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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나는 10대였다. 빨리 남자가 되고 싶었지만 남자 티가 확 나진 않았다. 그래도 거침이 없었다. X세대였으니까. X세대는 개성이 중요했다. 김원준이 그랬고 현진영이 그랬고 듀스도 그랬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힘을 더했다. 형들이야 압구정동에 가서 오렌지 족처럼 흥청망청 써댔을지 몰라도 당시 10대인 나는 안양과 평촌을 무대로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콧방귀 끼며 내 색깔을 만들기에 여념 없었다. 30대 후반이던 삼촌은 이런 나를 안타깝게 봤다. 명절이면 내 옷차림이 늘 도마에 올랐다. 귀를 왜 뚫고 왜 그렇게 큰 바지를 입느냐, 그들은 날 X세대가 아닌 날라리로 봤다.
2000년 밀레니엄과 함께 새롭게 떠오른 세대는 N세대였다. N은 네트(Net)의 약자로 X세대와 가장 큰 차이점은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점이다. 공강 때 당구장과 노래방을 즐겼던 우리와 달리 이들은 PC방에 둥지를 틀었다. TV보다 컴퓨터에 친근하고 전화보다는 문자를 즐겼다. 미안하게도 내게 N세대는 인간미 없는 이기주의자들처럼 보였다.
그 뒤로도 다양한 알파벳이 붙은 세대들은 연이어 등장했으나 X나 N세대처럼 또렷하게 주목 받은 세대는 없었다. 그렇게 강산이 한 번 이상 변하고, X세대를 날라리라 부르던 삼촌의 나이가 되어서야 그때의 내 나잇대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1995년 이후 출생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Z세대, 지금의 10대들이다. Z세대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디지털 원주민이다. 이들은 소셜 미디어에 적극적이며 자기 표현에 거침이 없다.
모처럼 등장한 신 인류에 패션계부터 Z세대를 가만 놔두지 않고 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파리, 밀란, 뉴욕, 런던의 4대 패션위크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할리우드 배우 윌 스미스의 아들과 딸인 제이든 스미스와 윌로 스미스였다. 제이든 스미스는 루이 비통 캠페인 모델이며 윌로 스미스는 샤넬의 새로운 대사가 되었다. 이들이 운영 중인 인스타그램은 톡톡 튄다. 제이든 스미스는 여자 친구와 함께 뉴욕 패션위크를 동행하는 등 주변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다. 유명한 부모를 둔 것이 물론 큰 도움이 됐겠지만 그들 자체 역시 매력적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Z세대들이 패션지를 장식하고 패션쇼에 초대받으며 주목 받고 있다. 물론 이름있는 스타의 아들, 딸이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조금씩 누구나 인지하고 있다. 패션계가 Z세대를 남다르게 보는 것은 그들이 새로운 소비 패턴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X세대는 이상주의자였다. 어떻게 보이고 싶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서 누군가를 따라 입기도 하고 좇기도 했다. 그래서 그 개성이란 것들이 뭉쳐 하나의 유행으로 완성되곤 했다. 하지만 Z세대는 지극히 독립적이다. 또한 경제적 가치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온라인 구매에 능동적이다. 따라서 기성세대가 제시하는 유행이 한 명 한 명의 자아를 통해서 전혀 다른 것들로 재창조된다. 이들에게 기존 패션 브랜드가 지닌 명성은 중요하지 않다.
이제 패션계에 남은 과제는 Z세대에게 감흥을 줄 만한 컨텐츠를 만들 수 있느냐와 Z세대와 교감할 만한 자세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Z세대를 비정상으로 치부하는 X세대 출신의 ‘삼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우리에겐 알파고가 곧 Z세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