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집요하다.

풀잎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던 사람.
초여름 냄새는 이렇게 다르다고 알려 준 사람.
열 살의 나는 오래 기다렸고,
기다리는 법 대신 사라지는 법을 배웠다.

떠난 것들은 몸에 남는다.
그게 전부였다.
다행이다.

모른다는 게 무섭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다쳤다는 건 안다.

의지였는지,
우연이었는지.
누구 덕인지, 탓인지.
희미해지고
사라진다.

아이가 됐다가
학생이 됐다가
어른이 됐다가.
응원했다가
놓았다가
미련했다가.

이름을 지운다.

호메옹,
지워서 빚은 그릇.

도망이 아니다.
담기지 않을 때
새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그걸 통과라고 부른다.

나를 썰어낸다.
슬라이스처럼, 먼지처럼.
균열 사이로만 빛이 든다.

열 살의 아이를 기다린다.
풀 이름을
초여름 냄새를
사라지지 않고
또박또박 말해 주려고
입술을 폈다 오므린다.

어제 일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호명
李浩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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