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움직이기 싫은 나날이다. 끔찍한 게 무엇인지 실로 체감하는 매일이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배울 것이 있다더니 몇 가지는 늘었다. 청결 습관과 배달 앱 능수능란하게 사용하기가 표면적
성장이라면, 정신적 성장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오프라인으로 만날 사람에 대한
가치를 묻게 된 것. 예전 같으면 돌아오는 토요일 저녁 식사 상대나 생일 파티 초대자 정도 돼야
고민하던 것을 매 순간 하고 산다. ‘이 사람, 굳이 오프라인에서도 만나야 해? 마스크 쓰고
위험 부담 감수하면서까지, 그럴 가치 있어?’ 피로는 쌓이고 기준은 못 찾았다. 말만 뻔질나게
했지 여전히 닥치는 대로다. 그래도 생각한다는 게 어디인가.
언젠가는 정교하고 현명한 기능을 갖춘 ‘만남 가치 필터’ 같은 게 장착되겠지.

2. 휴대폰만 보고 사는 멍청한 삶에서 유일한 안식처는 다름 아닌 이곳이다. 종이. 확실히
마음이 놓인다. 덜 쫓기는 기분이다. 좀 잘못 해도 까짓것, 용서받을 기분이다. 종이는 단칼에
무 자르듯 사람을 내치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어떤 일부만 보고 그 나머지마저 막 유추해
결정짓지 않을 거다. 그래서 좀 뻘짓거리할 요량으로 대충 좀 내용도 없는 글을 쓰면 또 어떤가.
종이가 안아준다면 그게 산문이고 수필이며 문학이 될지도 모른다.

3. 행복 중 하나가 휴대폰 메모장에 끄적거린 글을 컴퓨터 워드 파일에 옮겨 적는 행위다.
복사해서 붙여 넣어도 되지만 나는 그것을 키보드로 쳐서 옮겨 담는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치다 보면 마치 뇌와 심장이 한 번 더 작동하는 기분이다. 이런 글을 썼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데자뷔처럼 묘한 기시감마저 불러일으키는데, 꽤 중독성 있는
괜찮은 맛이다. 반대로 메모장에 쓴 내용이 별로 없을 때는 ‘최근 이리도 생각이 없었던가’
혹은 ‘뭐 하나 적을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온통 ‘숫자’만 생각하고 살았던가’, 안타깝다.

4. “너는 네 스스로 무덤을 파. 별것도 아닌데 늘 과장해서 생각해 더 아프고 더 외롭고 더
고통스럽게 만들어, 너 자신을.” 나는 과장된 생각을 한다. 일부러라도 최대한 더 극적으로 나
자신을 몰고 간다. “좀 적당히 가자. 좀 놓고 갈 건 놓고 가자.” 그럴 수 없다. 그것은 날 죽이는
것이다. 생각을 과장해서 하는 것이야말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는 현세에서 유일하게 나를
구원하는 방법이다.

5.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싫어하는 것은 통화하는 것.

6. 요즘 몇몇의 꿈에 내가 등장했다. 과일을 사놓고 사라지기도 하고, 가족 모임에 마치
가족인 양 참석해 활짝 웃었다고도 한다.
일련의 일들이 예사롭지 않게 전개되고 있음을 느낀다.

+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개명을 준비 중이다. 무사히 잘 마치게 된다면 ‘이현범’이란
이름으로는(저 밑의 사인 포함) 아마 이것이 마지막 글이 될 거다.
고마웠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