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세탁소 사장의 아내가 죽었다.

사장을 처음 만난 것은 약 1년 6개월 전이다. 그는 꽤나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저 원래 이런 서비스는 잘 안 해줍니다.”
바쁜 나는 세탁물 배달은 물론이고 카드 결제까지 원했다. 휴대용 카드 결제기가 없던 그는
결제를 위해 우리 집과 세탁소 사이를 한 번 더 왕복해야 했다. 고작이라면 고작, 걸어서 2~3분.
그의 가시 돋친 반응에 떨떠름했지만 이전에 이용하던 세탁소에서 세탁물 분실이나 오염 사고가 있었던 탓에 최대한 공손히 양해를 구했다.
서로 간 신경전이 사라지기까지는 채 두 달이 걸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세탁물은 여느 가정집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양이 많았고, 신용카드는 문제없이 잘 긁혔다. 긴 출장 탓에 세탁물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카드를 긁고 다시 오면서 세탁물을 두 번에 나눠
가져갈 수 있으니 용이한 면도 있었다. 물론 그의 세탁 솜씨는 예민한 나를 만족시키고 남을 정도로 뛰어났다.
하나 사장은 좀처럼 웃는 법이 없었다.

사장의 웃음을 처음 본 것은 약 한 달 전이다. 세탁소로 전화하면 통화가 안 되는 일이 왠지 모르게 잦아지자 사장에게 물었다.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그는 웃었다. “아, 좀 아픈 사람이 있어 가지고···.”
바로 십여 일 전, 그는 또 한 번 웃었다. 세탁물을 건네주려는 나를 붙잡고 “이번 건은 일주일 정도 걸릴 것 같은데 괜찮겠어요?” 했다.
“아직도 편찮으세요? 누구신데요?” 세탁소 사장과의 대화가 처음으로 두 마디 이상 이어진 순간이기도 했다.
“아, 안사람요. 병원에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서너 달 전부터 가끔씩 통화할 때 대신 받던,
그의 아내로 추측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사장 또한 세탁물 수거로 전화하면 병원이라고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그럼 몇 달 전부터 병원에 계셨던 게··· 걱정되네요. 건강이 제일 중요한데, 별일 없으실 겁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사장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옅게 웃었다.

사장이 세탁물과 함께 돌아오기로 한 날이 지난주 목요일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이상하리만큼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오전 10시, 세탁소 오픈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었다. “OO세탁소입니다. 현재 상중이어서 영업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금주 금요일부터 연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낯선 연결음, 나는 그날 오전, 전화를 끊고 한참 멍했다.
그의 아내가 명을 달리했다.
5000여 명의 전화번호부를 갖고 20여 년을 국내외 패션계에서 일한 나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지금의 내가 이토록 폐쇄적인 사회관계 속에서
살게 될지 예상하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한참을 뒤척였다. 그 어떤 죽음보다 강렬한 슬픔으로 다가온 이 죽음의 무게에 짓눌렸고,
애도의 심정과 정확히 궤를 같이하고 있는 처량하고 비통한 감정 앞에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무엇인가.
내 욕망의 근원은 무엇인가.
나는 사회적 인간인가.

나는 목이 터져라 소리내 울부짖으며 묻고 싶었고, 처절하고 또 처절하게 외로웠다.

아홉 살 무렵 아파트 가스통이 놓인 담장 위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왼쪽 귀에서 피가 흘렀다.
두세 시간, 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귀를 꽉꽉 눌러 지혈하며 생각했다. ‘고막이 찢어지고, 달팽이관이 날아갔을 거야.
그래 이제부터 난 중심을 잡기 어려울 수 있고, 왼쪽과 오른쪽을 구별하기도 힘들 거야.
운전도 못할 거고, 비행기도 못 탈 거야. 난 누구보다 쉽게 어지러울 거야.’
그 몇 초의 독백은 현실이 되어 지난 30년간의 날 지배했다. 난 운전도 못하고 방향 감각도 없으며 비행기 타는 것을 극도로 혐오한다.
그렇게 정해진 거였다. 내 근원.

나의 근간은 바로 불안이다.

지금이 화요일 밤이니 세탁소 영업을 다시 시작한다는 금요일 오전까지 3일 남았다.
내 왼쪽 귀가 정말 문제가 있는지보다 몇 곱절은 더 중요한 그 순간이 곧 오고야 말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 관계가 몹시도 중요하다.
몹시도 큰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 사장은 분명 웃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