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듯 어린 시절 일기를 거르지 않고 썼다.
당시 일기를 관통하는 법칙이 하나 있었는데, 학년이 올라가고 선생님이 바뀌어도 늘 당부하신 것이 ‘오늘은’이란 말로 시작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예컨대 ‘오늘은 아무개를 만나 놀이동산에 갔다’고 시작하는 것은 이미 그날 일기이므로 의미 없는 중복에 불과하다는 말이었다.
난 규칙을 꽤나 잘 지키는 학생이었다.
행여라도 습관적으로 ‘오늘은’을 더하면 그 자국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지우고 또 지웠다.
기자를 시작하면서 편집장과 선배들 그리고 또 교정사에게 배운 것은 구어체와 문어체의 차이였다.
쉽게 말하면 말하는 대로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되게’다.
2003년 당시 ‘되게’가 표준어였는지 아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기자라면 ‘되게’보다는 ‘무척’이나 ‘매우’라는 부사를 쓰는 게 더 나은 표현이라고 배웠다.
나는 그 뒤로 내가 쓰는 기사는 물론이며 디렉터 이상이 된 이후에는 기자들의 원고에서 ‘되게’를 지우거나 다른 부사로 바꾸기에 급급했다.
그래, 난 규칙을 잘 지켰다.
지난달 문득 교정사가 검열을 마친 기사에서도 ‘되게’가 발견돼 담당 기자에게 물었다.
“’되게’란 표현은 좀 그렇지 않니?”
“아, 요즘 그런 게 어딨어요? 오히려 그렇게 말했으니 그렇게 전달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거죠.”
나는 그 기자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미래를 외치면서 과거에 사로잡힌 모순적이고도 처량한 선배를 향한 멸치 국물처럼 짭짜름하지도 냉랭하지도 않은 뭔가 싸한 그 눈빛.
그리고 ‘정말’ 어제, 문득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데 거의 모든 자막에서 ‘되게’란 낱말이 거침없이 마구 등장했다.
이런, 나는 그깟 ‘되게’도 못 이긴 채 입으로만 반항했던 건가.
이달 나는 전도연과 하현상을 만났다.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인터뷰하면서 깨달은 점은 둘 다 그 무엇을 위해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베테랑의 진가든 청년의 치기든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건 그들의 멋이었고 규칙이었으며 삶을 지탱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헛갈리고 있다.
규칙의 반대말이 꼰대인지, 타협의 반대말이 속물인지, 나의 반대말이 자유인지.
그래서 지금 나는 결론이 없다.
그저 아직까지는 이달도 모든 원고에서 ‘되게’를 지우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면서도 일기를 쓸 때 ‘오늘은’으로 시작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이 글을 정말 한 개인의 얇디얇은 가벼운 깨작거림으로 여기진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것이 현재의 내 근간을 흔들고, 미래의 나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 ‘무척(되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니까.
P.S
컨피덴셜confidential. 작년의 단어가 TMI; Too Much Information이었다면 올해는 컨피덴션이 아닐까요?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모두 다 공유해야 하는 현재 세상이 피곤하지는 않습니까?
진짜 말로만 컨피덴셜하지 말고 서로 좀 은밀하고 감춰서 보관할 만한 것은 가슴속에 묻고 지내는 게 어때요? 그게 보다 미래적인 휴머니즘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