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제가 쓰던 방에는 작은 창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창은 제 키보다 두 뼘은 더 높이 있어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려면 의자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뭐가 그렇게도 답답했는지 한겨울에도 전 의자에 올라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그럴 때면 늘 여지없이 저를 맞은 것이 바로 달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습으로, 또 어느 날은 뾰족하게 날이 선 모습으로, 가끔씩은
소시지 반찬, 네, 그 동그란 미소를 띠기도 했습니다.
그 달이 많이 좋았나 봅니다.
중학교를 다니던 3년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달을 향해 뭔가를 썼으니까요.
달의 모습이 매일 변화하는 것처럼 달에 대한 역할도 매일 달랐습니다. 친구도 됐다가 짝사랑하는
연인도 됐다가 미래의 내 자신도 됐다가 하나님도 됐습니다. ‘달’이라는 제목으로 들쑥날쑥
써 놓은 메모가 3권의 노트에 빼곡하게 담긴 것을 보면 참 많이도 의지했나 봅니다.
누구나 그렇듯 이상을 찾아 헤매던, 외롭던 사춘기 시절이었으니까 말입니다.
지난 한 달 좀 힘들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제때 못 가 생니를 뽑아낼 만큼 곪아버린 교정 치료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불어온 봄바람에 싱숭생숭 코 평수가 넓어져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랬습니다.
누군가가 나사 하나가 빠진 것 같다고 하기에 저도 모르게 이래버렸습니다.
“몰라. 사춘기인가 봐.”
思春期. 한자로 사춘기는 생각할 사, 봄 춘, 때 기, 이렇습니다.
여기서의 봄은 만물이 소생함을 의미합니다. 땅속에서 솟아 껍질을 깨는 아픔, 그러면서 어떤
세상 밖 풍경이 펼쳐질지 꿈과 호기심을 갖게 되는 그런 봄을 말입니다.
그렇게 따져보니 사춘기가 꼭 10대만의 특권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열매를 맺는 쾌락을 좇기보다는 세상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동기 부여를 싹 틔우려는
창조적인 소수, 그들에게 사춘기는 끝이 없는 터널처럼 반복될 테니까요.
멀리서 찾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척박한 한국 잡지 시장에서 남성지도, 여성지도 아닌 패션지의
형태로 미국도 아닌 영국에서 태어난 <데이즈드>야말로 평생 사춘기 팔자, 아니겠습니까?
마냥 씨앗만 뿌리다 보니 독자 여러분에게 휘황찬란한 부록 한번 못 드린 마음에서 아마도 제가
대신 사춘기 병에 걸렸나 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인 사춘기를 즐기겠습니다.
안정보다는 변화, 기득권보다는 미래의 세력, 라이프스타일보다는 독창적인 패션을 지향하며
지속적으로 새싹이 움트도록 씨앗을 뿌리고 거름을 줄 것입니다.
이달 6월호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역시 저희와 맥락을 함께합니다.
제 작은 창을 비추며 저를 달래던 그 달은 <데이즈드>에게도 ‘유효’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