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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202508 #238

By EDITOR'S LETTER

아침을 깨우는 것은 알람 소리가 아니다.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사 소음이다.
올 초부터 이어진 이 소음은 한 집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사전 양해를 구한 몇 집, 그러지 않은 집 등 여러 집이다.
참다 못해 관리 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언제까지죠?”
“8월 말까지라는데요, 아파트가 오래돼서 그래요. 다 공사하고 이사하려고 하니까요.”
친절하면서도 꽤나 여러 번 같은 답을 한 것처럼 기계적이기도 한 상대의 답에 내가 택할 수 있는 마무리는 별게 없었다.
“아, 네, 그렇죠. 그렇군요. 그렇겠네요.”
나 같아도,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도, 응당 공사를 하겠다, 싶다.
소음을 잠재우는 방법은 유튜브를 켜는 거다.
한창 뉴스 중독 시기라 도움이 되는 소음이다.
보지 않아도 누가 패널로 참여했는지, 무슨 심산으로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그 표정까지 보인다.
어? 비가 내리네. 창도 열었다.
빗소리는 꿀맛이다.
할라피뇨다.
잘 익은 배추김치다.
이쯤에서 다시 잠을 청한다.
어렵지 않다.
두렵지 않다.
비까지 온다니까.
맛있게.
다시 날 깨우는 것은 허기다.
먹어야 할 약이 있다.
삼시 세끼 챙겨 먹으라는 의사의 권유가 있다.
이쯤에서는 일어나야 한다는 양심이 있다.
거실로 와 소파에 눕는다.
TV로 유튜브를 켠다.
음식을 주문한다.
마시던 물을 마신다.
생각한다.

패션과 스타일의 차이.
차별금지법.
AI.
저출산.
그 사람의 첫 쇼와 그 사람의 마지막 쇼.
어제 본 영화, 오늘 볼 영화.
그들이 내게 전화를 원하는 까닭과 내 입장.

수시로 배달 음식이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한다.

최선의 방어.
내 일의 내일.

까마득한 1999년 12월 31일의 밤.

“선생님,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요즘 얼굴에 자꾸 마비가 와서요.”

 

이겸
李兼
Guiom Lee 

202507 #237

By EDITOR'S LETTER

올해부터 고등학교에 문과, 이과가 통합됐다.
가슴이 따뜻한 의사, 논리적인 작가, 이런 수식어가 부질없이 들리는 것만큼이나 우린 때로 시스템 안에서 나뉨을 강요받는다.
“넌 문과적 인간이고, 난 이과적 인간이야. 그래서 우린 뭐가 달라도 달라.”
열다섯 살 시절 나눈 이런 대화처럼.

2년 전 패션, 뷰티, 피처, 디지털 등 기존 매거진의 업무 분담 시스템이
각자 지닌 고유의 성장과 개성, 역량에 한계를 둔다는 점에 반감이 들어 그 틀을 깨고 융합한 적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개념인 에토스Ethos, 로고스Logos, 파토스Pathos로 팀을 나눠
패션과 뷰티, 디지털과 인터내셔널, 피처와 패션 등 역할의 폭을 합치고 넓혔다.
이 개편안을 공표하는 순간 팀명의 괴랄함만큼이나 <데이즈드> 팀원들의 표정은 괴랄했다.
업계는 난감해했고, 심드렁했다.
올봄, 2년 여간 실행한 이 실험을 철회했다.
스스로 지르고, 스스로 덮은 결정이었다.
여러 사정을 고려했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자라와 버렸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면 철회가 아닌 포기다.

면접 때 자주 묻던 질문이 있다.
고정관념이 있는가, 스스로 자신의 틀을 깼던 일탈이 있다면 무엇인가.
질문은 만족할 만한 답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때로는 예의이고, 때로는 시간을 채우기 위함이며, 또 때로는 나 자신에게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답이란 게 놀랍게도 그 당시 감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 0.1초 앞의 미래도 볼 수 없다.
고로 평등하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혹은 할 수밖에 없는 그 뜻, 법, 상식, 잣대, 시스템?
이것이 진정 우리를 보호한다고 생각하는가.
차별과 갈등, 혐오가 빚어낸 비인간의 시간, 인간에게 주어진 그 자격이란 것.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지 않을 방법은 이 정도다.
용서, 포용, 나로서는 동정.

자본주의에 목맨 무언의 자유가 치솟는다.
겁난다.
우린, 같다.
거기서 거기다.
귀엽고 가여워.

 

이겸
李兼
Guiom Lee 

2025 Girl #236

By EDITOR'S LETTER

엄마와 사이 좋은 사람이 좋아요.
속 터 놓을 친구를 둔 사람이 좋아요.
컴퓨터나 휴대폰을 잘 다루는 사람이 좋아요.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많은 호기심 있는 사람이 좋아요.
앞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좋아요.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좋아요.
같이 영화 볼 때 집중해 보는 사람이 좋아요.
그때, 결말을 미리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이 좋아요.
얌전히 운전하는 사람이 좋아요.
포용과 박애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이 좋아요.
흑과 백, 다수결 논리에만 꽂히지 않고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좋아요.
깊이는 몰라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조금이나마 관심 있는 사람이 좋아요.
밥 먹을 때 뭐라고 안 하는 사람이 좋아요.
단점이나 실수를 곱씹지 않는 사람이 좋아요.
눈을 마주치고 건배하는 사람이 좋아요.
공부하는 사람이 좋아요.
편견 없는 사람이 좋아요.
‘퀴어’라는 단어를 적재적소에 쓸 줄 아는 사람이 좋아요.
내 편인 사람이 좋아요.
안아주는 사람이 좋아요.
안기는 사람이 좋아요.

이 중 하나만이라도 돼요.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요?

 

이겸
李兼
Guiom Lee 

202506 #235

By EDITOR'S LETTER

계절에도 냄새가 있다.
여름은 특히 더하다.

 아시는 분?
맡으신 분?
궁금하신 분? 

요란한 형용사로 대체하지는 않겠다.
직접 맡아야 느낄 수 있는 거고
경험과 취향을 토대로 표현될 각자의 자유니까. 

그런 게 많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될 것들.
아무리 외쳐봐야 공허한 것들.
낱말들, 강조들, 감탄사들, 중언부언들.

 꿉꿉한데 향기롭고 슬프게 막 아린 거, 뭔지 알지? 

살을 부둥키고 백날 품어도 서로 마음이 같을 수 없단 거.
우리 이제 더 희망, 그 따위는 갖지 말자는 거. 

샛길로 새는 이유는 대상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재미있어요?

 그런데
그래서
그러므로

내 편이, 내 사람이, 내 사랑이
느는 것처럼
주는 것 같아요.
주는 것처럼
느는 것 같아요.
좋은 거 아닌 게 아닌 거 같아요.

 냄새가 난다.
여름이라 그런지 요새 특히 더.
맡고 싶다.

 

이겸
李兼
Guiom Lee 

202505 #234

By EDITOR'S LETTER

MOTH(ER) #1

나방이 무슨 죄야.

너를 뭐라고 부를지 많이 떠올렸어.
차마 말하지 못했지.

기묘한 동정심.
끝없는 불안.

너에게 나는 빈약한 기회.
나에게 너는 낭만적인 기적.

그런 표정 짓지 마.
그런 말 좀 그만해.

지옥이 따로 있는 게 아니지.
모든 가치의 부정.

 집착과 감시는 나비의 몫이지.
일거수일투족 보고는 너의 몫이지.

개의하거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데도
빛나는 죄악.
최후의 갈구.
죽음의 관조.

맞습니다.
떠나고 싶어 했습니다.

경탄과 가련.
무기력.
투쟁.

엄마, 나방이 보여.

그만하자고 그만해.

취한 나.

네가 좋아.
네가 좋다는 게 좋아.
네가 좋아하는 게 좋아.

취한 나.

나방이라도 되고 싶었어.
뭐로든 불러주길 원했어.

나방은 죄가 없어.

 

MOTH(ER) #2

눈을 떴더니 날개를 감추래요.
팔을 들었더니 코를 막으래요.
입을 벌렸더니 지퍼를 채우래요.

너를 향해 날아서
너의 페로몬을 맡고
우리의 관계를 확인하고 싶거늘

아무것도 하지 말래요.
사랑이라고 하지 말래요.

왜 한계를 두나요.
왜 이게 다라고 하나요.

나는 불이 난 방에 있고
너는 비가 오는 밖에 있어요.

나비보다 못한 게 뭐라고
나비를 위해선 자기 자신까지 내려놓기도 하면서
나비의 독은 왜 나보다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엄마는 아는데,
그 귀여운 걸 몰라줘요.

나는 만들어요.
만들고 말 거예요.

빛이 쏟아질 그날이 오면,
조그맣고 동그랗게 입술을 떼며 말하죠.

너에게
MOTH가 있어.

사랑이라고 하지 않을래요.
같잖게.

P.S 오랫동안 준비한 옷 가게 ‘MOTH’가 오는 5월 1월 성수동에 문을 열어요.
<데이즈드>의 17살 생일, 저도 17살 시절로 돌아가 그때 그 꿈을 꿔봅니다. 오세요.
<데이즈드> 책을 들고 오시면 더 좋게, 더 따뜻하게 해드릴게요.

 

이겸
李兼
Guiom Lee

2025 Spring #233

By EDITOR'S LETTER

봄이 잘 안 오네요.
잠은 잘 오네요.

사랑은 잘 안 오네요.
마감은 잘 오네요.

만족은 잘 안 오네요.
비만은 잘 오네요.

빈말이 허공을 가르는데
뇌리에 꽂힐 것이 아니었는데
마음은 왜 이리 연약한가요.
헐겁게.

발렌시아가에서 10년을 일하고 구찌로 향하는 뎀나와
로에베에서의 11년을 정리하고 새 출발을 시작하는 조나단 앤더슨의
첫 반응을 기억해요.

뭐지? 누구지? 왜 이리 파격적인 선택을 하지? 대체 뭘 믿고?

기다려줘야 해요.
한 달, 1년, 3년···.
고작이에요.
이 정도로는 몰라요.

뭐 그리 다 급하고 빨라요?
선택도 결정도 비난도.
착각할 수도 있잖아요.
오해였을 수도 있고요.

한 번 넘어졌다고 비아냥대는 것이 다 뭐예요?
꼬투리 좀 잡았다고 뭐든 다 싸잡아서 절벽 끝으로 몰아 남는 게 다 뭐예요?

뻥, 튀겨서
빵, 부풀리고
펑, 터뜨려서
퍽, 때리면
픽, 찢어져요.

봄이 쉽게 올리가요.
행여, 혹여, 왔다 쳐도 오래 머물리가요.

순수해서 아파서 불쌍해서 그래요, 봄이.
다 보고 느끼고 알아서 그래요, 봄이.
속이지 못해요, 봄이.

 

이겸
李兼
Guiom Lee

202504 #232

By EDITOR'S LETTER

2000년대 초반, 패션위크의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여전히 패션 미디어에 종사하는 선배도 즐비하겠지만, 나름 20년 넘게 패션위크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소회를 말하자면 그렇다. SNS는 고사하고 휴대폰 기능에서 무엇보다 차이가 컸다. 사진가 없이는 무엇을 찍고 기록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패션위크는 오로지 패션 매거진의 지면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말 그대로 프레스, 바이어 등을 비롯한 우리만의 리그였다. 특히나 인종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그 배려나 포용성에서 확연히 달랐다.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패션 본고장을 자부하는 서양인과 아시아에서는 오로지 일본 정도만 패션위크의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중요한 프라이빗 이벤트에 초대됐다. 사진가나 비디오그래퍼만 기록할 수 있었던 백스테이지나 인터뷰 등 기삿거리도 주로 그들에게만 주어졌다. 2003년과 2004년 처음 간 밀란과 파리 패션위크에는 편집장, 기자를 포함해 우리나라 프레스는 고작 예닐곱 명에 불과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본지의 리프트를 받거나 쇼장에 몰린 인사들을 촬영하는 게 전부였다. 우리나라 연예인의 참석? 앰배서더? 이런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필자 주관적 의견으로 지드래곤과 태양이 참석한 파리 패션위크부터다. 물론 그전에 톱 배우 한두 명이 특정 브랜드의 초대를 받아 쇼에 참석하기는 했지만 지드래곤과 태양과는 좀 달랐다. 그들은 당시 하나의 쇼가 아닌 여러 개의 쇼를, 그 브랜드의 옷으로 갈아입은 채 참석했는데,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구름 같은 인파를 몰고 다녔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팬과 함께하는 패션위크. 그것도 한국 뮤지션이? 그들이 방문한 쇼 이후에 다른 나라 프레스가 내게 물은 것은 더 이상 ‘한국과 북한의 사이’가 아니었다. ‘지디와 태양을 섭외할 수 있느냐?’였다. 블랙핑크를 기점으로 이런 현상은 더욱 확장된다. 그 콧대 높은 브랜드의 광고모델로 등장하는 글로벌 앰배서더의 영역까지 열린 것. 코비드19 시기로 한동안 오프라인 공간이 닫혔다가 재개되면서 더욱 증폭된 우리나라 셀럽을 바라보는 전 세계 패션위크의 시선은 코리안 파워를 넘어 아시안 파워까지 몰고 왔다. 최근 패션위크 양상은 디지털 지표라는 결과를 동반하는데 한국, 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안 셀러브리티가 차트를 ‘말아먹는다’. 오늘날 서양 어느 지역을 가도 이른바 명품을 들고 다니는 이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오로지 아시아 혹은 중동이 명품 브랜드의 타깃 지역이라는 말은 더 이상 거짓이 아니다. 명품과 패션을 향한 2030세대의 시선과 철학이 바뀌었다. 패션위크 역시 마찬가지일 뻔했다. 파리이고, 밀란이고, 런던이고, 뉴욕이고 세간의 관심에서 사라질 뻔했다. 그나마 이만큼 디지털에서 패션위크라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안 셀러브리티의 영향력 덕분이다. 부정할 수 있겠는가. 더불어 패션계의 고질적 문제였던 인종차별의 벽도 깨부쉈다. 여전히 동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처참할 정도로 빈곤한 수준이지만, 아름다움을 보는 기준의 폭이 넓어지면서 아시안 프레스나 바이어의 위상이 달라졌다. 단순히 옷을 사주는 지역의 장사꾼이 아니라 콘텐츠를 제작하고 창조하는 제3의 프로덕션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한류를 비롯한 아시안 셀러브리티야말로 뉴 럭셔리이고, 패션위크의 미래다. 서양 셀러브리티가 아무리 패션위크에 간다고 해도 쉽지 않을, 팬들이 자발적으로 쇼장으로 모이고, 무료로 그들의 옷차림을 퍼 나르고 세상에 알리며 환호하는, 제대로 된 하이브리드 마네킹 역할에 동양인이 주인공인 시대가 드디어 도래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이상 지난밤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본 그대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

 

 

이겸
李兼
Guiom Lee

2025 Beauty #231

By EDITOR'S LETTER

어젠 울었어.
걱정하지는 마.
자지러지게 많이 웃기도 했으니까.
그러고 싶었어.
한 편 한 편의 살이가 슬픈지 웃긴지 비겁한지 유난스러운지.
속은 시원하니?
차라리 그랬으면 됐고, 넘어갈 수는 있겠고.
존재가 중요하다, 결국 그게 다라고 늘 목 놓아 외쳤는데
우주적 관점? 뭐 그렇게 생각해 보니까 아니더라고.
그저 현상에 불과한 거더라.
나도, 너도, 한낱 부질없다면 그렇게 부서지고 말.
그대의 나르시시즘을 응원해.
곱씹어 생각해 보니 그거야말로 숨 쉬는 이유의 전부일 수 있겠더라.
멀어서 좋아?
더 읽고 싶어?
더 쓸까, 말까.
그렇다면 실물을 남겨야 한다는 걸 명심해.
앞으론 그게 전부가 될 테니.
우리 최소, 우리 뒤까지도 자본주의 안에서 굴러갈 테니.
뭐라도 끄집어내.
무시는 찬밥에조차 하지 말고.
오늘도 울고 싶어.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예쁘게 화장한 채 너의 꿈에 나타났다는 너의 말,
무척이나 고마웠다는 걸 이제야 고백하며.
그래, E.T.처럼 웃진 않을 거야.

 

이겸
李兼
Guiom Lee

2025 Girl #230

By EDITOR'S LETTER

“신선한 육회덮밥 어떠세요?”
“목살구이에 볶은김치 얹어 드시면 어떠세요?”
“굴비에 녹차밥 어떠세요?”
“얼음 동동 띄운 동치미국수 어떠세요?”
“미나리 된장찌개에 보리밥 비빔정식은 어떠세요?”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일주일에 두세 번 의사를 타진한 뒤 음식을 보내는 것, 이걸 계속한 지 10년도 넘었다.

두 분 다 반응이 별로일 때는 나름 비장의 무기가 있다.
“장어구이 어떠세요? 양념 안 할 걸로요.”
그렇다.
늘 장어 앞에선 ‘답정 부모’다.
“그래, 그게 좋겠다” 한다.

마지노선이었다.
그분들께 내가 느끼는 고마움을 갚을 수 있는, 그 서비스의 한계치에서.

10대 후반 이후엔 같이 살지도 않고
결혼을 하지도 않고
자식이 있지도 않고
말을 듣지도 않고
1년에 한두 번밖에 만나지도 않고
평소 애교 부리지도 안부 연락도 않는
그런 자로서 할 수 있는.

이것도 중독인가 싶다.
요즘은 에서 가장 보람된 일 중 하나가 이것이니.

“던은 샌드위치를 좋아하니까 서브웨이 어때?”
“위시는 아샷추!”
“티싱은 자극적이지 않은 통닭!”
“소희는 공짜면 아무거나 잘 먹으니 족발이나 보쌈.”
“지웅은 오징어회면 충분.”
“루루는 살 빼야 하니까 외면.”

내 부모에게처럼 그 고마움을 향한 서비스 영역에서의 마지노선인지 모르겠으나
하여튼 요즘 나는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즐겁다.
심지어 그것을 잘 먹는 모습을 보면 아름답다 못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랄까.

“오늘 뭐 마실래? 뭐 먹을래?”

나의 주문 플러팅이 계속되기를.
그게 다이고, 또 그게 전부일 테니.
모두가 건강하다는,
그래도 안전하다는,
그리고 돌아간다는.

><;

 

이겸
李兼
Guiom Lee

202503 #229

By EDITOR'S LETTER

바라지 말라고.
그 무엇도,
그 누구에게도,
몇 번씩 다짐했던,
수천 번 들었던 이야기.

버리지 말라고.
그렇게 원하던 걸,
그나마 가졌던 걸,
그토록 바라던 걸,
수만 번 후회하며 반복했던 그 행위.

나한테 그러더라.
회피형 인간이라고.

어쩌다.
어찌하다.

봄이 온다네.
시처럼,
몽글하고,
므훗하게,
XX 온다네.

그런데 나도 하나만 물을 수 있을까?
그러는 그대는 허물이 없었소?
무엇 하나 박애까지는 아니더라도 포용할 의지는 있었소?
그렇게 정직하고 고되지 않으오?
마냥 천진하고 순진하게 세상에 긍정뿐이오?


지뿐이오.

막은 스스로 내릴 테니 재촉하지 마소, 고마.

끝.

 

이겸
李兼
Guiom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