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말부터 3월 초, 파리 패션 위크가 열리던 열흘가량
그곳에는 하염없이 비가 내렸습니다.
제아무리 날고 긴다는, 전 세계에서 모인 프레스와 바이어들도
장대비 앞에선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물론 최선을 다해 우리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이는 과장된 어깨의 재킷,
맨땅에서도 걷기 힘들 통굽의 하이힐,
무기처럼 보이는 무거운 액세서리들도 여지없이 동반됐습니다.
차에서 내려 쇼장까지 가는 길은 가깝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산은 생략합니다.
빼곡히 붙어 앉은 쇼장에 우산을 마땅히 둘 곳도 없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가리는 것은 기어가는 것보다 용납 못 할 일입니다.
또박또박 쇼장을 향해 걸어가면 여지없이
사진가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집니다.
사진가 또한 우비도 모자라 마치 우주인처럼 카메라를 비롯한 온몸을
비닐봉지로 몇 겹 둘러싼 채 사진 찍기에 열중합니다.
그들을 지나치면 초대장 소지 유무를 검사하는
덩치 큰 안전 요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소속과 이름이 적힌 초대장을 그들 앞에 내밉니다.
때로는 눈으로 확인하지만, 때로는 바코드 형태로 제작되어
스캐너를 거쳐 입장 승인이 떨어지길 기다리기도 합니다.
빗속에서도 그들의 눈초리는 날카롭습니다.
쇼장의 입구를 통과하면 보안 검사 요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각종 테러 위협으로 공항 뺨치게 엄격해진 보안 시스템에
가방 속은 물론 몸 수색도 각오해야 합니다. 차별이 없다고 믿고 싶으나
유색 인종에게는 더 매서운 손끝입니다.
이렇게 쇼장 안으로 들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약간의 웃음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자리 안내 도우미 역할을 담당하는 잘 차려입은 키 큰 젊은 남자들이
주인공입니다. 대부분 모델 지망생이거나 신인 모델입니다.
A구역부터 K구역까지 있기도 하고, 1열부터 8열까지 있기도 합니다.
물론 쇼를 5년 이상 다녀본 프레스들은 이 정도 암호는 능수능란하게 풉니다.
초대장에 적힌 번호만 봐도 대충 ‘내 자리는 프런트 로다’부터
‘헤어 쇼를 보느니 차라리 집에서 모바일로 보는 게
낫겠는걸’까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자리에 앉으면 같은 나라의 프레스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쇼장 입구에서부터 그 브랜드의 마케터를 마주할 수도 있는데,
주로 자리에 앉아서 약간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패션계에서 잘 쓰는 단어,
바로 밍글링(Mingling) 시간인 셈이죠. 내용은 뉴스가 끝나고
스크롤이 올라갈 때 나누는 앵커들의 대화 수준입니다.
“언제 왔어요?” ”비 너무 많이 오죠?” “그 식당 맛있더라.”
하다 하다 사돈의 팔촌 안부까지 물어가며 입에서 게거품이
나올 때쯤에서야 쇼는 시작됩니다. 30분은 예사니까요. 사탕은 필수입니다.
쇼가 끝나면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긴장된 표정으로
어딘가에 메시지를 보냅니다.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쇼가 끝났음을 알리고
어느 위치에서 만날 것인지를 체크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입구를 향해 반 뜀박질을 시작합니다.
보통 한 시간 간격으로 쇼 스케줄이 있는데,
이동 거리를 계산하면 늘 빠듯합니다.
비가 오는 파리의 교통 체증은 평일 대낮에도
홍콩의 금요일 저녁을 능가합니다.
그런데 나가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수백 명이 작은 입구에 한데 몰리니 한 걸음 떼는 것이
세 살 난 어린아이 시절보다 어렵습니다. 간신히 빠져나오면 다시금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인파와 우산 속에서 자신의 차 번호를 수백 번 곱씹으며 후회합니다.
‘우산은 챙길걸.’
이러한 오감을 비 오는 파리에서만 족히 70회 정도는 반복해야 합니다.
컬렉션 전문 잡지 기자의 경우 시즌당 300회가 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마따나
단언컨대
제가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도돌이표를 반복했던 이유는
패션쇼가 주는 가치 그 이상의 숭고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파안대소와 대성통곡, 희생과 착취, 준엄과 무관심, 찰나와 영원, 그리고
절대적인 평등과 절대적인 불평등.
그 안에는 사회가 있고, 또 삶이 있습니다.
곧 서울 패션 위크가 시작됩니다.
누군가는 오매불망 기다린 잔치 중의 잔치겠지만,
누군가는 요상한 차림을 한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친한 스트리트 사진가가 말하더군요.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옷차림보다 명성이다.”
아무리 비싸고 튀는 옷을 입었다 한들 제대로 된 실력자 혹은
누구나 다 아는 유명인을 이길 수 없습니다.
결국 무엇을 입느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희망할 수 있게 된 봄입니다.
시간이 있다면 서울 패션 위크에 슬쩍 들러보세요.
패션이 주는 숭고함이 결코 가벼운 것만은 아닐 테니까 말입니다.
더불어 <데이즈드> 코리아는 언제나 그 감도를 이끌고 지켜나가겠습니다.
#나의오리지널리티 #ORIGINALis
심지어 서울 패션 위크 기간 재미있는 이벤트도 기획했습니다.
3월 28일부터 31일까지 서울 패션위크가 열리는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키, 외모가 아닌 남다른 오리지널리티를
지닌 차세대 모델을 뽑습니다. 이 행사는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에스팀 모델 에이전시, <데이즈드> 코리아가 함께합니다.
선정된 분에게는 아디다스 운동화와 다음 미션이 담긴 봉투를 드립니다.
어마어마한 특전이 가득한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