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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 #112

By EDITOR'S LETTER

몇 년 전 일입니다.
잘 안되던 수입 브랜드가 당시 가장 뜨거운 명성을 얻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영입함으로써
미디어를 비롯한 패션 관계자들의 이목을 한눈에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그 브랜드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사장님께 말씀드렸죠.

“이제 힘을 실을 때입니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매장을 한 군데 빼고 전부 닫는 것으로 하자.”

‘왜’냐고 묻지는 않았습니다.
그분의 경력과 연륜 앞에서 그 질문은 필요 없었습니다.
그저 즉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사회생활을 할 줄 아는 직원으로 인정받는 당연한 상황이었습니다.

속으로는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뉴스도 더 뿌리고 화보도 더 찍고,
매장 수도 유지 혹은 확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 조바심도 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본격적으로
손을 댄 컬렉션들이 매장에 입고되었습니다.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돈을 쓰지 않아도 톱스타들의 협찬 요청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매거진 에디터들은 앞다퉈 메인 화보에 우리 브랜드를 실었습니다.
매출도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폐점했던 매장 쪽 백화점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입점하시죠. 훨씬 더 좋은 자리, 더 좋은 조건으로 맞춰드리겠습니다.”
이윽고 백화점의 황금 자리에 우리 매장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금의환향.
사장님의 ‘덜기’ 전략은 한마디로 적중했습니다.

패션 비즈니스에서 변화에 따른 전략은 때론 민주적인 절차보다는 훌륭한 디렉터 한 명의 의견이
답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사심에 흔들리지 않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과감하게 팀을 이끌 수 있는
능력있는 디렉터여야 가능한 일이겠지요.

오늘날 우리나라 패션계에 행여나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면
바로 이러한 디렉터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 아닐지 감히 이야기드려봅니다.

<데이즈드>는 한 번 더 큰 변화를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인사는 모든 변화를 마친 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좋은 디렉터가 되는 길, 그것에만 집중하겠습니다.

201707 #111

By EDITOR'S LETTER

아이가 아버지의 손바닥을 샌드백 삼아 잽을 날린다.
“원, 투, 원, 투.”
아버지의 기함에 따라 고사리손이 하늘을 찌르듯 재빠르다. 기척도 좋다.

다음은 기마 자세다.
아버지의 무릎 위로 아이의 두 발이 각각 나뉘어 포개진다.
“원, 투, 원, 투.”
한결같은 아버지의 기함에 아이는 양팔을 벌린 채 무릎을 굽혔다 펴길 반복한다.

실수를 할 때면 더 행복해진다.
아버지 품에 안기면 그만이다.
아버지의 두 팔을 딛고 푸른 하늘을 나르는 관람은 보너스다.

오늘 한 생명과 헤어졌다.
내내 울었다.
보내고 오는 길,
구름이 어찌나 그림 같은지, 또 공기는 어찌나 부드러운지
화딱지마저 났다.

그리고 창을 열어봤던 장면,
아이와 아버지는 서로의 정(情)을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다.
유한한 유통기한이 주는 번뇌는 이놈의 정의 힘으로 미덕이 된다.

되레 나는 애써왔다.
정 따위,
실속 있게 살려면 쿨해져야지,
이 반대의 끝에 있는 것이 정이지, 없애야지 했다.

낯설었다.
정을 뗄 때 일어나는 감정에 이리 솔직해도 되는지 겁이 날 정도로
낯설었다.

마음이 한없이 작아진다.
약해지고 마구 구겨진다.

혼탁한 망상에 기대 울고 싶다.

보니,
낯설지가 않다.

욕 나오는 밤이다.

201706 #110

By EDITOR'S LETTER

고 노무현 대통령은 등산할 때마다 국내 등산복 브랜드를 번갈아 입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라푸마, 트렉스타, 영원 등등. 그런데 어느 날 이런 뉴스가 올라왔다.
등산하면서 쓴 선글라스가 수입 브랜드 오클리였다고,
국산 선글라스도 좋은 것 많은데 그건 안타깝다는 내용이었다.

시간이 흘러 전 정권에서 최순실은 비전문가를 써서 대충 가방 브랜드를 만들고 그걸 대통령에게
들게 했다. 언론은 국내 중소기업 브랜드 가방을 들었다고 마치 애국자인 양 대서특필했다.
그래서 누구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는지 모두가 안다.

며칠 전 대선에서 떨어진 모 후보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패션(Fashion)’ 좌파라는 말을 썼다.
패션 좌파가 신조어는 아니다. 여기에서 이 말은 강남에서 사치스럽게 유흥을 즐기면서 좌파로서
청렴한 척하는 부류를 뜻한다. 철저히 ‘패션=사치’라는 기준에서 파생된 언어다.

우리는 대통령 혹은 공인의 사치 기준으로 패션을 삼는다. 그들은 싼 옷, 국내 브랜드의 옷,
낡은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싼 옷, 수입 브랜드 옷, 새 옷을 입은 대통령.
뭔가 모를 거부감부터 들 것이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과 그의 영부인 브리지트 트로뇌의 경우는 이것을 잘 활용한 경우다.
그들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입은 의상을 이례적으로 스스로 시시콜콜하게 기재해서 발표했는데
마크롱 대통령은 50만원대의 ‘조나스&시에’라는 슈트 맞춤 브랜드였고, 영부인은 루이 비통
투피스를 입었으나 빌려서 입었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서민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것은
고액 연봉자로 직장 생활을 했던 마크롱의 부자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함이다. 게다가 마크롱의
라이벌이던 공화당 후보 프랑수아 피용이 1600만원 상당의 슈트 두 벌을 선물받아 대중의 분노를
산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철저한 전략이다.

패션은 전략이고 산업이다.
비싼 만큼 값어치를 한다는 것을 느꼈다면 돈을 모아서 1년에 한 벌 구입할 수도 있는 전략이다.
수입 브랜드를 입은 경험을 통해 루이 비통처럼 대대손손 물려받아 국위를 선양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산업이다.

나이키를 신고 수입 브랜드 입은 공인을 욕하거나
100만원짜리 아이폰을 쓰면서 50만원짜리 티셔츠에 어처구니없어하는 우는 더 이상 범하지 말자.

서로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현대적인 패션관이 ‘득’이 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201705 #109

By EDITOR'S LETTER

 

“네 몸에서 동대문 냄새가 나.”
대학 시절 많이 듣던 말입니다.

좀처럼 향수는 뿌리지 않았지만 씻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주로 제가 입고 걸친 것들이 빈티지 제품이었기 때문입니다.
빈티지 옷에서 발현하는 특유의 냄새, 그것을 “동대문 냄새”라고 친구들은 말했습니다.

제가 빈티지 옷에 빠진 것은 초등학교 시절부터입니다.
동네 아동복 매장에서 구입한 새 옷보다 외사촌 형에게 물려받은 1980년대 초반의 옷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말입니다.

물론 빈티지와의 만남이 시작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 이모 집에 다녀온 엄마의 손에 보자기가 들려 있었습니다.
주섬주섬 엄마가 펼친 보자기 속에는 외사촌 형이 입던 여러 벌의 옷이 들어 있습니다.
“안 입는 옷이라길래 좀 얻어 왔어. 한번 입어보자꾸나.”

초등학교 3학년, 미운 아홉 살이라는 나이. 그 제안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쾅!
제 방문을 닫고 이불 속에 들어가서 울기까지 했습니다.
“남이 입던 옷을 내가 왜 입어!”
고함도 지르면서 말입니다.

며칠이 지났을까요.
어느 순간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출근한 엄마 몰래 슬며시 그 보자기를 풀어보았습니다.
반 친구들이 입는 것과는 뭔가 다른 색상과 디자인, 그리고 깨끗하게 세탁했음에도 삐져나오는
그 빈티지한 냄새.
뻥!
머릿속이 뚫린 기분이었습니다.

다소 낡고 헤지고 사이즈도 맞지 않았지만, 또 몇몇 친구들은 왜 헌 옷을 입고 다니느냐고 놀리기도 했지만 그것은 문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쭐댔습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 하나로 가졌던, 그것은 우월감이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이모 집에 다녀온 엄마의 보자기가 보물 창고가 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일 테지요.

얼마 전 실로 오랜만에 그 비슷한 이야기를 또 들었습니다.
“네 몸에서 구제 냄새가 나는 거 알아?”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제가 걸친 청 재킷이 영국 런던에서 구입한 2만원짜리 빈티지 옷이니 그 이유야 여전한 것이겠죠.

이달 <데이즈드> 코리아는 아홉 살이 되었습니다.
표지 어디에도 창간 9주년을 자축하는 단어 하나 넣지 않았지만 내용은 그 어떤 호보다도 <데이즈드>답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중 하나가 문학가 9명이 ‘페티시’에 관해 쓴 글입니다.

세상의 어른들은 남들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덜 튀고, 덜 나서고, 덜 솟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적당히 분수에 맞춰 순리대로 사는 것이 ‘건강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전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페티시야말로 유행이나 개성을 넘어 각자를 구분 지을 수 있는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네.
전 빈티지 페티시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옷 입기를 넘어 제가 먹고, 자고, 마시고 살아가는 제 삶의 모든 근본이 되며 남들과 다른 시작점이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페티시가 있으신지요?
혹시 별다른 페티시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데이즈드> 페티시는 어떠신지요?

이미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201704 #108

By EDITOR'S LETTER

 

지난 2월 말부터 3월 초, 파리 패션 위크가 열리던 열흘가량
그곳에는 하염없이 비가 내렸습니다.
제아무리 날고 긴다는, 전 세계에서 모인 프레스와 바이어들도
장대비 앞에선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물론 최선을 다해 우리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이는 과장된 어깨의 재킷,
맨땅에서도 걷기 힘들 통굽의 하이힐,
무기처럼 보이는 무거운 액세서리들도 여지없이 동반됐습니다.

차에서 내려 쇼장까지 가는 길은 가깝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산은 생략합니다.
빼곡히 붙어 앉은 쇼장에 우산을 마땅히 둘 곳도 없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가리는 것은 기어가는 것보다 용납 못 할 일입니다.

또박또박 쇼장을 향해 걸어가면 여지없이
사진가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집니다.
사진가 또한 우비도 모자라 마치 우주인처럼 카메라를 비롯한 온몸을
비닐봉지로 몇 겹 둘러싼 채 사진 찍기에 열중합니다.

그들을 지나치면 초대장 소지 유무를 검사하는
덩치 큰 안전 요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소속과 이름이 적힌 초대장을 그들 앞에 내밉니다.
때로는 눈으로 확인하지만, 때로는 바코드 형태로 제작되어
스캐너를 거쳐 입장 승인이 떨어지길 기다리기도 합니다.
빗속에서도 그들의 눈초리는 날카롭습니다.

쇼장의 입구를 통과하면 보안 검사 요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각종 테러 위협으로 공항 뺨치게 엄격해진 보안 시스템에
가방 속은 물론 몸 수색도 각오해야 합니다. 차별이 없다고 믿고 싶으나
유색 인종에게는 더 매서운 손끝입니다.

이렇게 쇼장 안으로 들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약간의 웃음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자리 안내 도우미 역할을 담당하는 잘 차려입은 키 큰 젊은 남자들이
주인공입니다. 대부분 모델 지망생이거나 신인 모델입니다.
A구역부터 K구역까지 있기도 하고, 1열부터 8열까지 있기도 합니다.
물론 쇼를 5년 이상 다녀본 프레스들은 이 정도 암호는 능수능란하게 풉니다.
초대장에 적힌 번호만 봐도 대충 ‘내 자리는 프런트 로다’부터
‘헤어 쇼를 보느니 차라리 집에서 모바일로 보는 게
낫겠는걸’까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자리에 앉으면 같은 나라의 프레스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쇼장 입구에서부터 그 브랜드의 마케터를 마주할 수도 있는데,
주로 자리에 앉아서 약간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패션계에서 잘 쓰는 단어,
바로 밍글링(Mingling) 시간인 셈이죠. 내용은 뉴스가 끝나고
스크롤이 올라갈 때 나누는 앵커들의 대화 수준입니다.
“언제 왔어요?” ”비 너무 많이 오죠?” “그 식당 맛있더라.”
하다 하다 사돈의 팔촌 안부까지 물어가며 입에서 게거품이
나올 때쯤에서야 쇼는 시작됩니다. 30분은 예사니까요. 사탕은 필수입니다.

쇼가 끝나면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긴장된 표정으로
어딘가에 메시지를 보냅니다.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쇼가 끝났음을 알리고
어느 위치에서 만날 것인지를 체크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입구를 향해 반 뜀박질을 시작합니다.
보통 한 시간 간격으로 쇼 스케줄이 있는데,
이동 거리를 계산하면 늘 빠듯합니다.
비가 오는 파리의 교통 체증은 평일 대낮에도
홍콩의 금요일 저녁을 능가합니다.

그런데 나가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수백 명이 작은 입구에 한데 몰리니 한 걸음 떼는 것이
세 살 난 어린아이 시절보다 어렵습니다. 간신히 빠져나오면 다시금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인파와 우산 속에서 자신의 차 번호를 수백 번 곱씹으며 후회합니다.

‘우산은 챙길걸.’

이러한 오감을 비 오는 파리에서만 족히 70회 정도는 반복해야 합니다.
컬렉션 전문 잡지 기자의 경우 시즌당 300회가 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마따나
단언컨대
제가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도돌이표를 반복했던 이유는
패션쇼가 주는 가치 그 이상의 숭고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파안대소와 대성통곡, 희생과 착취, 준엄과 무관심, 찰나와 영원, 그리고
절대적인 평등과 절대적인 불평등.
그 안에는 사회가 있고, 또 삶이 있습니다.

곧 서울 패션 위크가 시작됩니다.
누군가는 오매불망 기다린 잔치 중의 잔치겠지만,
누군가는 요상한 차림을 한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친한 스트리트 사진가가 말하더군요.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옷차림보다 명성이다.”
아무리 비싸고 튀는 옷을 입었다 한들 제대로 된 실력자 혹은
누구나 다 아는 유명인을 이길 수 없습니다.
결국 무엇을 입느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희망할 수 있게 된 봄입니다.
시간이 있다면 서울 패션 위크에 슬쩍 들러보세요.
패션이 주는 숭고함이 결코 가벼운 것만은 아닐 테니까 말입니다.
더불어 <데이즈드> 코리아는 언제나 그 감도를 이끌고 지켜나가겠습니다.

#나의오리지널리티 #ORIGINALis
심지어 서울 패션 위크 기간 재미있는 이벤트도 기획했습니다.
3월 28일부터 31일까지 서울 패션위크가 열리는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키, 외모가 아닌 남다른 오리지널리티를
지닌 차세대 모델을 뽑습니다. 이 행사는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에스팀 모델 에이전시, <데이즈드> 코리아가 함께합니다.
선정된 분에게는 아디다스 운동화와 다음 미션이 담긴 봉투를 드립니다.
어마어마한 특전이 가득한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201703 #107

By EDITOR'S LETTER

 

설날을 맞아 세종시에 계신 부모님 댁을 찾았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머니의 음성이 들립니다.
“아들, 아들이 좋아하는 갈비찜 해놨어.”
엄마 손에 이끌려 어느새 제 앞에 놓인 갈비찜 맛을 봅니다.
짜지도 달지도, 그렇다고 너무 싱겁지도 않게 제 입에 딱 적당합니다.
무턱대고 사르르 녹아버려 씹는 재미가 없는 그런 갈비찜도 아닙니다.
적당히 쫀득해서 갈비를 먹고 있다는 기분을 충분히 느낄 법한 꽤 괜찮은 갈비찜입니다.
“맛있어, 엄마.”
이렇게 유난스럽게 갈비찜을 대동해서 절 맞이하는 데는 서로 함께한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열두세 살 무렵 어머니의 첫 갈비찜을 맛봤을 때 일입니다.
어머니는 갈비찜을 준비하겠노라고 보름 전부터 우릴 들뜨게 했습니다.
당시 우리 사정에 갈비찜은 TV 드라마에서나 보던 고급 음식이니 그 주말 저녁은 그야말로
디데이였습니다. 식탁 위로 등장한 갈비찜 통으로 순식간에 아버지와 여동생,
그리고 저의 젓가락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요.
짜도 이렇게 짤 수가요.

두 번째 어머니의 갈비찜을 맛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야심 차게 만든 2차 갈비찜 역시 안타깝게도 실패였습니다.
질겨도 이렇게 질길 수가.

자연스레 우리 집에서 갈비찜은 사라졌습니다. 전 열아홉 살 무렵 일본으로 유학을 간 뒤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지 못했고, 이따금 같이하는 밥상에도 갈비찜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한 3년 전부터였을까요.
어머니의 갈비찜 도전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추석, 설날 할 것 없이 주로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 그 타깃이었습니다. 못 먹겠다는 수준에서 꽤 먹을 만하다는 평으로, 정말 맛있다는
감탄으로 그렇게 송편과 떡국 대신 갈비찜의 진화를 거듭하면서 우리는 단단해져갔습니다.

“엄마, 정말 뭐든 해봐야 느는 법인 것 같아.”
직접 경험은 그 무엇도 이길 수 없습니다.
매년 수차례 담그셨던 어머니의 김치는 제가 기억하는 한 점점 훌륭해졌으니까 말입니다.

<데이즈드>가 <데이즈드>의 맛이 제대로 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젊고(어리다는 것이 아닌), 다르며(틀리다는 것이 아닌), 독립적인(독단적이라는 것이 아닌)
패션 잡지로서의 맛을 내고 싶은데 말입니다.

제가 <데이즈드>를 요리한 지도 어느덧 1년하고도 반입니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머니의 갈비찜이 그러했듯이 맛없었을 때의 사정, 그리고 맛을
찾기까지의 과정과 현재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데이즈드> 팀은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격려해주세요.
황금 같은 지면에 여러분의 격려나 바라는 이토록 철없는 사람이지만 말입니다.

진짜 ‘봄’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201702 #106

By EDITOR'S LETTER

술을 어른에게 배우지 못했습니다.
학창 시절 그놈의 생일 파티에서 시작된 술버릇은 따라서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몰래 급하게
마시는 것이 몸에 밴 나머지 술 마시는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LTE급이며, 누구도
잔소리한 사람이 없었으니 술에 취하면 그냥 산이고 들이고 뻗어버리고 맙니다.
고로 요즘 술자리에서의 제 유통기한은 90분이 채 되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개념도 어른에게 배우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건 오히려 제 부모의 경제관에 반하고자 한 나머지 역효과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들의 타고난, 철저한 절약 정신이 마냥 안타까웠고 ‘그래 나는 젊으니 현재를 즐기겠소’라고
부르짖으며 적금은커녕 저금도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고로 제 통장은 한여름에도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달랐습니다.
시작은 유년기에 만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습니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에게
느끼는 이분적인 동경과 그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통해 느끼는 양면성은,
사랑은 자아의 실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제 세대의 필독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해변의 카프카>는 습하고 외졌지만 곧고 개인적인 사랑을 가르치며 사랑의
정신적인 폭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더불어 그쯤 함께한, 김한길 씨가 쓴 소설 <여자의 남자>는
쾌락과 유희가 주는 사랑이 지닌 게임의 법칙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10대 시절 끝 무렵에 만난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영화들은 단편, 장편 가릴 것 없이
사랑이 주는 판타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목도하게 만들었습니다.
고로 술버릇이나 경제 관념과 달리 제 사랑은 언제나 풍요롭고 안락하며 행복하…다고
말하면 참 좋겠는데 말입니다.
사랑은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만만치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노란색 숫자 1에 애간장을 태우고
틈만 나면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상상의 날개가 지구를 넘어 우주로 향하곤 하니,
말이 사랑이죠. 정신병입니다. 네. 그러합니다.

맞네요.
사랑은 술버릇이나 경제 관념처럼 어른에게 배우는 어떤 이론이나 습관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제가 판단하기에 사랑은 저 스스로 깨지고 부딪히며 일어서고
나아가서 쟁취해야 할 치열한 전쟁, 그것과도 같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르만 헤세, 무라카미 하루키, 김한길, 프랑소와 오종 등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들의 안내 덕분에 사랑이 차고 넘치는 사랑제일주의자가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오글거려도,
전 이렇게 말하며 이 글을 맺으려 합니다.

사랑을 배울 수는 없지만, 사랑이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랑을 사랑하시길.

201701 #105

By EDITOR'S LETTER

11월 말,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10대 젊은 프랑스 디자이너들과 대화하면서 생긴 일이죠.
어떤 디자이너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시큰둥합니다.
한국 음악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반에 빅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제게 묻는 것이,
“북한은 괜찮냐?”는 것입니다.
뭐 해외에서는 늘상 듣는 질문이지만 고등학생이 물으니 약간 당황스럽더군요.
“우리는 한 가지의 언어를 쓰며, 우리는 통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통상적인 제 답변에 그들이 다시 말합니다.
“그러나 김정은(똑똑하게 발음하며)은 젊어서 어디로 튈지 모른다. 게다가 남한(우리는
우리를 그렇게 부르지 않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영어는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그저
South Korea이지요)도 정부 문제로 시끄럽지 않은가.”

카페 내부가 제법 추웠음에도 웃옷을 벗었습니다.

꽤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눈빛이 생생합니다.
맹세코, 사대주의자는 아닌데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태도는 조금
부러웠습니다.

프랑스의 논술형 대입 자격 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eate)는 1808년 나폴레옹 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그 철학적인 질문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합니다.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가?(1993)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1996)
타인을 심판할 수 있는가?(2000)

우리가 정답을 찾는 동안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적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표현합니다.

다시, 우리의 광장을 봅니다.

엄마에게 귀에 박히게 들었던
친한 친구와도 하지 말라는, 해코지 당한다는 그 정치와 사회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는
우리의 10대들이 있습니다.
무너진 이 땅의 자존심을 다시 세울 훌륭한 자양분입니다.

더 이상 그런 그들에게 오지선다형 ‘수능’을 강조하는 것은 ‘죄’입니다.
이제 반성을 넘어 결심을 합니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차마 품는 것조차 안 됐던 ‘생각’을 하려 합니다.
패션 잡지에게 생각이란, 바로 ‘저널리즘’일 것입니다.

코리아는 우리의 생각을 말하고 표현하겠습니다.
이제 2017년입니다.
벌써 그렇게 됐네요.

201612 #104

By EDITOR'S LETTER

“학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가슴 언저리에 흰 손수건을 옷핀으로 고정하며 엄마는 말을 이어갔다. 설거지를 하다가 막
나온 듯 손에는 물기가 묻어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완공된 50제곱미터가 채 안 되는
주공아파트의 신발장은 지금 떠올려보면 보잘것없었다. 다행인지 내 키는 135센티미터도 안
됐다. 엄마의 훈계가 이뤄지기엔 그 신발장은 여느 강당 부럽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밤바람 쐬면 감기 안 낫는 댔지?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지. 빨리 들어오렴.”
“아빠 회사 사모님들이 놀러 오신 댔으니 동생하고 신발장 정리 잘해놓고.”
“새로 이사 온 아래층 형들한테 대들지 말고. 한 살 차이라도 형님은 형님이란다.”
“중학교 때부터는 선배님들 말씀 잘 들어야 한다더라. 상냥하고 깍듯하게 행동해.”

그러면서 모든 당부의 끝엔 ‘Fine thank you’ 뒤에 자동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and you?’처럼
“엄마는 하나뿐인 우리 아들을 믿는단다”가 이어졌다. 그렇게 그 작고도 큰 신발장에서, 남의 콩
반쪽도 탐내지 않던 엄마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배웠다.

10대 후반 무렵, 먼 길을 떠나던 그날 아침에도 신발장은 여전히 바빴다.
“타지에서 공부하면서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조용히 네가 하는 일을 성실히 해나가야 해. 그게
세상을 돕는 거란다.”
순응, 엄마가 사회에서 배운 대응은 순응이었다.
엄마의 믿음을 나 역시 믿었고, 믿고 싶었다. 말마따나 하나뿐인 ‘아들’이고 싶었다.

선배님, 선생님, 의사 선생님, 판사님, 변호사님, 검사님, 대장님, 교수님, 법관님, 박사님,
부녀회장님, 친목회 대표님, 산악회 회장님, 볼링센터 센터장님, 차장님, 부장님, 상무님, 이사님,
사장님, 그리고 대통령님….
엄마는 내게 수많은 ‘님’을 가르쳤다. 정체불명의 높고 다른 ‘님’들의 말씀을 믿고 따름으로써
우리는 안전하고 안정하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 가장 꼭대기,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우리
스스로 겹겹이 둘러싸고 또 둘러싸 그들을 보호해주는 것이 바로 순리라고 가슴에 못
박았더랬다.

며칠 전 그런 엄마에게서 믿기 힘든 문자를 받았다.
‘아들, 세상이 미쳤어.’
그 흔한 돌았다는 표현도 한 번 안 하던 우리 엄마가 미쳤다니, 엄마가 미쳤다고 말하다니.
엄마는 그렇게 신발장을 흔들었다. 알면서도 채 다 알지 못했던 지금의 세상. 나는 맹물조차 삼킬
수 없었다.

학교 선배님도 나쁜 짓을 하면 인사를 안 할 수도 있고,
의사 선생님도 거짓말을 하면 욕을 할 수도 있으며,
회사 사장님이 부정을 저지르면 경찰서에 신고할 수도 있고,
대통령님도 잘못을 하면 대가를 치를 수 있는 것이거늘.

엄마는 결코 가르친 적 없던, 권위주의.
이것이 만든 현대판 신분과 계급의 올가미 속에 우리 사회는 곪고 썩었다.
창조는커녕, 상식은커녕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

엄마는 그 시절 주공아파트 신발장에서의 나만큼이나 한없이 작아졌다.
하나뿐인 엄마를 이 ‘미친’ 세상에서 구해주는 것이야말로 이제 내 몫이다.
가슴팍 손수건의 온기는 아직 남아 있다.
나는 ‘님’이 아닌 ‘우리’를 믿는다.

201611 #103

By EDITOR'S LETTER

착하게 산다고 해야 할까요?
요즘 그렇습니다. 꼬박꼬박 장도 보고, 톡톡한 털 슬리퍼도 사고, 제법 근사하게 커튼도
만들었습니다. 빗소리도 챙겨 듣고, 못 믿으시겠지만 감정에 따라 변하는 다람쥐의
걸음걸이까지도 느끼고 삽니다. 친구 녀석들이 찍어대면 그렇게 타박하던 ‘음식 사진’도 나서서
찍고,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근처 공원에서 들꽃을 꺾을 예정이니 말 다 했죠. 행복이 가득한 집,
그 표본입니다.

자유. 거창하게 이런 말을 써봅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유는 통속적으로 크게 세 가지 의미인
듯합니다. 일제 강점기를 벗어난 뒤 누렸던 민족적인 독립과 교도소를 출소한 후 얻게 되는
육체적인 해방, 그리고 사춘기 학생이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김혜자 씨처럼 남들은
이해 못 하는 3차원적인 가출. 그렇다면 지금 제가 누리는 자유는 독립이며 해방이자 일종의
가출입니다. 육체적으로 제약에서 벗어난 것은 사실이나 남들에게 마냥 다 이해를 바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하나 더,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다. 제게 자유는 생활이더군요.

‘분명 살긴 살았는데, 산 적이 없었구나.’
비로소 ‘생활’을 하다 보니 참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날이 갈수록 또렷하고
선명하게 나 자신을 발견하는 체험은 에디 슬리먼의 패션쇼를 보며 울고 웃었던 감개무량함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사회가 씌운 녹슨 코뚜레를 벗고 보니 오히려 진짜 용기가 생겼습니다.
명함에 기댄 채 뒤로 숨던 그 녀석은 비겁하고 멍청했습니다.

한마디로 내가 누리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이 시간, 전
최대한 깊고 충분히 자유로울 예정입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패션을 찾을 것입니다.
똑같이 살지 마세요. 한국의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자유’는 자유가 아닙니다. 서서히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조금씩 혹은 크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모든 것은 이 거짓말에서부터 시작됐을
겁니다. 미안합니다.

자유를 찾으세요.
여기는 런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