이분적인 동경과 그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통해 느끼는 양면성은,
사랑은 자아의 실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제 세대의 필독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해변의 카프카>는 습하고 외졌지만 곧고 개인적인 사랑을 가르치며 사랑의
정신적인 폭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더불어 그쯤 함께한, 김한길 씨가 쓴 소설 <여자의 남자>는
쾌락과 유희가 주는 사랑이 지닌 게임의 법칙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10대 시절 끝 무렵에 만난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영화들은 단편, 장편 가릴 것 없이
사랑이 주는 판타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목도하게 만들었습니다.
고로 술버릇이나 경제 관념과 달리 제 사랑은 언제나 풍요롭고 안락하며 행복하…다고
말하면 참 좋겠는데 말입니다.
사랑은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만만치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노란색 숫자 1에 애간장을 태우고
틈만 나면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상상의 날개가 지구를 넘어 우주로 향하곤 하니,
말이 사랑이죠. 정신병입니다. 네. 그러합니다.
맞네요.
사랑은 술버릇이나 경제 관념처럼 어른에게 배우는 어떤 이론이나 습관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제가 판단하기에 사랑은 저 스스로 깨지고 부딪히며 일어서고
나아가서 쟁취해야 할 치열한 전쟁, 그것과도 같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르만 헤세, 무라카미 하루키, 김한길, 프랑소와 오종 등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들의 안내 덕분에 사랑이 차고 넘치는 사랑제일주의자가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오글거려도,
전 이렇게 말하며 이 글을 맺으려 합니다.
사랑을 배울 수는 없지만, 사랑이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랑을 사랑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