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EDITOR’S LETTER

2017 SPECIAL EDITION

By EDITOR'S LETTER

언젠가는 만날 줄 알았다.
정확히 말하면 이야기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이곳일 줄은 몰랐다.
바로 여기, 직장인 그득한 도심 한복판 강남파이낸스센터에 위치한 컨버스 사무실에서
오혁을 대면할 줄이야.

첫 만남은 아니었다.
단지 그의 음성을 오롯이 듣고 그의 생각을 감히 유추도 해보며 그에 대해 집중할 수
있었던 그 기다렸던, 그 시간이 처음이었다.

결론적으로 일은 아니었다.
일이라고 하기에 오혁은 대화하기 충분히 좋은 상대였다.
한 번 더 말해, 대화를 하기 좋은 상대를 만난다는 것은 일이 아닌 행운이다.

더불어 오혁은 사진 찍기에 좋은 상대이기도 하다.
는 오혁을 72시간 동안 우리나라 곳곳의 길거리에 컨버스 원스타만
신긴 채 던져놨다. 어디에서나 자신의 촬영 커트를 ‘발라’ 먹는 오혁이었기에
재래시장에서도, 웃통을 까도, 이름 모를 할아버지 옆에서도, 심지어 생애 처음 한국에
왔고 역시 생애 처음 오혁을 마주한 파란 눈의 사진가 앞에서도 그 재능을 증명해냈다.

길거리는 가공되지 않을 때 매력적이란 사실을 여러 사례를 통해 학습해왔다.
흔히 스트리트 컬처(Street Culture)라고 하는 것 또한 ‘날것’의 힘으로 생성되고
사라진다.

오혁은 감히 오혁 세대의 창조자라고 말해도 거추장스럽지 않을 만큼
2017년의 대한민국 거리 문화에 담담하고 또 담대하게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그와 교감했던 이 책에 등장하는 혹은 등장하지 못하는 사진과
대화를 곱씹어보니 이 책이 주는 가치는 자연스레 결정됐다.

그래 이게 청춘이지 뭐.
시행착오 따위 남은 시간에 충분히 던져버려도 좋을 이게 젊음이지 뭐.

원스타(One Star) 혹은 원스타(Own Star),
오혁은 길거리(Street)에 살아 있다.

201710 #114

By EDITOR'S LETTER

새벽 2시의 빨래 널기는 의식과도 같다.
아침 출근길 세탁기 버튼을 눌러 시작된 빨래는 기계적이고도 전투적인
목욕을 마친 후 서로의 젖은 몸이 꿉꿉해지지 않도록 온 종일 발버둥을 쳤다.
목 빠지게 주인을 기다리는 것은 간절함이 있어서다.
한시라도 빨리 빨랫줄로 인도돼 자신만의 공간이 생기길 바라는
소박한 꿈은 내 방이 생기길 간절히 바라던 유년 시절과 닮았다.
이토록 치열했던 그들에게 향까지 나길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멀쩡한 것만으로도, 괜찮다. 고맙다.
이 시간의 빨래 널기에는 관용이 필요하다.

관용이 필요 없는 부분은 글쓰기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것은 새벽 2시의 빨래 널기가 끝난 후
설거지 가득 쌓인 싱크대를 마주하는 것보다 더 고독하다.

이유는 명료하다.
말이 많아져서다.

선생님은 부반장 겸 미화부장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고,
아버지는 성실하게 효도하면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말이 많아지는데 글이 잘 써질 수는 없다.

지혜로워져야 한다.

나는 좋은 애인이고 싶다.
나는 좋은 편집장이고 싶다.
나는 좋은 아들이고 싶다.
나는 좋은 친구이고 싶다.
나는 좋은 외삼촌이고 싶다.
나는 좋은 디렉터이고 싶다.
나는 좋은 오빠이고 싶다.
나는 좋은 발행인이고 싶다.
나는 좋은 애인이고 싶다.

지혜로워져야 한다.

새벽 2시의 빨래 널기는 의식이다.

201709 #113

By EDITOR'S LETTER

 

폭우다.
낯설다.
빗소리가 그렇다.
새로운 사무실에서의 빗소리가 선명하다 못해 우렁차다.
창이 많아 그런가 보다,
싶다가도 예민하다.

소리뿐 아니다.
풍경도 다르다.
익숙한 사람 반, 생경한 사람 반이다.
2년여를 함께한 익숙한 사람일지언정 표정이 다르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에는 ‘너무’ 그렇다.

이 낯섦, 스스로 선택한 낯섦.
그간 수백 번도 넘게 되뇐 말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때는 무엇도 계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수심이 얼마나 깊은지, 내 휴대폰에 방수 기능이 있는지, 물에 빠진 사람을 과연
어떻게 끌고 나올 것인지를 계산할 따위의 여유는 없다는 것이다.

현실이다,
이것은.

의지는 확인했으니 덤벼야 했다.
숙제는 아니었다.
욕망을 수천 번 곱씹으니 운명까진 아니더라도 희망이다.

낯섦이 주는 두려움에 설렘을 뒤섞어 삼키며 읊는다.

아프다.
제정신이 아니다.
DAZED & CONFUSED다.

아름다운 마음과 언어(Beautiful Mind & Words)만이 길이다.

2017 SPECIAL EDITION

By EDITOR'S LETTER

중학교 시절 3년 내내
거의 매일 달에 관한 글을 썼다.

달이 좋은 이유를 꼽자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두서없이 적자면

그 빛이 해보다는 덜하되, 별을 비출 만큼은 우직하고
품은 사연이 별보다는 덜 다채롭지만,
어느 하늘에서나 보일 만큼 큰 존재감이 있으며
생김 생김이 구름보다는 덜 자유롭지만,
시의 적절하게 변화할 수 있을 만큼의 융통성은 지닌,
그래, 달이 되고 싶었다.

요즘 친구들은 주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TV도 스마트 폰도, 하다못해 동네 식당에서도
유명한 사람의 이야기가 세상을 지배한다.
이 무렵 깨달았다.
비록 내가 달이 될 수는 없지만 는 달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원의 사진을 112페이지에 걸쳐 담은 112호는
가 달이 될 수 있겠다는 의지를 작게나마 보이고자 하는 의지다.

한 명의 연습생이, 인고의 과정을 거쳐 세상의 별이 되기 직전까지의 모습을
세 명의 훌륭한 사진가가 담았다.

허나 이것은 추억이 아니다.
미래다.
흥분이다.
질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느낀 원의 1%도 담지 않았다.
그와 나눈 대화 중 단 11가지의 질문과 답만 있을 뿐이다.

달의 빛은 깊고 고요하지만, 그만큼 은밀하기 마련이다.

그래, 나는 달이 되고 싶다.

I wrote about the moon almost every day
through the 3 whole years of my middle school life.

There are hundred reasons why I like the moon but I ramble.

The light less bright than the sun but soft enough to reflect the stars,
the stories it has less colorful than the stars,
but its presence could be seen from any sky,
a shape less free than the clouds but flexible to change timely,
Yes, I wanted to be the moon.

Many fellows nowadays want to be famous.
The stories of famous people rule the world in televisions,
smart phones and even in the local restaurants.
That’s when I realized.
Even if I cannot be the moon, could be the moon.

Vol.112 featuring photos of ONE through
112 pages is a little will that hopes to show the will
that could be the moon.

Three amazing photographers took photos of a trainee going through
the process of endurance until he becomes a world star.

However, this is not a memory.
This is a future.
This is a fever.
This is a question.

Nevertheless, I didn’t even feature 1% of what I felt from ONE.
There are only 11 questions and answers of the conversation
that I shared with him.

The moonlight is deep and calm but secretive as much.

Yes, I want to be the moon.

201708 #112

By EDITOR'S LETTER

몇 년 전 일입니다.
잘 안되던 수입 브랜드가 당시 가장 뜨거운 명성을 얻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영입함으로써
미디어를 비롯한 패션 관계자들의 이목을 한눈에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그 브랜드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사장님께 말씀드렸죠.

“이제 힘을 실을 때입니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매장을 한 군데 빼고 전부 닫는 것으로 하자.”

‘왜’냐고 묻지는 않았습니다.
그분의 경력과 연륜 앞에서 그 질문은 필요 없었습니다.
그저 즉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사회생활을 할 줄 아는 직원으로 인정받는 당연한 상황이었습니다.

속으로는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뉴스도 더 뿌리고 화보도 더 찍고,
매장 수도 유지 혹은 확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 조바심도 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본격적으로
손을 댄 컬렉션들이 매장에 입고되었습니다.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돈을 쓰지 않아도 톱스타들의 협찬 요청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매거진 에디터들은 앞다퉈 메인 화보에 우리 브랜드를 실었습니다.
매출도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폐점했던 매장 쪽 백화점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입점하시죠. 훨씬 더 좋은 자리, 더 좋은 조건으로 맞춰드리겠습니다.”
이윽고 백화점의 황금 자리에 우리 매장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금의환향.
사장님의 ‘덜기’ 전략은 한마디로 적중했습니다.

패션 비즈니스에서 변화에 따른 전략은 때론 민주적인 절차보다는 훌륭한 디렉터 한 명의 의견이
답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사심에 흔들리지 않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과감하게 팀을 이끌 수 있는
능력있는 디렉터여야 가능한 일이겠지요.

오늘날 우리나라 패션계에 행여나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면
바로 이러한 디렉터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 아닐지 감히 이야기드려봅니다.

<데이즈드>는 한 번 더 큰 변화를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인사는 모든 변화를 마친 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좋은 디렉터가 되는 길, 그것에만 집중하겠습니다.

201707 #111

By EDITOR'S LETTER

아이가 아버지의 손바닥을 샌드백 삼아 잽을 날린다.
“원, 투, 원, 투.”
아버지의 기함에 따라 고사리손이 하늘을 찌르듯 재빠르다. 기척도 좋다.

다음은 기마 자세다.
아버지의 무릎 위로 아이의 두 발이 각각 나뉘어 포개진다.
“원, 투, 원, 투.”
한결같은 아버지의 기함에 아이는 양팔을 벌린 채 무릎을 굽혔다 펴길 반복한다.

실수를 할 때면 더 행복해진다.
아버지 품에 안기면 그만이다.
아버지의 두 팔을 딛고 푸른 하늘을 나르는 관람은 보너스다.

오늘 한 생명과 헤어졌다.
내내 울었다.
보내고 오는 길,
구름이 어찌나 그림 같은지, 또 공기는 어찌나 부드러운지
화딱지마저 났다.

그리고 창을 열어봤던 장면,
아이와 아버지는 서로의 정(情)을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다.
유한한 유통기한이 주는 번뇌는 이놈의 정의 힘으로 미덕이 된다.

되레 나는 애써왔다.
정 따위,
실속 있게 살려면 쿨해져야지,
이 반대의 끝에 있는 것이 정이지, 없애야지 했다.

낯설었다.
정을 뗄 때 일어나는 감정에 이리 솔직해도 되는지 겁이 날 정도로
낯설었다.

마음이 한없이 작아진다.
약해지고 마구 구겨진다.

혼탁한 망상에 기대 울고 싶다.

보니,
낯설지가 않다.

욕 나오는 밤이다.

201706 #110

By EDITOR'S LETTER

고 노무현 대통령은 등산할 때마다 국내 등산복 브랜드를 번갈아 입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라푸마, 트렉스타, 영원 등등. 그런데 어느 날 이런 뉴스가 올라왔다.
등산하면서 쓴 선글라스가 수입 브랜드 오클리였다고,
국산 선글라스도 좋은 것 많은데 그건 안타깝다는 내용이었다.

시간이 흘러 전 정권에서 최순실은 비전문가를 써서 대충 가방 브랜드를 만들고 그걸 대통령에게
들게 했다. 언론은 국내 중소기업 브랜드 가방을 들었다고 마치 애국자인 양 대서특필했다.
그래서 누구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는지 모두가 안다.

며칠 전 대선에서 떨어진 모 후보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패션(Fashion)’ 좌파라는 말을 썼다.
패션 좌파가 신조어는 아니다. 여기에서 이 말은 강남에서 사치스럽게 유흥을 즐기면서 좌파로서
청렴한 척하는 부류를 뜻한다. 철저히 ‘패션=사치’라는 기준에서 파생된 언어다.

우리는 대통령 혹은 공인의 사치 기준으로 패션을 삼는다. 그들은 싼 옷, 국내 브랜드의 옷,
낡은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싼 옷, 수입 브랜드 옷, 새 옷을 입은 대통령.
뭔가 모를 거부감부터 들 것이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과 그의 영부인 브리지트 트로뇌의 경우는 이것을 잘 활용한 경우다.
그들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입은 의상을 이례적으로 스스로 시시콜콜하게 기재해서 발표했는데
마크롱 대통령은 50만원대의 ‘조나스&시에’라는 슈트 맞춤 브랜드였고, 영부인은 루이 비통
투피스를 입었으나 빌려서 입었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서민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것은
고액 연봉자로 직장 생활을 했던 마크롱의 부자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함이다. 게다가 마크롱의
라이벌이던 공화당 후보 프랑수아 피용이 1600만원 상당의 슈트 두 벌을 선물받아 대중의 분노를
산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철저한 전략이다.

패션은 전략이고 산업이다.
비싼 만큼 값어치를 한다는 것을 느꼈다면 돈을 모아서 1년에 한 벌 구입할 수도 있는 전략이다.
수입 브랜드를 입은 경험을 통해 루이 비통처럼 대대손손 물려받아 국위를 선양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산업이다.

나이키를 신고 수입 브랜드 입은 공인을 욕하거나
100만원짜리 아이폰을 쓰면서 50만원짜리 티셔츠에 어처구니없어하는 우는 더 이상 범하지 말자.

서로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현대적인 패션관이 ‘득’이 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201705 #109

By EDITOR'S LETTER

 

“네 몸에서 동대문 냄새가 나.”
대학 시절 많이 듣던 말입니다.

좀처럼 향수는 뿌리지 않았지만 씻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주로 제가 입고 걸친 것들이 빈티지 제품이었기 때문입니다.
빈티지 옷에서 발현하는 특유의 냄새, 그것을 “동대문 냄새”라고 친구들은 말했습니다.

제가 빈티지 옷에 빠진 것은 초등학교 시절부터입니다.
동네 아동복 매장에서 구입한 새 옷보다 외사촌 형에게 물려받은 1980년대 초반의 옷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말입니다.

물론 빈티지와의 만남이 시작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 이모 집에 다녀온 엄마의 손에 보자기가 들려 있었습니다.
주섬주섬 엄마가 펼친 보자기 속에는 외사촌 형이 입던 여러 벌의 옷이 들어 있습니다.
“안 입는 옷이라길래 좀 얻어 왔어. 한번 입어보자꾸나.”

초등학교 3학년, 미운 아홉 살이라는 나이. 그 제안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쾅!
제 방문을 닫고 이불 속에 들어가서 울기까지 했습니다.
“남이 입던 옷을 내가 왜 입어!”
고함도 지르면서 말입니다.

며칠이 지났을까요.
어느 순간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출근한 엄마 몰래 슬며시 그 보자기를 풀어보았습니다.
반 친구들이 입는 것과는 뭔가 다른 색상과 디자인, 그리고 깨끗하게 세탁했음에도 삐져나오는
그 빈티지한 냄새.
뻥!
머릿속이 뚫린 기분이었습니다.

다소 낡고 헤지고 사이즈도 맞지 않았지만, 또 몇몇 친구들은 왜 헌 옷을 입고 다니느냐고 놀리기도 했지만 그것은 문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쭐댔습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 하나로 가졌던, 그것은 우월감이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이모 집에 다녀온 엄마의 보자기가 보물 창고가 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일 테지요.

얼마 전 실로 오랜만에 그 비슷한 이야기를 또 들었습니다.
“네 몸에서 구제 냄새가 나는 거 알아?”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제가 걸친 청 재킷이 영국 런던에서 구입한 2만원짜리 빈티지 옷이니 그 이유야 여전한 것이겠죠.

이달 <데이즈드> 코리아는 아홉 살이 되었습니다.
표지 어디에도 창간 9주년을 자축하는 단어 하나 넣지 않았지만 내용은 그 어떤 호보다도 <데이즈드>답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중 하나가 문학가 9명이 ‘페티시’에 관해 쓴 글입니다.

세상의 어른들은 남들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덜 튀고, 덜 나서고, 덜 솟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적당히 분수에 맞춰 순리대로 사는 것이 ‘건강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전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페티시야말로 유행이나 개성을 넘어 각자를 구분 지을 수 있는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네.
전 빈티지 페티시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옷 입기를 넘어 제가 먹고, 자고, 마시고 살아가는 제 삶의 모든 근본이 되며 남들과 다른 시작점이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페티시가 있으신지요?
혹시 별다른 페티시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데이즈드> 페티시는 어떠신지요?

이미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201704 #108

By EDITOR'S LETTER

 

지난 2월 말부터 3월 초, 파리 패션 위크가 열리던 열흘가량
그곳에는 하염없이 비가 내렸습니다.
제아무리 날고 긴다는, 전 세계에서 모인 프레스와 바이어들도
장대비 앞에선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물론 최선을 다해 우리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이는 과장된 어깨의 재킷,
맨땅에서도 걷기 힘들 통굽의 하이힐,
무기처럼 보이는 무거운 액세서리들도 여지없이 동반됐습니다.

차에서 내려 쇼장까지 가는 길은 가깝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산은 생략합니다.
빼곡히 붙어 앉은 쇼장에 우산을 마땅히 둘 곳도 없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가리는 것은 기어가는 것보다 용납 못 할 일입니다.

또박또박 쇼장을 향해 걸어가면 여지없이
사진가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집니다.
사진가 또한 우비도 모자라 마치 우주인처럼 카메라를 비롯한 온몸을
비닐봉지로 몇 겹 둘러싼 채 사진 찍기에 열중합니다.

그들을 지나치면 초대장 소지 유무를 검사하는
덩치 큰 안전 요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소속과 이름이 적힌 초대장을 그들 앞에 내밉니다.
때로는 눈으로 확인하지만, 때로는 바코드 형태로 제작되어
스캐너를 거쳐 입장 승인이 떨어지길 기다리기도 합니다.
빗속에서도 그들의 눈초리는 날카롭습니다.

쇼장의 입구를 통과하면 보안 검사 요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각종 테러 위협으로 공항 뺨치게 엄격해진 보안 시스템에
가방 속은 물론 몸 수색도 각오해야 합니다. 차별이 없다고 믿고 싶으나
유색 인종에게는 더 매서운 손끝입니다.

이렇게 쇼장 안으로 들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약간의 웃음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자리 안내 도우미 역할을 담당하는 잘 차려입은 키 큰 젊은 남자들이
주인공입니다. 대부분 모델 지망생이거나 신인 모델입니다.
A구역부터 K구역까지 있기도 하고, 1열부터 8열까지 있기도 합니다.
물론 쇼를 5년 이상 다녀본 프레스들은 이 정도 암호는 능수능란하게 풉니다.
초대장에 적힌 번호만 봐도 대충 ‘내 자리는 프런트 로다’부터
‘헤어 쇼를 보느니 차라리 집에서 모바일로 보는 게
낫겠는걸’까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자리에 앉으면 같은 나라의 프레스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쇼장 입구에서부터 그 브랜드의 마케터를 마주할 수도 있는데,
주로 자리에 앉아서 약간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패션계에서 잘 쓰는 단어,
바로 밍글링(Mingling) 시간인 셈이죠. 내용은 뉴스가 끝나고
스크롤이 올라갈 때 나누는 앵커들의 대화 수준입니다.
“언제 왔어요?” ”비 너무 많이 오죠?” “그 식당 맛있더라.”
하다 하다 사돈의 팔촌 안부까지 물어가며 입에서 게거품이
나올 때쯤에서야 쇼는 시작됩니다. 30분은 예사니까요. 사탕은 필수입니다.

쇼가 끝나면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긴장된 표정으로
어딘가에 메시지를 보냅니다.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쇼가 끝났음을 알리고
어느 위치에서 만날 것인지를 체크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입구를 향해 반 뜀박질을 시작합니다.
보통 한 시간 간격으로 쇼 스케줄이 있는데,
이동 거리를 계산하면 늘 빠듯합니다.
비가 오는 파리의 교통 체증은 평일 대낮에도
홍콩의 금요일 저녁을 능가합니다.

그런데 나가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수백 명이 작은 입구에 한데 몰리니 한 걸음 떼는 것이
세 살 난 어린아이 시절보다 어렵습니다. 간신히 빠져나오면 다시금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인파와 우산 속에서 자신의 차 번호를 수백 번 곱씹으며 후회합니다.

‘우산은 챙길걸.’

이러한 오감을 비 오는 파리에서만 족히 70회 정도는 반복해야 합니다.
컬렉션 전문 잡지 기자의 경우 시즌당 300회가 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마따나
단언컨대
제가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도돌이표를 반복했던 이유는
패션쇼가 주는 가치 그 이상의 숭고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파안대소와 대성통곡, 희생과 착취, 준엄과 무관심, 찰나와 영원, 그리고
절대적인 평등과 절대적인 불평등.
그 안에는 사회가 있고, 또 삶이 있습니다.

곧 서울 패션 위크가 시작됩니다.
누군가는 오매불망 기다린 잔치 중의 잔치겠지만,
누군가는 요상한 차림을 한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친한 스트리트 사진가가 말하더군요.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옷차림보다 명성이다.”
아무리 비싸고 튀는 옷을 입었다 한들 제대로 된 실력자 혹은
누구나 다 아는 유명인을 이길 수 없습니다.
결국 무엇을 입느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희망할 수 있게 된 봄입니다.
시간이 있다면 서울 패션 위크에 슬쩍 들러보세요.
패션이 주는 숭고함이 결코 가벼운 것만은 아닐 테니까 말입니다.
더불어 <데이즈드> 코리아는 언제나 그 감도를 이끌고 지켜나가겠습니다.

#나의오리지널리티 #ORIGINALis
심지어 서울 패션 위크 기간 재미있는 이벤트도 기획했습니다.
3월 28일부터 31일까지 서울 패션위크가 열리는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키, 외모가 아닌 남다른 오리지널리티를
지닌 차세대 모델을 뽑습니다. 이 행사는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에스팀 모델 에이전시, <데이즈드> 코리아가 함께합니다.
선정된 분에게는 아디다스 운동화와 다음 미션이 담긴 봉투를 드립니다.
어마어마한 특전이 가득한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201703 #107

By EDITOR'S LETTER

 

설날을 맞아 세종시에 계신 부모님 댁을 찾았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머니의 음성이 들립니다.
“아들, 아들이 좋아하는 갈비찜 해놨어.”
엄마 손에 이끌려 어느새 제 앞에 놓인 갈비찜 맛을 봅니다.
짜지도 달지도, 그렇다고 너무 싱겁지도 않게 제 입에 딱 적당합니다.
무턱대고 사르르 녹아버려 씹는 재미가 없는 그런 갈비찜도 아닙니다.
적당히 쫀득해서 갈비를 먹고 있다는 기분을 충분히 느낄 법한 꽤 괜찮은 갈비찜입니다.
“맛있어, 엄마.”
이렇게 유난스럽게 갈비찜을 대동해서 절 맞이하는 데는 서로 함께한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열두세 살 무렵 어머니의 첫 갈비찜을 맛봤을 때 일입니다.
어머니는 갈비찜을 준비하겠노라고 보름 전부터 우릴 들뜨게 했습니다.
당시 우리 사정에 갈비찜은 TV 드라마에서나 보던 고급 음식이니 그 주말 저녁은 그야말로
디데이였습니다. 식탁 위로 등장한 갈비찜 통으로 순식간에 아버지와 여동생,
그리고 저의 젓가락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요.
짜도 이렇게 짤 수가요.

두 번째 어머니의 갈비찜을 맛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야심 차게 만든 2차 갈비찜 역시 안타깝게도 실패였습니다.
질겨도 이렇게 질길 수가.

자연스레 우리 집에서 갈비찜은 사라졌습니다. 전 열아홉 살 무렵 일본으로 유학을 간 뒤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지 못했고, 이따금 같이하는 밥상에도 갈비찜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한 3년 전부터였을까요.
어머니의 갈비찜 도전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추석, 설날 할 것 없이 주로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 그 타깃이었습니다. 못 먹겠다는 수준에서 꽤 먹을 만하다는 평으로, 정말 맛있다는
감탄으로 그렇게 송편과 떡국 대신 갈비찜의 진화를 거듭하면서 우리는 단단해져갔습니다.

“엄마, 정말 뭐든 해봐야 느는 법인 것 같아.”
직접 경험은 그 무엇도 이길 수 없습니다.
매년 수차례 담그셨던 어머니의 김치는 제가 기억하는 한 점점 훌륭해졌으니까 말입니다.

<데이즈드>가 <데이즈드>의 맛이 제대로 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젊고(어리다는 것이 아닌), 다르며(틀리다는 것이 아닌), 독립적인(독단적이라는 것이 아닌)
패션 잡지로서의 맛을 내고 싶은데 말입니다.

제가 <데이즈드>를 요리한 지도 어느덧 1년하고도 반입니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머니의 갈비찜이 그러했듯이 맛없었을 때의 사정, 그리고 맛을
찾기까지의 과정과 현재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데이즈드> 팀은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격려해주세요.
황금 같은 지면에 여러분의 격려나 바라는 이토록 철없는 사람이지만 말입니다.

진짜 ‘봄’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