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구 반포, 한신아파트에 살던 외숙모가 어떤 존재였냐면요.
요즘 말로 딱 세련이랄까. 특유의 여유로움, 넉넉함, 온화함, 신뢰감.
그 외숙모가 깎아주는 복숭아의 맛은 뭐가 달라도 달랐고, 그 집에 있는 장난감 하나하나의 때깔도 남달랐더랬죠.
그런 외숙모가 어느 날 어머니에게 그럽디다. “아는 분에게 물어보니 애 이름이 좀 아니랍니다. 승훈이라고 부르면 좋대요.”
당시 외숙모는 그런 기운과 관련한 네트워크에 분명 일가견이 있으셨죠.
아니 그게 아니라도 무슨 이야기를 해도 믿음이 가던 외숙모의 말 한마디였으니 보통 충격이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들은 이야기지만 30년이 지난 오늘도 그 음성, 발음, 공기의 톤까지 똑똑하게 기억날 정도로 강렬했어요.
네, 제 인생을 바꿔놓은 순간 중 하나였으니까요. 그렇게 그 시절의 몇 년간 제 일기장을 살펴보면 표지에 적힌 ‘이승훈’이란 이름을 지금도 발견할 수 있죠.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잠시 잊고 있던 이름에 대한 트라우마는 성장하면서 외숙모 이야기의 진실을 좇는 저만의 탐구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막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던 시기, 몇몇 용하다는 분을 통해 여러 성명학적 논리에 의해 이름을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더욱 구체적인 사유와 함께 알게 되었죠.
특히 제 이름 가운데 글자인 솥귀 ‘현鉉’은 솥뚜껑이나 화살촉을 뜻하는데, 이름을 알릴 수도 있으나 구설에도 자주 오르는 풀이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누군가 제 이름을 부르면 마치 제 심장을 화살촉으로 후벼 파는 느낌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어머니 성씨를 더해 ‘이서현범’으로 명함을 파거나 영어 이름에서 현을 빼고 표기한 것도 다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행위였죠.
제게 개명은 늘 머리 한쪽에 남아 있는 숙제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 달여 전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인터넷 성명학 사이트에 접속하기 전까지는요.
3000원을 결제하고 제 이름 풀이를 보는데, 첫 줄에서부터 바로 이름을 바꾸라는 권유를 하더라고요.
그다음 구절은 줄줄이 어찌나…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마냥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머지 삶은 내 이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개명을 위해 찾은 성명학 전문가 중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이름을 바꾼다는 게 과거 이름의 제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돌려 다른 부분까지도 볼 수 있게 하는 거라고요.
삶을 더욱 폭넓게 바라볼 수 있다고요.
고심 끝에, 이겸이 됐습니다.
가운데에 무조건 ‘ㄱ’을 넣어야 한다는 한 선생의 조언이 좋았습니다.
마침 한 달여 전 존경하는 의 신광호 편집장이 제게 ‘A’라는 이니셜이 박힌 목걸이를 선물하시면서 더한 말이 떠오르더군요.
“네 이름엔 알파벳 ‘A’가 없더라고.”
맞아요. 전 ‘ㄱ’도, ‘A’도 없는 심지어 좋아하는 숫자도 ‘2’였던 그런 삶을 살았을 수도요.
오랜만에 부모님과 여동생 가족이 사는 세종시를 찾았습니다.
“겸아.”
그간 제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어머니가 가장 먼저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아버지도 기분 좋으시고요.
겸할 ‘겸兼’이란 한자 뜻처럼 포용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영어로는 Guiom이란 철자를 써서 표기하기로 했습니다.
많이 불러주세요.
저도 제 이름을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Call me by my name.
For the personal reason, I officially changed my name from Hyunbum(Bom) Lee to Guiom Lee.
Call me by my new name. Thanks.
이겸
李兼
Guiom 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