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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202504 #232

By EDITOR'S LETTER

2000년대 초반, 패션위크의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여전히 패션 미디어에 종사하는 선배도 즐비하겠지만, 나름 20년 넘게 패션위크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소회를 말하자면 그렇다. SNS는 고사하고 휴대폰 기능에서 무엇보다 차이가 컸다. 사진가 없이는 무엇을 찍고 기록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패션위크는 오로지 패션 매거진의 지면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말 그대로 프레스, 바이어 등을 비롯한 우리만의 리그였다. 특히나 인종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그 배려나 포용성에서 확연히 달랐다.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패션 본고장을 자부하는 서양인과 아시아에서는 오로지 일본 정도만 패션위크의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중요한 프라이빗 이벤트에 초대됐다. 사진가나 비디오그래퍼만 기록할 수 있었던 백스테이지나 인터뷰 등 기삿거리도 주로 그들에게만 주어졌다. 2003년과 2004년 처음 간 밀란과 파리 패션위크에는 편집장, 기자를 포함해 우리나라 프레스는 고작 예닐곱 명에 불과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본지의 리프트를 받거나 쇼장에 몰린 인사들을 촬영하는 게 전부였다. 우리나라 연예인의 참석? 앰배서더? 이런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필자 주관적 의견으로 지드래곤과 태양이 참석한 파리 패션위크부터다. 물론 그전에 톱 배우 한두 명이 특정 브랜드의 초대를 받아 쇼에 참석하기는 했지만 지드래곤과 태양과는 좀 달랐다. 그들은 당시 하나의 쇼가 아닌 여러 개의 쇼를, 그 브랜드의 옷으로 갈아입은 채 참석했는데,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구름 같은 인파를 몰고 다녔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팬과 함께하는 패션위크. 그것도 한국 뮤지션이? 그들이 방문한 쇼 이후에 다른 나라 프레스가 내게 물은 것은 더 이상 ‘한국과 북한의 사이’가 아니었다. ‘지디와 태양을 섭외할 수 있느냐?’였다. 블랙핑크를 기점으로 이런 현상은 더욱 확장된다. 그 콧대 높은 브랜드의 광고모델로 등장하는 글로벌 앰배서더의 영역까지 열린 것. 코비드19 시기로 한동안 오프라인 공간이 닫혔다가 재개되면서 더욱 증폭된 우리나라 셀럽을 바라보는 전 세계 패션위크의 시선은 코리안 파워를 넘어 아시안 파워까지 몰고 왔다. 최근 패션위크 양상은 디지털 지표라는 결과를 동반하는데 한국, 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안 셀러브리티가 차트를 ‘말아먹는다’. 오늘날 서양 어느 지역을 가도 이른바 명품을 들고 다니는 이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오로지 아시아 혹은 중동이 명품 브랜드의 타깃 지역이라는 말은 더 이상 거짓이 아니다. 명품과 패션을 향한 2030세대의 시선과 철학이 바뀌었다. 패션위크 역시 마찬가지일 뻔했다. 파리이고, 밀란이고, 런던이고, 뉴욕이고 세간의 관심에서 사라질 뻔했다. 그나마 이만큼 디지털에서 패션위크라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안 셀러브리티의 영향력 덕분이다. 부정할 수 있겠는가. 더불어 패션계의 고질적 문제였던 인종차별의 벽도 깨부쉈다. 여전히 동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처참할 정도로 빈곤한 수준이지만, 아름다움을 보는 기준의 폭이 넓어지면서 아시안 프레스나 바이어의 위상이 달라졌다. 단순히 옷을 사주는 지역의 장사꾼이 아니라 콘텐츠를 제작하고 창조하는 제3의 프로덕션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한류를 비롯한 아시안 셀러브리티야말로 뉴 럭셔리이고, 패션위크의 미래다. 서양 셀러브리티가 아무리 패션위크에 간다고 해도 쉽지 않을, 팬들이 자발적으로 쇼장으로 모이고, 무료로 그들의 옷차림을 퍼 나르고 세상에 알리며 환호하는, 제대로 된 하이브리드 마네킹 역할에 동양인이 주인공인 시대가 드디어 도래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이상 지난밤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본 그대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

 

 

이겸
李兼
Guiom Lee

2025 Beauty #231

By EDITOR'S LETTER

어젠 울었어.
걱정하지는 마.
자지러지게 많이 웃기도 했으니까.
그러고 싶었어.
한 편 한 편의 살이가 슬픈지 웃긴지 비겁한지 유난스러운지.
속은 시원하니?
차라리 그랬으면 됐고, 넘어갈 수는 있겠고.
존재가 중요하다, 결국 그게 다라고 늘 목 놓아 외쳤는데
우주적 관점? 뭐 그렇게 생각해 보니까 아니더라고.
그저 현상에 불과한 거더라.
나도, 너도, 한낱 부질없다면 그렇게 부서지고 말.
그대의 나르시시즘을 응원해.
곱씹어 생각해 보니 그거야말로 숨 쉬는 이유의 전부일 수 있겠더라.
멀어서 좋아?
더 읽고 싶어?
더 쓸까, 말까.
그렇다면 실물을 남겨야 한다는 걸 명심해.
앞으론 그게 전부가 될 테니.
우리 최소, 우리 뒤까지도 자본주의 안에서 굴러갈 테니.
뭐라도 끄집어내.
무시는 찬밥에조차 하지 말고.
오늘도 울고 싶어.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예쁘게 화장한 채 너의 꿈에 나타났다는 너의 말,
무척이나 고마웠다는 걸 이제야 고백하며.
그래, E.T.처럼 웃진 않을 거야.

 

이겸
李兼
Guiom Lee

2025 Girl #230

By EDITOR'S LETTER

“신선한 육회덮밥 어떠세요?”
“목살구이에 볶은김치 얹어 드시면 어떠세요?”
“굴비에 녹차밥 어떠세요?”
“얼음 동동 띄운 동치미국수 어떠세요?”
“미나리 된장찌개에 보리밥 비빔정식은 어떠세요?”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일주일에 두세 번 의사를 타진한 뒤 음식을 보내는 것, 이걸 계속한 지 10년도 넘었다.

두 분 다 반응이 별로일 때는 나름 비장의 무기가 있다.
“장어구이 어떠세요? 양념 안 할 걸로요.”
그렇다.
늘 장어 앞에선 ‘답정 부모’다.
“그래, 그게 좋겠다” 한다.

마지노선이었다.
그분들께 내가 느끼는 고마움을 갚을 수 있는, 그 서비스의 한계치에서.

10대 후반 이후엔 같이 살지도 않고
결혼을 하지도 않고
자식이 있지도 않고
말을 듣지도 않고
1년에 한두 번밖에 만나지도 않고
평소 애교 부리지도 안부 연락도 않는
그런 자로서 할 수 있는.

이것도 중독인가 싶다.
요즘은 에서 가장 보람된 일 중 하나가 이것이니.

“던은 샌드위치를 좋아하니까 서브웨이 어때?”
“위시는 아샷추!”
“티싱은 자극적이지 않은 통닭!”
“소희는 공짜면 아무거나 잘 먹으니 족발이나 보쌈.”
“지웅은 오징어회면 충분.”
“루루는 살 빼야 하니까 외면.”

내 부모에게처럼 그 고마움을 향한 서비스 영역에서의 마지노선인지 모르겠으나
하여튼 요즘 나는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즐겁다.
심지어 그것을 잘 먹는 모습을 보면 아름답다 못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랄까.

“오늘 뭐 마실래? 뭐 먹을래?”

나의 주문 플러팅이 계속되기를.
그게 다이고, 또 그게 전부일 테니.
모두가 건강하다는,
그래도 안전하다는,
그리고 돌아간다는.

><;

 

이겸
李兼
Guiom Lee

202503 #229

By EDITOR'S LETTER

바라지 말라고.
그 무엇도,
그 누구에게도,
몇 번씩 다짐했던,
수천 번 들었던 이야기.

버리지 말라고.
그렇게 원하던 걸,
그나마 가졌던 걸,
그토록 바라던 걸,
수만 번 후회하며 반복했던 그 행위.

나한테 그러더라.
회피형 인간이라고.

어쩌다.
어찌하다.

봄이 온다네.
시처럼,
몽글하고,
므훗하게,
XX 온다네.

그런데 나도 하나만 물을 수 있을까?
그러는 그대는 허물이 없었소?
무엇 하나 박애까지는 아니더라도 포용할 의지는 있었소?
그렇게 정직하고 고되지 않으오?
마냥 천진하고 순진하게 세상에 긍정뿐이오?


지뿐이오.

막은 스스로 내릴 테니 재촉하지 마소, 고마.

끝.

 

이겸
李兼
Guiom Lee

202502 #228

By EDITOR'S LETTER

“5년 만이세요.”
기껏해야 2년 남짓 된 줄 알았는데,
미루고 미뤘던 아랫니 미니쉬 치료를 5년 만에 비로소 마쳤다.

 “저 사진은 뭐예요?”
5년 전 해당 치과에 첫 방문했을 당시 촬영한 내 사진에는 앞니가 빠져 있다.
영구처럼.
“기억 안 나세요?”
생각해 보니 그때 그랬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어느 순간 앞니가 빠져버려 신경치료 등을 하면서 도합 1년 여를 앞니가 없는 채로 지냈다.

숫자 앞에 초연한 삶이지만, 2025년 편집장으로 10년을 채우는 한 해가 시작됐다.
‘0’에서 시작해 1과 ‘0’이 되는,
돌고 돌아 다시 ‘0’, 간신히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그리고 다시 맞는 1, 뭔가 정신차리고 시작할 수 있는 기분이다.

모든 게 빠르다 못해 혼란스러운 요즘,
그중에서도 루머와 루머가 꼬리를 잇는 작금의 패션계에서
나와 같이 10년 차를 맞이한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는 어떤 기분일까?

 채워졌을까.
비워졌을까.
몽롱해졌을까.
아무 생각이 없을까.
작년 여름, 지금껏 최고의 컬렉션이 뭐냐며 되지도 않게 불쑥 던진 내 질문에 뎀나가 그랬다.
“다음의 것(Next one)”이라고.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할까.

 그럼에도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흐른다.
붙잡을 수가 없다.
딱 너처럼.

 의 시간에 20년이 넘게 유수의 패션 미디어를 거쳐온,
우리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 만큼의 충분한 품위를 지닌 방호광 부편집장이 합류했다.
뱅Bang이라는 이름으로.
올해 에디터 10년 차가 된다며 감히 뎀나와 나의 10/10 클럽에 합류하려는 총괄 디렉터 지웅은 뱅이 갱뱅Gangbang일까 묻는다.
그러면 어쩔 건데, 뭐.
나도 한때 ‘봄 리’였을 시절, 봄이 봄Bomb이 아니냐며 다들 놀려대곤 했는데 뭘.

“’이’ 해보세요. ‘이’.”
거울을 보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본다.
드디어 앞니, 아랫니 색이 하나로 맞춰진다.
주말이라고 특별히 만나자는 사람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하다.
진작 할걸.
진작 이럴걸.
진작 그랬다면, 그렇게 되진 않았을걸.

 

이겸
李兼
Guiom Lee

202501 #227

By EDITOR'S LETTER

시끄럽습니다.
머리와 가슴이,
육체와 영혼이,
무엇에도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나 자신을 탓하자.
절대 남 탓 하면 안 된다.

그런데 솔직히 이런 생각도 들어요.
남 탓만 하는 건 정말 못나고 비루한 거지만
남 탓을, 그러니까 내 탓도 해가면서 남 탓을 좀 해도 되는 건 아닌가.

아닌가요?
말까요?

정말 어떤 때는요.
네, 요즘 같은 때는요.
쉽지 않아요.
누군가를 믿기가,
뭐라도 터놓기가,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주기가.

어찌 여기에 속내를 다 뱉을 수 있겠어요.
나름 오피셜한 공간인데.
그 정도 상식은 있죠, 네.

2025년이라는데요,
사람이 무서워지는 게 얼마나 슬픈지 알아요?

2025년이라는데요,
나를 잃고 싶지 않아요.

그저 내년 이맘때도
이만큼 흔들리고 고통스러워도
딱 이만큼만 이길 바라요.
그럼 돼요.

+ <데이즈드> 디지털&피처 에디터 소희가 지난 12월 7일, <데이즈드> 인스타그램에 남긴 글을 한 번 더 첨부합니다.
다리 부상도 핑계고요. 제가 그 현장을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보다 더 잘 쓸 자신이 없는 까닭에서요.

알록달록 동의할 수 없는 밤이지만 국회 앞 광장은 그 어느 때보다 알록달록했습니다. 2024년의 응원봉은 촛불보다 좀 더 예쁘고 가볍고 그립감까지 있다고 하니 꽤 효용적인 아이템입니다. 뭐라도 좋으니 그걸 하나 갖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큰 디스플레이 너머로 우원식 국회의장이 묻습니다. “우리 국회법에도 114조의 2,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귀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 이런 조항의 국회법까지 있습니다. 이것마저 훼손되는 것이냐.” 이에 파다하게 흔들리는 가지각색 불빛만큼은 어느 당론에 속한 게 아닌 것 같아 괜스레 웃음이 났습니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누군가는 묻습니다. 그러고 싶어도 이름 하나하나 불러줄 수 없는 다수가 어떻게 나 한 사람만을 좋아할 수 있는지, 그 마음은 대체 뭔지. ‘그러게요…’라고 그 알 길 없는 마음을 같이 되새긴 날이 많습니다만 오늘 그 이유와 명분에 대해서는 가까이서 본 것 같습니다. 생활의 관성을 깨는 ‘힘’은 결국 사랑으로부터 나옵니다. 구태여 <사랑의 기술>의 한 문장을 응원처럼 꺼내고 싶습니다. “사랑은, 한 사람과 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태도다.” 시장의 논리, 세계의 권력, 눈앞의 비합리에 안전하기보다 모험적이길 선택한 이들은 오늘이 처음이 아닐 겁니다. 대담하고 곱고 애틋한 마음입니다. 매주 토요일 알록달록한 응원봉과 함께하는 거국적인 연말 콘서트가 여의도광장에서 벌어질 예정입니다. 좀 남다른 역사가 여기 쓰여지고 있습니다.

 

이겸
李兼
Guiom Lee

202412 #226

By EDITOR'S LETTER

꼴깍
숨이 넘어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일 맛있는 건
딸기잼에 버터 얹은 빵
버터 중에서도 더 맛있는 게 뭐가 있던데 그거까진 모르겠고
그냥 거기에 우유 한 모금

사는 게 헤어지는 거지
오늘의 나, 지금의 감정, 현재의 우리

슬며시

감춰
죽자고 헤어지는 건지

1965년쯤 뉴욕 부잣집에서 태어났다면?
갤러리 하는 엄마,
자동차 회사 사장 아빠,
그런데 노년에 막 어렵게 얻은 자식이라
내 맘대로 살아도 되는,
다 서포트해 주는,
그런 거

겉,
숫자,
그런 게 다예요, 여러분!

아무리 표현하고 이야기해 봤자
말이 안 통하는데 뭐 어쩔
심금을 울리지 못하는데 뭐 어쩔
지 생각만 해대는데 뭐 어쩔
어차피 나가떨어져 난 희생만 했네 할 텐데 뭐 어쩔

아, 솥 밥 먹고 어금니 어딘가에 낀 누룽지

평범하다 그릇
주제넘다 욕심

우린 XX병 이러잖아
쟤넨 XX Bug 이런댄다

다 같긴 뭐가?
되도 않는···
버터 그릇에 코 박고 1965년에서 60년 더해서 숨이나 깔딱대

쫑표 좀 갖다줘
혹은
.

잘해 먹겠네

꼴깍

이겸
李兼
Guiom Lee

202411 #225

By EDITOR'S LETTER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해.
변하고 달라져 사랑해.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해 사랑해.
경계나 편견 따위 없어져 사랑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돼 사랑해.
스스로를 사랑해 사랑해.
용서해 줘 배려해 줘 사랑해.

족해.
설레.
떨려.

보고 싶어.
보태고 싶어.
보드랍고 싶어.

살랑살랑
할랑 말랑
닿을랑 말랑

잠을 잤어?
밥을 먹었어?
아깐 무얼 했어?

못 자.
못 먹어.
못 해, 아무것도.

사랑하는 사람이라 사랑해.

알까?
알려나?
알겠지

이겸
李兼
Guiom Lee

202410 #224

By EDITOR'S LETTER

소희가 머리를 잘랐다.
근사했다.
그 어떤 헤어스타일보다 잘 어울렸다.

대놓고 부러웠다.
나보다 훨씬 짧았는데
그럼에도,
(예쁘단 말 정말 별로지만)
예뻤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표현이다.
하찮은 내 관점이지만.

머리를 기르고 왁싱을 하고 다음 네일 예약을 기다리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피부과로 달려가고
헤아릴 수 없는 시술과 넘쳐나는 메이크업 제품을 더해
원피스와 스커트로 치장하기 분주한
내가,
내게,

“넌 여자가 되고 싶은 거야?”
이런 단조로운 질문에는 딱히 할 말이 없다.

“네가 예뻐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런 순진한 비아냥 따위에도 답할 마음이 없다.

“너는 왜 그런 거야?”

알까?
말한다면?
설명한다면?

아니야.

이게 그런다고 뭔가, 네가, 누군가가 납득이, 설명이, 공감이, 이해가 되는,
될 수 있는 그런 일이거나 상황이거나 현상이라도 되는, 될 수 있는,
되거나 할 수 있는 그런 걸까?

아니야.

흐흐.

왜 웃어요?

우리, 가위바위보를 해요.
전 지더라도 가위가 그리 좋아요.

크크.

왜 웃어요?
X여워서요.
네?
X여워서요!

‘귀’인지 ‘가’인지, ‘가’인지 ‘귀’인지.
헷갈려요.
잘 안 들려요.
차라리 이게 나은가 싶어요.

소희가 머리를 잘랐다.
나는 머리를 묶었다.

 

이겸
李兼
Guiom Lee

202410 #223

By EDITOR'S LETTER

술을 멈췄어요.
담배도 피우지 않아요.

한 90일 됐으니까
완전한 것은,
완전한 것은 없다지만,
그래서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요.

저를 아는 인간은, 사람들은
믿지 않을 일이에요.
잠깐이라고 여길 일이에요.
응당히,
그만큼,
중독됐(었)으니까요.

다리를 다쳐서죠.

꽤 빨리 걷는 편이었어요.
뛰는 것도 좋아했어요.
농구든 뭐든.
못해도.

지금 다리는 제 다리 같지 않아요.
로봇 같아요.
통증도 멈추지 않아요.

상상해 봐요.
제대로 걷고,
힐은 바라지도 않아요.
조금이라도 뛰고,
운동을 하겠단 건 아니에요.
그럴 날, 그럴 때, 그럴 순간.

아득해요.
과거에 제대로 걸었는지 물어보고 확인할 정도,
기억이 안 날 정도,
까마득해요.

못 자던 잠을 대낮까지 자요.
발작도, 수면 무호흡도 줄고 잠버릇도 개선됐어요.
이야기하다 보면 얼굴에 경련이 오곤 했는데 다 사라졌어요.
특히 술과 담배 없이 나누는 대화와 시간이 주는 유의미함,
긴장감과 지루함 없이 상대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다는 것,
뜨겁고 남다르게 다가와요.

그런데 대체 왜 끊었냐고요?
그런데 다리 다친 것과 술, 담배가 무슨 상관이냐고요?

싫어서
버리려고
싫다는 거
버리라는 거

가을이 길었으면.

내일 파리로 가요.
술과 담배 없이 가는 첫 파리.

이대로가 길었으면.

술을 멈췄어요.
담배도 피우지 않아요.

이제
잘하면


이상
싫어하지
않을

있게
될지도
몰라요.
마지막
기회예요.

 

이겸
李兼
Guiom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