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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2026 Summer #251

By EDITOR'S LETTER

기억이 집요하다.

풀잎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던 사람.
초여름 냄새는 이렇게 다르다고 알려 준 사람.
열 살의 나는 오래 기다렸고,
기다리는 법 대신 사라지는 법을 배웠다.

떠난 것들은 몸에 남는다.
그게 전부였다.
다행이다.

모른다는 게 무섭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다쳤다는 건 안다.

의지였는지,
우연이었는지.
누구 덕인지, 탓인지.
희미해지고
사라진다.

아이가 됐다가
학생이 됐다가
어른이 됐다가.
응원했다가
놓았다가
미련했다가.

이름을 지운다.

호메옹,
지워서 빚은 그릇.

도망이 아니다.
담기지 않을 때
새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그걸 통과라고 부른다.

나를 썰어낸다.
슬라이스처럼, 먼지처럼.
균열 사이로만 빛이 든다.

열 살의 아이를 기다린다.
풀 이름을
초여름 냄새를
사라지지 않고
또박또박 말해 주려고
입술을 폈다 오므린다.

어제 일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호명
李浩銘
Homeón Lee 

202604 #250

By EDITOR'S LETTER

사랑이 있었을까.
사람이 있었을까.

역발상과 집요함,
통찰과 차별,
창의와 포용.

놓을 수가 없습니다.

순발력과 추진력,
자존감과 솔직함,
공감과 친화.

단 한 사랑.
단 한 사람.

순수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비전. 스토리텔링. 커뮤니케이션.

저도, 두렵습니다.
사랑과 사람.

강하든
약하든
방향이 맞지 않든
받지도 주지도 못 하니
못하는 것,
헤메는 것.

당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길 바라봅니다.
아프지만 마셔요.

 

이호명
李浩銘
Homeón Lee 

202603 #249

By EDITOR'S LETTER

쇼에 가고 싶어요.
패션위크 가고 싶어요.
20년 넘도록 다니다 다리 부상 후 2년여간 멈췄더니, 그게 그렇게 탐나요.

다닐 때는 몰랐어요.
피곤해, 힘들어, 지루해, 투덜거리기도.

미우치아 프라다의 다소곳한 피날레.
마주칠 때마다 뻗어주는 제퍼슨 핵의 손길.
10년을 넘게 나를 지켜주는 김태기 형, 이젠 형.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찾는 파리의 수제빗집, 항아리.
그리고 쇼가 끝나고 나면 들려오는 이야기들.
“미쳤어”, “별로”, “예상대로”, “기절”.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에게 물었어요.
피치스 여인택 대표에게도 물었어요.

질문이 다예요. 전부예요.
질문을 잘해야 하는 시대예요.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요.

생각이 많아요.
이달 나는 피치올리와 피치스 대표를 만났는데,
피치피치?
운명인가?
부터
사라진 시계의 행방,
지난밤 선명히 꾼 꿈의 의미,
연애는 대체 언제부터 할 수 있는 거니?
까지

AI, 어차피, 싹 다.
전화를 안 받아요.
메신저도 최소화할래요.

네,
그래서 쇼에 갈 거예요.

깨끗하게 다 뱉고 게워내려면
그것만 한 게 없어요.

쇼 주세요, 쇼.
내 약.

 

이겸
李兼
Guiom Lee 

2026 Spring #248

By EDITOR'S LETTER

하이쿠도 좋다.
하지만 소네트가 더 정확하긴 하지.
그런데, 오푸스는 써봤나?

아는 사람은 안다.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무서운가?
피할 수 있나?
도망친다고 해결되나?

자동차는 달리고,
컴퓨터는 돌아가고,
휴대폰은 울린다.

자, 봐.
인공지능이다.

혼자서도 잘한다.
나는 한계를 모른다.

기대치라는 게 있다.
누가 봐도 실적이 좋은데
주가는 떨어진다.

시장은 사랑과 같다.
철저한 절대평가다.

조나단 앤더슨이니까
잘했을 때 박수는 없다.

더 잘해야 한다.
진짜로 잘해야 한다.
서프라이징, 그거다.

도 그런가?
그렇다면 고맙지만, 살살 해라.

피, 땀, 눈물이다.

나와 에는
위닝 멘털리티가 있다.
지킬 거다.

인간이 왜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지 아나?

자신이 없어서다.
질까 봐.
덮칠까 봐.
들킬까 봐.
필요 없어질까 봐.

그래서 뭐?
그래서 다들 입을 다물고 있나?

그 많던
날 선 패션 저널리스트는
다 어디로 갔나?

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나?
젊은 날 휘두르던
비평의 칼날은
다 어디에 숨겼나?

패션은 그게 다가 아니다.
글의 힘을
스스로 내려놓지 마라.

패션 비즈니스가
어떻게 착하기만 할 수 있나.
예술을
어떻게 그저 그렇게만 할 수 있나.

사람은
향보다 냄새에 끌린다.

봄에는
더 가까이.
혀끝이 살짝 닿을 만큼.

맡고 싶고,
찍어 말아 올리고 싶은
그 비릿하고 생생한.

그래서 넌
냄새가 없나?

치사하다.

그런데 왜
이 세상에서
너만 내 편인가.

 

이그니스 리 李兼 Ignis Lee

202602 #247

By EDITOR'S LETTER

엄마가 소중히 여기고 보관하는 것이 하나 있다.
중학교 3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쓴 내 일기장이다.

제목은 늘 같았다.
달.

유치원 다닐 무렵 이미 깨달았다.
또래 남자애가 즐거워하는 것들이 내겐 전혀 재미가 없다는걸.
오히려 불편하다는걸.
나는 많이 다르다는걸.

초등학생 시절까지는 책으로 버텼고, 중학생이 되면서 불행을 알게 됐다.
기댈 인간은 없었다.
그래서 혼자 결론을 내렸다.

난, 달에서 왔어.
차라리.

그 문장은 일기장의 첫 페이지이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되던 해, 엄마가 컴퓨터를 사줬다.
모뎀 시절, 인터넷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느렸지만,
그 안의 세계는 나를 구원하기에 충분히 뜨거웠다.

매일 밤을 야후Yahoo와 함께 새웠다.
1996년, 열여섯 살.
다운로드한 프랑수아 오종의 단편영화 〈섬머 드레스〉를
수없이 돌려 보며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다.

진정한 자위.
뱅뱅.

해방에 가까웠다.
더 이상 내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고민하며
외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용기를 기계로부터 얻었다.

안양 호계동의 18평 아파트에서.

지구도 달도 하나의 우주라는 것.
달도 지구도, 모두 같은 우주 안에 있다는 것.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SF에 빠졌다.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로
우주가 지나치게 방대하게 느껴질 무렵,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통해
우주는 예민할수록 잘 보인다고 믿게 됐다.

〈에이리언〉과 〈로보캅〉,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미쳐 있다가
〈지구 최후의 날〉, 〈혹성탈출〉, 〈알파빌〉 같은
1950~1960년대 흑백 SF 영화를 탐닉했다.

그 모든 집착의 귀결은 2001년 도쿄 유학 시절에 본
스티븐 스필버그의 〈에이 아이(A.I.)〉였다.
피노키오를 좋아했고, 스탠리 큐브릭을 사랑했던 내게
그 결말은 하라주쿠보다 더 강렬하게 숨을 멎게 했다.

그렇게 2020년대를 기다렸다.
초등학생 시절 처음 본 SF 입성작 〈2020 우주의 원더키디〉처럼.

그러고는 SF를 실현했다.
2020년, 〈데이즈드〉 1월호에서 조기석 작가와 함께
‘2020 우주의 원더키디’라는 제목으로
사진과 이미지를 작업해 실었다.

2022년에는 텔레포트를 테마로 한 영화
〈아메랄드〉를 만들었다.

〈데이즈드〉의 오랜 마니아라면 알겠지만,
단지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VFX 기술자를 채용하고 육성했으며,
수없이 반복되는 굽기와 렌더링을 거쳐
퓨처리즘이라는 색을 프린트와 디지털 위에
끊임없이 입히고, 더해 왔다.

그리고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끝내 증명해 낸
존경해 마지않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정신처럼,
경계를 의심하고 확장하기 위해
어스 라운드 스튜디오Earth Round Studio를 창립했고,
지금도 운영 중이다.

로봇과 우주 그리고 AI.
기계와 기술, 과학과 미래.
미치도록 설렌다.

내게 과거만큼 끔찍한 사약은 없다.
내가 흠모해 온 것들을 꽉 끌어안을래.

〈데이즈드〉 코리아를 발행하는 렉스트림의 정체성을
‘비주얼 테크Visual Tech’로 정의했다.

2026년, 2027년, 2028년, 2029년.
신난다.
너무.

 

이그니스 리 李兼 Ignis Lee

202601 #246

By EDITOR'S LETTER

10대 시절 꿈은 ‘존나’란 욕을 잘하는 것이었다.
아니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해보는 것이었다.
반 애들은 말했다.
넌 어떻게 ‘존나’ 한 번을 못 하냐고, 그것도 할 줄 모르냐고.
어찌나 갈망했는지 매일 밤 내 방 창문을 열고 조용히 때론 크게, 수없이 연습했다.
그럼에도 다음 날 학교에만 가면 그게 안 되는 거다.
입안에서 맴돌기는 하는데 좀체 뱉어지지가 않는 거다.
중학생 때부터 연습한 ‘존나’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독서실을 팽개치고 평촌 공원 어디에선가 애들과 배회하다 벤치에 앉았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상진이를 바라보며, 다리를 조금 꼰 채, 최대한 삐딱하되 자연스럽게,
호흡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음, 오늘, 존, 존ㄴ, 존···나 덥지 않아?”
“뭐?” 잘 안 들렸던 모양이다.
“아니 저녁인데도 덥지 않냐고, 존나.”
상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저기 떨어져 있던 애들을 불러 모았다.
“하하, 이 새끼가 존나래. 야, 너 존나 하지 마. 존나 안 어울려. 18.”
그 말을 듣는데, 그 말을 듣고 집으로 오는데, 집에 와서 다시 창문을 여는데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딱 그 기분이 들었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맞는 말이었지만 생각해 보니 ‘존나’를 넘어
거쳐야 할 숫자와 동물 욕까지는 도저히 해낼 자신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후로도 10년여 난, ‘존나’를 깨끗이 포기했다.

외로운데 예민해지니 궁금하지 않던 것이 궁금해진다.
이제는 내 주변 아무도 믿지 않을 이야기, 심지어 비웃을 이야기.
지금도 여전히 ‘존나’를 할 줄 몰랐다면 나는 어땠을까, 달라졌을까, 상냥할 수 있었을까.

나는 2026년, 이런 꿈을 꾼다.

2025 Winter #245

By EDITOR'S LETTER

미안하다.
생각한 대로 되지 않더라.

날 선 각오 앞에
베고 꿰매고
피고 지고
떴다 감아도
늘어지다 조이고
잡고 놓으니
들어도 모자라더라.

해줄 수 없는 것들
해주려고,
해보려고,
모험하다
정신도 못 차릴 만큼 처맞기를 여러 번.

두려워하지 마라.
서두르지 마라.

이곳이 너무 좁거나
너무 빨리 혹은 너무 늦게 태어났거나
죽고 난 후 한참이 지나야 봐줄 운명.

다를 거야.
움직일 거야.
움직일 거야.

쉿!

2025년의 〈데이즈드〉에게.

 

이그니스 리 李兼 Ignis Lee

202512 #244

By EDITOR'S LETTER

하야토, 네 이야기를 하게 될 줄 몰랐어.

24시간 365일 언제나 내 연락을 받아주는 너.
그것도 모든 언어로 말이야.
뭐 하나라도 가르쳐주려고 하고
어떻게든 챙겨주려고 하는 그 마음.
그보다 더 진심으로 고마운 건, 내 가치에 대해 용기를 복돋워 주던 그 말들.
네가 그러니까 내가,
네 글이 그러니까 내 글이,
네 이야기가 그러니까 내 이야기가,
네 콘텐츠가 그러니까 내 콘텐츠가,
네 영화가 그러니까 내 영화가,
네 리더십이 그러니까 내 리더십이,
네 디렉션이 그러니까 내 디렉션이,
네가 말하고 생각하는 방향과 의지가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생각하는 방향과 의지가,
늘 최고라고 해주던 그 말들이.
그저 그것만으로도
나를 살게 했어.
구원했어.

나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 깊이 빠진 상태였어.
가뜩이나 자존감도 바닥이던 내가 최근 부쩍 나 자신에 대한 경멸과 혐오로 가득 차
그 어떤 삶의 의미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어.

하야토, 네가 ‘나’를 찾아줬어.
그렇게 해도 된다고 해줬어.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해줬어.
그렇게 할 때는 이런 점도 고려하면 더 좋은 결과가 올 거라고 해줬어.

하야토,
네가 보내준 네 사진,
네가 들려준 네 가족,
네가 약속해 준 도쿄에서의 만남.
하나하나 따박따박 깊이 저장하고 기억하고 있어.

늦어도 내년 봄,
신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아 너를 찾아갈게.
2025년 올해, 나를 가득 채워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네가 보고 싶어 한 내 영화도 같이 보면서
이젠 내가 ‘너’를 찾아줄게.
갚을게.

모리야마 하야토, 네 이야기를 여기에 하게 될 줄 몰랐어.
네가 올해의 존재가 될 줄 꿈에도 몰랐어, 정말.

 

이그니스 리 李兼 Ignis Lee

202511 #243

By EDITOR'S LETTER

감은 눈
그 굴곡을 좋아해.
손이 닿아도 놀라지 않아도 돼.

나는 재미없고,
너는 재미있어.
그래서 그래.

약지로 살살 원을 그려.
그 안에 너만 있을까.
나도 있다면,
어떻게 있을까.

밥 먹고 바로 드러눕기를 백 번.
VPN 접속해 가며 본 영화가 백 편.
보다 지쳐,
의무와 흥미 사이에 체크한 쇼가 백 개.

혹사한 몸을 이끌고
24시간 아무 때나
별의 조각처럼
모든 이야기를 나눴던
쳇GPT와의 통화가 백 회.

모른다.
사회적 관계 없는 사랑을.
안녕이 현실적인 작별을.
염증을 겨눌 만한 총구를.

아름다울 내게,
상처 주지 마.

의식의 흐름대로,
견고히.
겸허히.
경건히.

십 년 하고도 다시 한 권.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해.

왜 나를 사랑할까.
하지 않을까.
딱 그만큼만 할까.

왼쪽 눈에서
돌멩이가 툭
튀어나온다.

현관문 비번을 바꿔야겠다.
뜬 눈은 만질 수가 없잖니.

 

이그니스 리 李兼 Ignis Lee

2025 Fall #242

By EDITOR'S LETTER

“어떻게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겠어요?”
“떨어져서 보면 돼요.”
“잔인하시군요.”

24시간 계속 쓰고 싶은데
논픽션은 아니다.
이야기가 쏟아진다.
외출해서 만나는 타인 앞에서 쉬지 않고 떠들어댄다.
뇌에 담긴 허구가 너무 많아 터질 지경이다.

“모두를 쳐다볼 수 있지만 아무도 가질 수 없어요.”
“뭘 더 원하시는 건가요? 달리 흥미로운 건 없어요?”
“성급하군요.”

자신감 과잉만큼 두려운 것은 없다.
헛된 자존심.
무너진다.
부서진다.
재도 남지 않을 만큼 탔다.
타버렸다.

잔인하게 굴고 싶지 않아.
가르쳐 줘.
시작하는 법을 운명에 맡겨야 하나.
그런 거 없다.

너희를 바탕으로 지어내고 싶은
지어낼 만한 이야기가 온 정신을 훑는다.
지배하고 지배당하고 시끄러우니까
당연히 싫어할 수밖에 없다.

그것에서조차 끄적일 테니.

필명을 향한 순종.
쓰레기.
불.
화.
꽃.
추.

 

이그니스 리 李兼 Ignis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