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가슴 언저리에 흰 손수건을 옷핀으로 고정하며 엄마는 말을 이어갔다. 설거지를 하다가 막
나온 듯 손에는 물기가 묻어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완공된 50제곱미터가 채 안 되는
주공아파트의 신발장은 지금 떠올려보면 보잘것없었다. 다행인지 내 키는 135센티미터도 안
됐다. 엄마의 훈계가 이뤄지기엔 그 신발장은 여느 강당 부럽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밤바람 쐬면 감기 안 낫는 댔지?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지. 빨리 들어오렴.”
“아빠 회사 사모님들이 놀러 오신 댔으니 동생하고 신발장 정리 잘해놓고.”
“새로 이사 온 아래층 형들한테 대들지 말고. 한 살 차이라도 형님은 형님이란다.”
“중학교 때부터는 선배님들 말씀 잘 들어야 한다더라. 상냥하고 깍듯하게 행동해.”

그러면서 모든 당부의 끝엔 ‘Fine thank you’ 뒤에 자동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and you?’처럼
“엄마는 하나뿐인 우리 아들을 믿는단다”가 이어졌다. 그렇게 그 작고도 큰 신발장에서, 남의 콩
반쪽도 탐내지 않던 엄마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배웠다.

10대 후반 무렵, 먼 길을 떠나던 그날 아침에도 신발장은 여전히 바빴다.
“타지에서 공부하면서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조용히 네가 하는 일을 성실히 해나가야 해. 그게
세상을 돕는 거란다.”
순응, 엄마가 사회에서 배운 대응은 순응이었다.
엄마의 믿음을 나 역시 믿었고, 믿고 싶었다. 말마따나 하나뿐인 ‘아들’이고 싶었다.

선배님, 선생님, 의사 선생님, 판사님, 변호사님, 검사님, 대장님, 교수님, 법관님, 박사님,
부녀회장님, 친목회 대표님, 산악회 회장님, 볼링센터 센터장님, 차장님, 부장님, 상무님, 이사님,
사장님, 그리고 대통령님….
엄마는 내게 수많은 ‘님’을 가르쳤다. 정체불명의 높고 다른 ‘님’들의 말씀을 믿고 따름으로써
우리는 안전하고 안정하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 가장 꼭대기,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우리
스스로 겹겹이 둘러싸고 또 둘러싸 그들을 보호해주는 것이 바로 순리라고 가슴에 못
박았더랬다.

며칠 전 그런 엄마에게서 믿기 힘든 문자를 받았다.
‘아들, 세상이 미쳤어.’
그 흔한 돌았다는 표현도 한 번 안 하던 우리 엄마가 미쳤다니, 엄마가 미쳤다고 말하다니.
엄마는 그렇게 신발장을 흔들었다. 알면서도 채 다 알지 못했던 지금의 세상. 나는 맹물조차 삼킬
수 없었다.

학교 선배님도 나쁜 짓을 하면 인사를 안 할 수도 있고,
의사 선생님도 거짓말을 하면 욕을 할 수도 있으며,
회사 사장님이 부정을 저지르면 경찰서에 신고할 수도 있고,
대통령님도 잘못을 하면 대가를 치를 수 있는 것이거늘.

엄마는 결코 가르친 적 없던, 권위주의.
이것이 만든 현대판 신분과 계급의 올가미 속에 우리 사회는 곪고 썩었다.
창조는커녕, 상식은커녕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

엄마는 그 시절 주공아파트 신발장에서의 나만큼이나 한없이 작아졌다.
하나뿐인 엄마를 이 ‘미친’ 세상에서 구해주는 것이야말로 이제 내 몫이다.
가슴팍 손수건의 온기는 아직 남아 있다.
나는 ‘님’이 아닌 ‘우리’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