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몸에서 동대문 냄새가 나.”
대학 시절 많이 듣던 말입니다.
좀처럼 향수는 뿌리지 않았지만 씻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주로 제가 입고 걸친 것들이 빈티지 제품이었기 때문입니다.
빈티지 옷에서 발현하는 특유의 냄새, 그것을 “동대문 냄새”라고 친구들은 말했습니다.
제가 빈티지 옷에 빠진 것은 초등학교 시절부터입니다.
동네 아동복 매장에서 구입한 새 옷보다 외사촌 형에게 물려받은 1980년대 초반의 옷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말입니다.
물론 빈티지와의 만남이 시작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 이모 집에 다녀온 엄마의 손에 보자기가 들려 있었습니다.
주섬주섬 엄마가 펼친 보자기 속에는 외사촌 형이 입던 여러 벌의 옷이 들어 있습니다.
“안 입는 옷이라길래 좀 얻어 왔어. 한번 입어보자꾸나.”
초등학교 3학년, 미운 아홉 살이라는 나이. 그 제안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쾅!
제 방문을 닫고 이불 속에 들어가서 울기까지 했습니다.
“남이 입던 옷을 내가 왜 입어!”
고함도 지르면서 말입니다.
며칠이 지났을까요.
어느 순간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출근한 엄마 몰래 슬며시 그 보자기를 풀어보았습니다.
반 친구들이 입는 것과는 뭔가 다른 색상과 디자인, 그리고 깨끗하게 세탁했음에도 삐져나오는
그 빈티지한 냄새.
뻥!
머릿속이 뚫린 기분이었습니다.
다소 낡고 헤지고 사이즈도 맞지 않았지만, 또 몇몇 친구들은 왜 헌 옷을 입고 다니느냐고 놀리기도 했지만 그것은 문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쭐댔습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 하나로 가졌던, 그것은 우월감이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이모 집에 다녀온 엄마의 보자기가 보물 창고가 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일 테지요.
얼마 전 실로 오랜만에 그 비슷한 이야기를 또 들었습니다.
“네 몸에서 구제 냄새가 나는 거 알아?”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제가 걸친 청 재킷이 영국 런던에서 구입한 2만원짜리 빈티지 옷이니 그 이유야 여전한 것이겠죠.
이달 <데이즈드> 코리아는 아홉 살이 되었습니다.
표지 어디에도 창간 9주년을 자축하는 단어 하나 넣지 않았지만 내용은 그 어떤 호보다도 <데이즈드>답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중 하나가 문학가 9명이 ‘페티시’에 관해 쓴 글입니다.
세상의 어른들은 남들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덜 튀고, 덜 나서고, 덜 솟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적당히 분수에 맞춰 순리대로 사는 것이 ‘건강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전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페티시야말로 유행이나 개성을 넘어 각자를 구분 지을 수 있는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네.
전 빈티지 페티시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옷 입기를 넘어 제가 먹고, 자고, 마시고 살아가는 제 삶의 모든 근본이 되며 남들과 다른 시작점이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페티시가 있으신지요?
혹시 별다른 페티시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데이즈드> 페티시는 어떠신지요?
이미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