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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 #102

By EDITOR'S LETTER

화요일, 목요일이면 아파트에 장이 들어섭니다.
제가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생선 가게입니다. 흰 살 생선을 유독 좋아해 가리지 않고 먹는 편입니다.
지난 화요일 장, 이제는 뭐 떨어져 사는 어머니보다 자주 뵙는 생선 가게 아주머니가 민어 한 마리를
권합니다. 큰 것은 8만원, 작은 것은 3만5000원. 만만치 않은 가격입니다.
짐짓 뜸 들이는 제 옆으로 이내 다가오더니 제철이고 더위를 쫓는 데 효과적이며 맛이 기가 막히다,
또 오늘따라 싱싱한 국내산이 들어왔다고 한 번 더 속삭입니다. 까짓 고생한 제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싶어 작은 것 두 놈 구입해서, 먼저 한 마리 구워 먹어봤습니다.

입에 살살 녹는다고 해야 할까요? 그냥 프라이팬에 올리브 오일 휘 둘러 구워냈을 뿐인데
담백하다 못해 구수하기까지 합니다. 머리 부분 구석구석 발라 먹다 보니, 가시조차 달콤합니다.
비싼 값어치를 하는 놈이더군요.

문득 왜 백성 민(民)의 민어(民魚)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세종실록>에 도미찜보다 한 수 위라고 기록될
만큼 예로부터 임금의 음식, 귀족 생선이라고 칭하고, 여전히 누구나 맘 편히 먹기는 어려운 고가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알아보니 그 까닭이 어처구니없었습니다. 중국인들이 면(綿)어라고 불렀던 발음이
‘민’과 비슷하고, 획수가 많은 면보다 민이 더 편해 민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백성이 힘들게 잡아
올리면 귀족이 먹는, 백성의 피땀으로 점철된 ‘민’어였던 셈입니다.

그날 저녁 주변에 사는 패션업계 사람들을 집에 불러 남은 민어 한 마리를 더 구웠습니다. 이놈의 민어가
화이트 와인 안주로도 기가 막히지 않느냐는 자랑을 곁들여 저도 모르게 이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어쩌면 마냥 패션이 좋다고 이러고 사는 우리 다 민어가 아닐까.
면어를 민어라 부르며 양반의 밥상에 나르던 그 어부의 심정이 우리 신세와 별반 다르지 않지 않을까.

요즘 패션계는 서로 자신의 몫을 차지하려는 혈투로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무섭습니다.
누구도 넉넉하지 못하니 작은 먹이라도 떨어지면 전력투구해서 서로의 육신이 갈기갈기 찢어질 정도로
다투고 싸워서 쟁취하는 게 일상입니다. 한 달 마감이 끝나면 마치 거친 황소와 투우라도 벌인 듯 녹초가
되고 맙니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너무 많이, 너무 멀리 와서가 아니라
지금 제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서입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척박한 한국 땅에서
패션을 사랑하는 여러분마저 민어의 모순을 범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데이즈드>는 몫을 챙기지 않는 패션 잡지가 되고자 합니다.
진실로 귀하지만 패션을 사랑하는 약자와 소수, 모두 함께 먹을 수 있는 진짜 민어가 되겠습니다.
+
<데이즈드> 100호 파티를 한 푼의 몫도 바라지 않고 도와준
패션 칼럼니스트 오선희 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16 SPECIAL EDITION

By EDITOR'S LETTER

100권째,
그게 뭐라고…
유난스럽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판 의 99권을 지배하고
뿐만 아니라 지난 10년간 국내외 10~20대 젊은이들의 문화를 재편한,
빅뱅의 탄생 10주년,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면

이건
안경을 쓰고 싶어서 눈을 안 좋게 만든 게 아니다.
원래 안경을 달고 태어났던 거다.

8월 19일,
이럴 때 쓰는 말, 공교롭게도
빅뱅이 태어나고 10주년이 되는 날 한국판 의
100번째 생일이 겹친다.

‘경사’다.

하려면 제대로 할 것.

같은 포부로 지난 4월 8일, 이 사실을 공유한 후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수백 통의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 미팅, 회의…
서울뿐 아니라 일본의 오사카, 홍콩 등을 당일치기로 오가며
약 20여 일간 빼곡하게 촬영하며 완성한 수천 장의 사진에 담긴

빅뱅 다섯 멤버
지드래곤, 탑, 태양, 대성, 승리의 가장 사적이고 극적이며 충동적인
진짜 ‘LIKE’를 고르고 골라 최신의 컬렉션과 함께 담았다.

“다신 이런 일은 없을 거야.”

촬영 내내 그렇게 외쳤지만
누구보다 패션 사진의 위대함을 알고 한 컷의 창조물을 뽑아내기 위한
고단함을 즐겼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지은, 포토그래퍼 홍장현,
헤어 태현, 메이크업 임해경 외 수많은 어시스턴트 친구들과 촬영에
협조해준 시민, 국민, 여러분. 그리고 진정성이 뭔지, 아티스트가 뭔지
배우게 해준 빅뱅 다섯 멤버.

힘주어 말하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덕분에 훗날 내 무덤 옆이 외롭지 않게 생겼다.
한국판 가 이 세상 어디에도 꿀리지 않게 생겼다.

100th issue.
What’s the big deal? I thought.
I didn’t want to make a big fuss about it, nor do anything about it.

However,
After looking over 99 issues of Korea.
We got the chance to cover BigBang’s 10-year anniversary.
They are the artists who reinvented the culture of teenagers and people in their 20s.

It is like the saying:
“I didn’t make my eyes worse to wear glasses,
I was born with glasses.”

19th of August.
Funnily enough,
BigBang’s 10-year anniversary is the exact same date with
Korea’s 100th birthday.

This is a call for a ‘celebration’.

If we were going to do it, we were going to do it right.

I shared my thoughts and details on the matter to my staff members on 8th of April.
Since then, we went through hundreds of messages, emails, meetings, and brainstorming
for over 100 days. We worked in not only Seoul, but also took one-day trips to Osaka and
Hong Kong. In just about 20 days, we took thousands of photos of BigBang’s 5 members.

G-Dragon, T.O.P, Taeyang, Daesung, and Seungri.
We tried to express their most personal, extreme, and impulsive
‘LIKE’s through the new collection.

“This won’t happen again.”

I told my staff members during the whole process.
I would like to thank our creative director Gee Eun, who knows the greatness of fashion
photographs and enjoys the suffering in order to achieve that one great shot, along with
our photographer Hong Janghyun, hair artist Taehyun, makeup artist Lim Heakyung,
our assistants, and even random members of the public who helped us during the whole
process. Lastly, I would like to thank the members of BigBang who showed us what being
authentic, and being a true artist is like.

I really don’t like making heavy statements.
But I realize that I won’t feel alone when it’s my time to go.
Korea will now stand proud by itself in the middle of the world.

 

201609 #101

By EDITOR'S LETTER

 

1년이 되었습니다.
한국판 <데이즈드>에 작년 8월 27일 입사했으니까 말입니다.
날짜까지 세고 있지는 않았는데(의식은 했지만) SNS가 편하게도 알려줍니다.
이로써 이번 9월호가 제가 만든 12번째 한국판 <데이즈드>입니다.
더불어 100호를 기념하는 특별판 5권도 곧 세상에 나올 예정이니 1년 사이 17권을 만들었네요.

또렷하게 기억하는 작년 8월 27일입니다.
15년여간 여러 다른 잡지 회사도 거쳤고, 패션, 뷰티 할 것 없이 크고 작은 이 바닥 회사에서 회사원 생활을 했던 터라
강단은 센 편이라 자부했는데
<데이즈드>는 <데이즈드>답게 그 시작부터 남달랐습니다.

에디터가 없어도 너무 없더군요.
정식 에디터가 지금도 패션팀에서 근무하는 서석빈 기자 한 명뿐이었습니다.
잡지사라는 곳이 편집장이 바뀌고 또 다른 흐름이 오게 되면 당연히 에디터들이 싹 바뀌는 과정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한 명이라뇨.
단 하루 만에 아주 자연스럽게 데이즈드(DAZED; 충격을 받아서 멍한 상태)화된 것은 맞습니다.
감사한 일일지도요.

바꿔 생각해보니 에디터가 한 명은 아니더군요.
저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눈빛이 초롱초롱한 인턴 에디터 한 명.
도합 2.5명.

이젠 제가 왜 이런 불가능하고 무모한 상황에 기어들어 오게 됐는지 명분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마저도 없다면 이곳에 꿈과 열정을 바칠 까닭은 당연히 없을 테니까요.
답은 하나였습니다.
‘맞다. 패션을 하기로 했었지. 나는 패션 콘텐트를 만들고자 했었지.’
패션 콘텐트 제작에 순수하게 돈을 쓰는 곳, 아무리 생각해봐도 패션지뿐이더군요.

2.5명으로는 전화를 받기도 힘들었습니다. 주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대략 이랬던 것 같습니다.
“가진 게 없어서 물질로 드릴 건 없습니다.
대신 여러분의 작업이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을 수 있도록 자유를 드리겠습니다.
그저 <데이즈드>란 이름을 충분히 파시고 공유하면서, 놀이터라고 생각하고 즐겨주세요.
주신 도움은 살면서 갚고, 해보고도 안되면 제가 먼저 스스로 물러나겠습니다.”

삶이 바빠 죽겠는데
정말 이건 말도 안 되는 건데
한 명씩 두 명씩 수십 명씩
<데이즈드>의 ‘사외’ 에디터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2.5명이 25명이 되고 250명이 되면서
제가 <데이즈드>에서 꼬박 1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놀라운 일도 발생했습니다.
이제 정식 에디터만 5명이랍니다. 하하. 물론 저 빼고 말입니다.

패션지에 대한 존경은커녕 존재감마저 사라지는 어려운 시기,
한국판 <데이즈드>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고맙고 기쁘고 행복한지는 말이 아닌 다짐으로 하겠습니다.

전 패션 콘텐트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한국판 <데이즈드>는 패션 콘텐트를 만드는 패션지입니다.
앞으로도, 그 어떤 순간에도 이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201608 #100

By EDITOR'S LETTER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에 들어갑니다.
인스타그램 2번 들어갈 때 페이스북은 1번꼴로요.
세 달 전쯤에는 스냅챗도 깔았습니다. 아직 남의 것은 볼 줄 아는데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릅니다.
포켓몬 GO 게임이 유행이라고 해서 어제 새벽에는 어떻게 하는지도 살펴봤습니다.
속초 갈 정도로 흥미는 없지만요.

뉴스는 JTBC <뉴스룸>을 챙겨 봅니다.
모바일로는 ‘다음’ 홈페이지를 주로 접속하는데, 검색은 구글로 하는 편입니다.
죄송합니다. 신문은 사서 읽지는 않고, 가리지 않고 웹으로 봅니다. .

드라마는 KBS 일일드라마 <여자의 비밀>을 즐겨 보고,
영화는 1만원을 지불하고 그제 <비밀은 없다>를 VOD로 봤습니다. 공교롭게도 둘 다 ‘비밀’이 들어가는군요.
예능 프로그램은 <라디오스타>, <엄마가 뭐길래>를 좋아하고 <음악의 신 2>는 끝나서 아쉬워했습니다.
음악은 가장 최근에 닉 조나스의 새 앨범을 유튜브에서 뮤직비디오와 함께 들었고요.
XXX의 ‘디올 옴므’란 곡도 가사가 재미있기에 찾아 들었습니다.

패션 잡지로는 가장 최근에 <시스템(System)>을 구입했습니다.
온라인으로는 비즈니스 오브 패션(Business of Fashion)이나 모델스닷컴(Models.com)을 자주 들어갑니다.

심심하면, 홈쇼핑 방송을 틀어놓고
잠이 안 오면, <섹스 앤 더 시티>를 봅니다. 시즌 4가 가장 재미있어서 잠들기 어렵습니다.

미디어가 만든 거대한 숲 속에서 제 취향은 까발려집니다.
전 발가벗겨진 채 오늘도 작디작은 램프 하나를 들고 <데이즈드>의 갈 길을 찾습니다.
옅은 바람에도 꺼질락 말락 하는 볼품없이 낡은, 구형 램프입니다.

누군가는 <데이즈드>가 여성지라고 하더군요.
여배우만큼이나 싫어하는 말입니다만,
기왕 하나의 성(性)으로 패션 잡지를 나누려거든
차라리 <데이즈드>는 ‘양(兩)성지’라고 불리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그래봤자 <한국판>이라고 하더군요.
라이선스 잡지라는 한계는 인정합니다만,
한번 굳은 마음 먹고 조금이라도 더 글로벌한 영향력을 갖춘 에디션이 되어볼 테니
<데이즈드> 한국판이 아닌 한국판 <데이즈드>라고 불리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대부분은 ‘잡지 시장은 죽었다’고 하더군요.
무슨 말인지 그분들보다 훨씬 더 피부로 느낍니다만,
시류에 개의치 않고 ‘패션 잡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인쇄물로 영원할 테니
클릭이 아닌 ‘소장’하고 싶은 잡지로 불리면 좋겠습니다.

구구절절한 까닭은 사실 이번 8월호가,
<데이즈드> 한국판이 100번째로 숨을 쉬는 꽤나 의미 있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호가 100호가 아닌 99.9호로 표기된 이유,
전 그것을 위해 다시 달려가겠습니다.

이제는 너무도 친숙해진 작은 램프가 숲을 향해 불빛을 당돌하게 비춥니다.

201606 #98

By EDITOR'S LETTER

중학교 시절 제가 쓰던 방에는 작은 창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창은 제 키보다 두 뼘은 더 높이 있어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려면 의자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뭐가 그렇게도 답답했는지 한겨울에도 전 의자에 올라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그럴 때면 늘 여지없이 저를 맞은 것이 바로 달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습으로, 또 어느 날은 뾰족하게 날이 선 모습으로, 가끔씩은
소시지 반찬, 네, 그 동그란 미소를 띠기도 했습니다.

그 달이 많이 좋았나 봅니다.
중학교를 다니던 3년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달을 향해 뭔가를 썼으니까요.
달의 모습이 매일 변화하는 것처럼 달에 대한 역할도 매일 달랐습니다. 친구도 됐다가 짝사랑하는
연인도 됐다가 미래의 내 자신도 됐다가 하나님도 됐습니다. ‘달’이라는 제목으로 들쑥날쑥
써 놓은 메모가 3권의 노트에 빼곡하게 담긴 것을 보면 참 많이도 의지했나 봅니다.
누구나 그렇듯 이상을 찾아 헤매던, 외롭던 사춘기 시절이었으니까 말입니다.

지난 한 달 좀 힘들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제때 못 가 생니를 뽑아낼 만큼 곪아버린 교정 치료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불어온 봄바람에 싱숭생숭 코 평수가 넓어져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랬습니다.
누군가가 나사 하나가 빠진 것 같다고 하기에 저도 모르게 이래버렸습니다.

“몰라. 사춘기인가 봐.”

思春期. 한자로 사춘기는 생각할 사, 봄 춘, 때 기, 이렇습니다.
여기서의 봄은 만물이 소생함을 의미합니다. 땅속에서 솟아 껍질을 깨는 아픔, 그러면서 어떤
세상 밖 풍경이 펼쳐질지 꿈과 호기심을 갖게 되는 그런 봄을 말입니다.

그렇게 따져보니 사춘기가 꼭 10대만의 특권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열매를 맺는 쾌락을 좇기보다는 세상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동기 부여를 싹 틔우려는
창조적인 소수, 그들에게 사춘기는 끝이 없는 터널처럼 반복될 테니까요.
멀리서 찾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척박한 한국 잡지 시장에서 남성지도, 여성지도 아닌 패션지의
형태로 미국도 아닌 영국에서 태어난 <데이즈드>야말로 평생 사춘기 팔자, 아니겠습니까?
마냥 씨앗만 뿌리다 보니 독자 여러분에게 휘황찬란한 부록 한번 못 드린 마음에서 아마도 제가
대신 사춘기 병에 걸렸나 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인 사춘기를 즐기겠습니다.
안정보다는 변화, 기득권보다는 미래의 세력, 라이프스타일보다는 독창적인 패션을 지향하며
지속적으로 새싹이 움트도록 씨앗을 뿌리고 거름을 줄 것입니다.
이달 6월호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역시 저희와 맥락을 함께합니다.
제 작은 창을 비추며 저를 달래던 그 달은 <데이즈드>에게도 ‘유효’합니다.

 

201607 #99

By EDITOR'S LETTER

아이가 아버지의 손바닥을 샌드백 삼아 잽을 날린다.
“원, 투, 원, 투.”
아버지의 기함에 따라 고사리손이 하늘을 찌르듯 재빠르다. 기척도 좋다.

다음은 기마 자세다.
아버지의 무릎 위로 아이의 두 발이 각각 나뉘어 포개진다.
“원, 투, 원, 투.”
한결같은 아버지의 기함에 아이는 양팔을 벌린 채 무릎을 굽혔다 펴길 반복한다.

실수를 할 때면 더 행복해진다.
아버지 품에 안기면 그만이다.
아버지의 두 팔을 딛고 푸른 하늘을 나르는 관람은 보너스다.

오늘 한 생명과 헤어졌다.
내내 울었다.
보내고 오는 길,
구름이 어찌나 그림 같은지, 또 공기는 어찌나 부드러운지
화딱지마저 났다.

그리고 창을 열어봤던 장면,
아이와 아버지는 서로의 정(情)을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다.
유한한 유통기한이 주는 번뇌는 이놈의 정의 힘으로 미덕이 된다.

되레 나는 애써왔다.
정 따위,
실속 있게 살려면 쿨해져야지,
이 반대의 끝에 있는 것이 정이지, 없애야지 했다.

낯설었다.
정을 뗄 때 일어나는 감정에 이리 솔직해도 되는지 겁이 날 정도로
낯설었다.

마음이 한없이 작아진다.
약해지고 마구 구겨진다.

혼탁한 망상에 기대 울고 싶다.

보니,
낯설지가 않다.

욕 나오는 밤이다.

201605 #97

By EDITOR'S LETTER

내일

곧 부모님이 세종시로 이사를 갑니다.
오랜만에 본가에 갔더니 어릴 적 추억들이 귀퉁이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꽤나 열심히 썼던 일기장부터 중·고등학교 시절 끄적인 메모들, 졸업 앨범, 성적표….
한참을 낄낄대며 보는데 아버지가 넌지시 물으시더군요.
“그래서 저 잡지들은 어떻게 할 거냐?”

고개를 돌려보니 책장에 50여 권의 잡지가 꽂혀 있습니다.
에디터로 일하면서 만들었던 잡지 포함, 구입했던 외국 패션 잡지들이었죠.
그런데 제가 참여한 잡지는 남은 것이 별로 없더군요. 한 20퍼센트 정도 있으려나.
아쉽기도 했지만, 누굴 원망하겠습니까? 부지런 떨며 모아두질 않았던 터입니다.

제 개인적인 성격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본능적으로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에 오글거려 합니다.
지난 것이 주는 추억과 유산을 무시한다기보다 민망함이 앞서서 그렇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일, 아니 심지어 내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모두 다 버리고 바람처럼 어디로든 훨훨 떠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좋다고 말하면
이 역시 오글거리는 과대 포장이겠죠?

<데이즈드> 코리아가 2016년 5월호를 발간하며 8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기획 회의를 하면서 몇 주년 특집호, 이런 것을 이야기하자니 상당히 부끄러웠습니다.
우리가 말이야, 2008년도부터 말이야, 얼마나 뭘 했는지 말이야.
하하하.

내일을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데이즈드>에는 세대교체의 주역인 아이콘(iKON)과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세 명의 남자 배우처럼 유명한 사람도 나오지만, 동네에서 혹은 SNS에서 봤을 법한 1995년
이후에 태어난 미래의 아이콘 서른 명도 등장합니다. 사진뿐 아니라 간단한 필름으로도 만들어
홈페이지와 SNS에서도 소개할 예정입니다.

패션뿐 아니라 정치도 문화도
젊고 다른 생각도 세상을 바꿉니다.

<데이즈드>가 감히 세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내일의 아이콘을 응원할 수는 있습니다.

함께
내일을
만들어갑시다.

201604 #96

By EDITOR'S LETTER

 

Z

 

1990년대 중반 나는 10대였다. 빨리 남자가 되고 싶었지만 남자 티가 확 나진 않았다. 그래도 거침이 없었다. X세대였으니까. X세대는 개성이 중요했다. 김원준이 그랬고 현진영이 그랬고 듀스도 그랬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힘을 더했다. 형들이야 압구정동에 가서 오렌지 족처럼 흥청망청 써댔을지 몰라도 당시 10대인 나는 안양과 평촌을 무대로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콧방귀 끼며 내 색깔을 만들기에 여념 없었다. 30대 후반이던 삼촌은 이런 나를 안타깝게 봤다. 명절이면 내 옷차림이 늘 도마에 올랐다. 귀를 왜 뚫고 왜 그렇게 큰 바지를 입느냐, 그들은 날 X세대가 아닌 날라리로 봤다.

 

2000년 밀레니엄과 함께 새롭게 떠오른 세대는 N세대였다. N은 네트(Net)의 약자로 X세대와 가장 큰 차이점은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점이다. 공강 때 당구장과 노래방을 즐겼던 우리와 달리 이들은 PC방에 둥지를 틀었다. TV보다 컴퓨터에 친근하고 전화보다는 문자를 즐겼다. 미안하게도 내게 N세대는 인간미 없는 이기주의자들처럼 보였다.

 

그 뒤로도 다양한 알파벳이 붙은 세대들은 연이어 등장했으나 X나 N세대처럼 또렷하게 주목 받은 세대는 없었다. 그렇게 강산이 한 번 이상 변하고, X세대를 날라리라 부르던 삼촌의 나이가 되어서야 그때의 내 나잇대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1995년 이후 출생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Z세대, 지금의 10대들이다. Z세대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디지털 원주민이다. 이들은 소셜 미디어에 적극적이며 자기 표현에 거침이 없다.

 

모처럼 등장한 신 인류에 패션계부터 Z세대를 가만 놔두지 않고 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파리, 밀란, 뉴욕, 런던의 4대 패션위크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할리우드 배우 윌 스미스의 아들과 딸인 제이든 스미스와 윌로 스미스였다. 제이든 스미스는 루이 비통 캠페인 모델이며 윌로 스미스는 샤넬의 새로운 대사가 되었다. 이들이 운영 중인 인스타그램은 톡톡 튄다. 제이든 스미스는 여자 친구와 함께 뉴욕 패션위크를 동행하는 등 주변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다. 유명한 부모를 둔 것이 물론 큰 도움이 됐겠지만 그들 자체 역시 매력적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Z세대들이 패션지를 장식하고 패션쇼에 초대받으며 주목 받고 있다. 물론 이름있는 스타의 아들, 딸이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조금씩 누구나 인지하고 있다. 패션계가 Z세대를 남다르게 보는 것은 그들이 새로운 소비 패턴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X세대는 이상주의자였다. 어떻게 보이고 싶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서 누군가를 따라 입기도 하고 좇기도 했다. 그래서 그 개성이란 것들이 뭉쳐 하나의 유행으로 완성되곤 했다. 하지만 Z세대는 지극히 독립적이다. 또한 경제적 가치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온라인 구매에 능동적이다. 따라서 기성세대가 제시하는 유행이 한 명 한 명의 자아를 통해서 전혀 다른 것들로 재창조된다. 이들에게 기존 패션 브랜드가 지닌 명성은 중요하지 않다.

 

이제 패션계에 남은 과제는 Z세대에게 감흥을 줄 만한 컨텐츠를 만들 수 있느냐와 Z세대와 교감할 만한 자세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Z세대를 비정상으로 치부하는 X세대 출신의 ‘삼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우리에겐 알파고가 곧 Z세대다.

 

 

201603 #95

By EDITOR'S LETTER

 

이달에도 비행기를 탔습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화보를 촬영하고 왔으니까요.

전 고소 공포증과 더불어 병원에서 처방된 약을 먹지 않으면 가까운 거리도 비행기를 탈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비행 공포증을 겪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설렘과 흥분이 될 여정이 ‘지옥’같은 순간이 됩니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는 항상 진심으로 두 손을 모읍니다.

간곡한 기도도 올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 또 저를 사랑해준다고 믿는 사람들을 차례차례 떠올려 보기도 합니다.

전날 택시 기사님에게 차갑게 굴던 장면을 회개합니다. 

아픈 친구의 문병을 가지고 못한 제 자신을 자책합니다.

부모님의 휴가에 용돈을 보내지 못한 불효를 반성합니다.

지금이야 더할 나위 없이 편한 제 자리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으니 구구절절 당시의 마음을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이지 이륙 직전에는 그야말로 간절합니다.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언제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나 환하게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세상에 하나뿐인 착한 남자가 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우연히 비행기 표에 적힌 비행 횟수를 보니 그런 약속을 거듭한 지가 벌써 150회가 넘었더군요.

그러니까 다시 말해 전 150번 넘게 거짓말을 하고 살았던 셈입니다.

공포에서 벗어나는 순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원래의 제 자신으로 돌아오고 마는 그저 간사한 한 생명체일 뿐이니까요.

 

6개월 전, 비행기를 탈 때만큼이나(그보다 더라고 말하기엔 정말 하늘을 나는 것이 싫습니다) 간절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데이즈드>코리아의 편집장이란 막중한 자리를 제 나름의 방식으로 즐겨보겠다고 한 작년 8월입니다.

 

3월호를 마감하며 돌이켜 생각해보니

150회를 넘어 180일간의 거짓말을 하고 산 것은 아닌지…

혼돈스럽습니다.

깊게 생각하고 여러 번 되씹으면서 내린 결론은, 어느 것도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달 <데이즈드>에 등장하는 오혁은 그와 함께 하는 밴드가, 베트멍이라는 아이코닉한 브랜드와

동시에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임하게 된 뎀나 바잘리아는 오랜 동지인 스타일리

스트 친구들이 함께 했기에 지금의 그들이 있을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저도 혼자가 아닙니다.

<데이즈드>의 편집부 에디터를 비롯해서 아트팀의 디자이너들, 광고와 마케팅, 배본을 위해 동

분서주하고 있는 수많은 팀원들과 인쇄소 사장 그리고 밖에서 고군분투하는 <데이즈드>의 컨트

리뷰터들까지.

 

두 손을 한 번 더 모읍니다.

봄은 따뜻하니 봄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