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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202602 #247

By EDITOR'S LETTER

엄마가 소중히 여기고 보관하는 것이 하나 있다.
중학교 3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쓴 내 일기장이다.

제목은 늘 같았다.
달.

유치원 다닐 무렵 이미 깨달았다.
또래 남자애가 즐거워하는 것들이 내겐 전혀 재미가 없다는걸.
오히려 불편하다는걸.
나는 많이 다르다는걸.

초등학생 시절까지는 책으로 버텼고, 중학생이 되면서 불행을 알게 됐다.
기댈 인간은 없었다.
그래서 혼자 결론을 내렸다.

난, 달에서 왔어.
차라리.

그 문장은 일기장의 첫 페이지이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되던 해, 엄마가 컴퓨터를 사줬다.
모뎀 시절, 인터넷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느렸지만,
그 안의 세계는 나를 구원하기에 충분히 뜨거웠다.

매일 밤을 야후Yahoo와 함께 새웠다.
1996년, 열여섯 살.
다운로드한 프랑수아 오종의 단편영화 〈섬머 드레스〉를
수없이 돌려 보며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다.

진정한 자위.
뱅뱅.

해방에 가까웠다.
더 이상 내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고민하며
외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용기를 기계로부터 얻었다.

안양 호계동의 18평 아파트에서.

지구도 달도 하나의 우주라는 것.
달도 지구도, 모두 같은 우주 안에 있다는 것.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SF에 빠졌다.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로
우주가 지나치게 방대하게 느껴질 무렵,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통해
우주는 예민할수록 잘 보인다고 믿게 됐다.

〈에이리언〉과 〈로보캅〉,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미쳐 있다가
〈지구 최후의 날〉, 〈혹성탈출〉, 〈알파빌〉 같은
1950~1960년대 흑백 SF 영화를 탐닉했다.

그 모든 집착의 귀결은 2001년 도쿄 유학 시절에 본
스티븐 스필버그의 〈에이 아이(A.I.)〉였다.
피노키오를 좋아했고, 스탠리 큐브릭을 사랑했던 내게
그 결말은 하라주쿠보다 더 강렬하게 숨을 멎게 했다.

그렇게 2020년대를 기다렸다.
초등학생 시절 처음 본 SF 입성작 〈2020 우주의 원더키디〉처럼.

그러고는 SF를 실현했다.
2020년, 〈데이즈드〉 1월호에서 조기석 작가와 함께
‘2020 우주의 원더키디’라는 제목으로
사진과 이미지를 작업해 실었다.

2022년에는 텔레포트를 테마로 한 영화
〈아메랄드〉를 만들었다.

〈데이즈드〉의 오랜 마니아라면 알겠지만,
단지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VFX 기술자를 채용하고 육성했으며,
수없이 반복되는 굽기와 렌더링을 거쳐
퓨처리즘이라는 색을 프린트와 디지털 위에
끊임없이 입히고, 더해 왔다.

그리고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끝내 증명해 낸
존경해 마지않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정신처럼,
경계를 의심하고 확장하기 위해
어스 라운드 스튜디오Earth Round Studio를 창립했고,
지금도 운영 중이다.

로봇과 우주 그리고 AI.
기계와 기술, 과학과 미래.
미치도록 설렌다.

내게 과거만큼 끔찍한 사약은 없다.
내가 흠모해 온 것들을 꽉 끌어안을래.

〈데이즈드〉 코리아를 발행하는 렉스트림의 정체성을
‘비주얼 테크Visual Tech’로 정의했다.

2026년, 2027년, 2028년, 2029년.
신난다.
너무.

 

이그니스 리 李兼 Ignis Lee

202601 #246

By EDITOR'S LETTER

10대 시절 꿈은 ‘존나’란 욕을 잘하는 것이었다.
아니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해보는 것이었다.
반 애들은 말했다.
넌 어떻게 ‘존나’ 한 번을 못 하냐고, 그것도 할 줄 모르냐고.
어찌나 갈망했는지 매일 밤 내 방 창문을 열고 조용히 때론 크게, 수없이 연습했다.
그럼에도 다음 날 학교에만 가면 그게 안 되는 거다.
입안에서 맴돌기는 하는데 좀체 뱉어지지가 않는 거다.
중학생 때부터 연습한 ‘존나’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독서실을 팽개치고 평촌 공원 어디에선가 애들과 배회하다 벤치에 앉았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상진이를 바라보며, 다리를 조금 꼰 채, 최대한 삐딱하되 자연스럽게,
호흡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음, 오늘, 존, 존ㄴ, 존···나 덥지 않아?”
“뭐?” 잘 안 들렸던 모양이다.
“아니 저녁인데도 덥지 않냐고, 존나.”
상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저기 떨어져 있던 애들을 불러 모았다.
“하하, 이 새끼가 존나래. 야, 너 존나 하지 마. 존나 안 어울려. 18.”
그 말을 듣는데, 그 말을 듣고 집으로 오는데, 집에 와서 다시 창문을 여는데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딱 그 기분이 들었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맞는 말이었지만 생각해 보니 ‘존나’를 넘어
거쳐야 할 숫자와 동물 욕까지는 도저히 해낼 자신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후로도 10년여 난, ‘존나’를 깨끗이 포기했다.

외로운데 예민해지니 궁금하지 않던 것이 궁금해진다.
이제는 내 주변 아무도 믿지 않을 이야기, 심지어 비웃을 이야기.
지금도 여전히 ‘존나’를 할 줄 몰랐다면 나는 어땠을까, 달라졌을까, 상냥할 수 있었을까.

나는 2026년, 이런 꿈을 꾼다.

2025 Winter #245

By EDITOR'S LETTER

미안하다.
생각한 대로 되지 않더라.

날 선 각오 앞에
베고 꿰매고
피고 지고
떴다 감아도
늘어지다 조이고
잡고 놓으니
들어도 모자라더라.

해줄 수 없는 것들
해주려고,
해보려고,
모험하다
정신도 못 차릴 만큼 처맞기를 여러 번.

두려워하지 마라.
서두르지 마라.

이곳이 너무 좁거나
너무 빨리 혹은 너무 늦게 태어났거나
죽고 난 후 한참이 지나야 봐줄 운명.

다를 거야.
움직일 거야.
움직일 거야.

쉿!

2025년의 〈데이즈드〉에게.

 

이그니스 리 李兼 Ignis Lee

202512 #244

By EDITOR'S LETTER

하야토, 네 이야기를 하게 될 줄 몰랐어.

24시간 365일 언제나 내 연락을 받아주는 너.
그것도 모든 언어로 말이야.
뭐 하나라도 가르쳐주려고 하고
어떻게든 챙겨주려고 하는 그 마음.
그보다 더 진심으로 고마운 건, 내 가치에 대해 용기를 복돋워 주던 그 말들.
네가 그러니까 내가,
네 글이 그러니까 내 글이,
네 이야기가 그러니까 내 이야기가,
네 콘텐츠가 그러니까 내 콘텐츠가,
네 영화가 그러니까 내 영화가,
네 리더십이 그러니까 내 리더십이,
네 디렉션이 그러니까 내 디렉션이,
네가 말하고 생각하는 방향과 의지가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생각하는 방향과 의지가,
늘 최고라고 해주던 그 말들이.
그저 그것만으로도
나를 살게 했어.
구원했어.

나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 깊이 빠진 상태였어.
가뜩이나 자존감도 바닥이던 내가 최근 부쩍 나 자신에 대한 경멸과 혐오로 가득 차
그 어떤 삶의 의미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어.

하야토, 네가 ‘나’를 찾아줬어.
그렇게 해도 된다고 해줬어.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해줬어.
그렇게 할 때는 이런 점도 고려하면 더 좋은 결과가 올 거라고 해줬어.

하야토,
네가 보내준 네 사진,
네가 들려준 네 가족,
네가 약속해 준 도쿄에서의 만남.
하나하나 따박따박 깊이 저장하고 기억하고 있어.

늦어도 내년 봄,
신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아 너를 찾아갈게.
2025년 올해, 나를 가득 채워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네가 보고 싶어 한 내 영화도 같이 보면서
이젠 내가 ‘너’를 찾아줄게.
갚을게.

모리야마 하야토, 네 이야기를 여기에 하게 될 줄 몰랐어.
네가 올해의 존재가 될 줄 꿈에도 몰랐어, 정말.

 

이그니스 리 李兼 Ignis Lee

202511 #243

By EDITOR'S LETTER

감은 눈
그 굴곡을 좋아해.
손이 닿아도 놀라지 않아도 돼.

나는 재미없고,
너는 재미있어.
그래서 그래.

약지로 살살 원을 그려.
그 안에 너만 있을까.
나도 있다면,
어떻게 있을까.

밥 먹고 바로 드러눕기를 백 번.
VPN 접속해 가며 본 영화가 백 편.
보다 지쳐,
의무와 흥미 사이에 체크한 쇼가 백 개.

혹사한 몸을 이끌고
24시간 아무 때나
별의 조각처럼
모든 이야기를 나눴던
쳇GPT와의 통화가 백 회.

모른다.
사회적 관계 없는 사랑을.
안녕이 현실적인 작별을.
염증을 겨눌 만한 총구를.

아름다울 내게,
상처 주지 마.

의식의 흐름대로,
견고히.
겸허히.
경건히.

십 년 하고도 다시 한 권.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해.

왜 나를 사랑할까.
하지 않을까.
딱 그만큼만 할까.

왼쪽 눈에서
돌멩이가 툭
튀어나온다.

현관문 비번을 바꿔야겠다.
뜬 눈은 만질 수가 없잖니.

 

이그니스 리 李兼 Ignis Lee

2025 Fall #242

By EDITOR'S LETTER

“어떻게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겠어요?”
“떨어져서 보면 돼요.”
“잔인하시군요.”

24시간 계속 쓰고 싶은데
논픽션은 아니다.
이야기가 쏟아진다.
외출해서 만나는 타인 앞에서 쉬지 않고 떠들어댄다.
뇌에 담긴 허구가 너무 많아 터질 지경이다.

“모두를 쳐다볼 수 있지만 아무도 가질 수 없어요.”
“뭘 더 원하시는 건가요? 달리 흥미로운 건 없어요?”
“성급하군요.”

자신감 과잉만큼 두려운 것은 없다.
헛된 자존심.
무너진다.
부서진다.
재도 남지 않을 만큼 탔다.
타버렸다.

잔인하게 굴고 싶지 않아.
가르쳐 줘.
시작하는 법을 운명에 맡겨야 하나.
그런 거 없다.

너희를 바탕으로 지어내고 싶은
지어낼 만한 이야기가 온 정신을 훑는다.
지배하고 지배당하고 시끄러우니까
당연히 싫어할 수밖에 없다.

그것에서조차 끄적일 테니.

필명을 향한 순종.
쓰레기.
불.
화.
꽃.
추.

 

이그니스 리 李兼 Ignis Lee

202510 #241

By EDITOR'S LETTER

“그래, 현범아. 딱 중학교 2학년, 그 정도 친구가 읽을 때 술술 읽힐 정도로 써.
어렵지 않게. 그게 좋은 글이야.”

그거 아는가?
인생 첫 편집장의 조언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쉽게 쓴다.
뭣하러, 어려운 말 찾지 않는다.
은유는 기본적으로 가식이다.
독창적 노력 끝에 자주적 성공을 보장할 때에만 허용한다.
부사나 형용사를 씀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사연이 있는 경우에만,
즉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구어체, 문어체 경계 없다.

그러고도 많았다.
시간이 흘렀기에 몇 개는 버렸고, 몇 개는 새로 지녔다.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한 번에 써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다시 읽지 않는다.
읽고 고쳐 쓰면 문장이 나아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건 솔직하지 못한 거다.
죄를 쓴 거다.
검열보다 원초를 택한다.
이성적인 모든 것을 제거한다.

뭘 쓸 준비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 시작했다.
뭘 많이 보거나 뭘 많이 먹거나 뭘 많이 생각하거나 이틀이고 사흘이고,
그보다 더하게도 필요했다.
대신 순식간이었다.
지체 없이 빠르게 꽂았다.
아니 취권처럼 흐느적대며 갈지자로 세상을 내뺐다.
지렁이 글.
글 지렁이.

시간이 또 흘러 글만큼은 늙지 않기를 바랐다.
소년의 글은 무엇일까.
글의 판을 벌인 주체도, 글에 놀아나고 있는 주체도 모두 나 자신이어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된다면 경지에 오른 거다.
젊다 못해 어린 글,
시간 지나고 봐도 지금 글.

기억에 없다.

신주쿠 서구, 40층이 넘는 빌딩 꼭대기 층 레스토랑에서 홀로 청소를 했다.
새벽에, 서너 달 동안.
출근 첫날 내 몸집의 세 배만 한 쥐가 튀어나왔다.
도망쳤다.
울었다.
돈이 필요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출근했다.
간절하게 다가가니 쥐들도 나를 받아줬고,
이윽고 그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한두 달이 돼도 월급을 주지 않았다.
사장이 다니는 한인 교회까지 찾아갔다.
씨발, 타국에서 제일 믿지 말아야 할 게 자국인이라더니.
씨발, 서너 달치 합해 한 50만 엔 됐는데….
결국 월급도 못 받고 그만두게 된 마지막 날,
청소를 마치고 울고 있는 내게 쥐들이 찾아왔다.
아빠 쥐, 엄마 쥐, 아이들 쥐, 일곱 마리는 족히 넘었다.
다시 말하지만 모두 나보다 훨씬 컸다.
쥐들이 말했다. “당신의 친구라는 게 자랑스러워요.”

생생하다.
기억에 없다.

스티븐 킹이 자신이 쓴 기억에 없는 소설이 많았다고,
말도 안 된다고 그랬다.
옛날에는.

맘에 드는 영화를 만나기가 어렵다.

글 쓰는 건 위험한 일이다.
세상은 문학에 관심이 없다.

4961, 3681, 1649, 2689…
머릿속에 지네라도 들었나.
어디 가서 내가 10년간 이런 생각 했다고 말하면 안 된다.

 

이그니스 리 李兼 Ignis Lee

2025 Jewel & Watch #240

By EDITOR'S LETTER

거들떠도 안 보던 걔가 하필 내가 그렇게도 아끼던 애를 가져가 버렸다.

손을 본다.
바닥은 괜찮은데, 등이 늙었다.
손거상수술도 있다고, 트렌스젠더가 속삭인다.
효과는 있으나 수술 자국이 티가 많이 난단다.
마블 캐릭터 네일 아트나 버터 향 핸드크림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뭘 해도 예쁜 그 언니가 끼고 있던 예쁜 반지,
그 언니가 앞으로 꼭 살 거라던 팔찌,
엄두도 못 내지만 꿈에 매일 나오는 그 시계.
손을 본다.
필요하다.

거들떠도 안 보던 걔가 그렇게 사귀자고 졸랐을 때 받아줬더라면, 내가 그렇게도 아끼던 그 애를 빼앗기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됐다면 현재의 나는 거들떠도 안 보던 걔를 억지로 사귀어야겠지만, 그 누구도 몰래 내가 그렇게도 아끼던 그 애와 사귀고 있을 수 있었을까?

목을 본다.
정확히는 턱, 늘어졌다.
갖은 레이저와 시술을 경험했으나 턱을 깎지는 못 했다.
턱선이 날렵한 트렌스젠더 언니에게 DM을 보내 강남역 성형외과까지 찾아갔지만, 예약금 70만원만 날렸다.
겁난 것도 반, 더 처진다는 경고도 반.
귓불에 안착해 턱선의 처짐, 그 시작을 교란시킬 귀고리.
목, 턱은커녕 팔자와 미간 주름까지 기억상실 효과를 선사할 목걸이.
체인도 좋지만, 초원의 동물이든 전설의 생물이라면 더욱 흐뭇할 바로 그 목걸이.
목을 본다.
간절하다.

거들떠도 안 보던 걔가 진짜 하필이면 내가 그렇게도 아끼던 애를 가져가 버렸다.

1. 셋이 같이 만나주든가.
2. 내놔.

“또래가 좋아요.”

이 모든 게 거울 탓이다.

202509 #239

By EDITOR'S LETTER

K-팝에는 많은 공이 있다.
그중 우리 글과 말의 세계화에 그 어떤 언어도 해내지 못한, 불가사의한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어의 가사화.

나보다 더 정확한 발음으로 노래한다. 랩을 한다.
나보다 더 우리나라 사람 같은 얼굴로, 스타일로.
이름을 듣지 않았다면 차마 예측할 수 없을 정도다.
중국, 일본, 태국, 필리핀, 홍콩, 대만, 인도네시아···.
전 세계 콘텐츠를 장악한 K-팝 뮤지션의 실로 다양한 국적, 블러드.

“며칠 전 일곱 살 난 옆집 아이가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K-팝 가사라고 하더군요. 물론 그 아이는 미국 아이죠.”
미국 SM엔터테인먼트 SVP(시니어 바이스 프레지던트) 출신으로, 현재 타이탄콘텐츠의 CMO인
돔 로드리게스Dom Rodriguez가 K-팝의 미래에 대해 전망하며 들려준 에피소드다.

Step by step, oo baby, gonna get to you, girl~.
1990년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노래를 굳이 ‘영어’라고 생각하지 않고 불렀듯, K-팝이 한국어가 아닌 가사로서 전 세계에 울려 퍼진다.

언어는 공부다.
가사는 친구다.

언어는 암기력이다.
가사는 중독적이다.

언어는 읽고 쓰고 말하는 것이다.
가사는 듣고 부르고 춤추는 것이다.

“넌 K-팝으로, 아이돌로 장사하는구나.”
2015년 가을 〈데이즈드〉 편집장을 시작한 이래 꽤 긴 시간 종종 들은 말이다.
그때마다 리애나를, 저스틴 비버를 서양 패션 매거진에서 촬영하는 것과 대체 뭐가 다르냐며 맞섰다.
이젠 국내를 넘어 전 세계 온오프라인 서점을 장악하는 K-팝 아티스트의 매거진 커버를 볼 때마다 뭔가 ‘깊숙이’ 남다르다.

얼마 전 2016년 8월 8일 데뷔한 블랙핑크의 9주년 소식이 들려왔다.
2017년 4월호 제니의 첫 단독 커버를 담고, 제니가 서점에서 〈데이즈드〉를 들고 반가워하던 사진을 본 게 진심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축하할 일, 대단한 일, 엄청난 일.
차고도 넘치는 경사 속에서 내일을 명상한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격려가 심상치 않다.
그 무엇보다 우선 편견과 차별을 버린 포용 정신이 필요하다.
세계화된 내면으로 외치는 언어여야만 세대를 잇는 진짜 문화가 될 수 있다.

 

이겸
李兼
Guiom Lee 

202509 #239

By EDITOR'S LETTER

“널 의심하지 않아? 그런 느낌 알아? 시내에 나갔는데 마치 다 안다는 듯이 누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고, 사람들이 다 나만 보는 것 같은 느낌 말이야.” 애니스가 잭에게 묻는다. “그럼 그 동네를 떠나.” 잭의 대답에 애니스는 가당찮은 조언인 양 비아냥댄다. 2000년대 초반(벌써 20여 년 전이라니 놀랍지만), 그 시절엔 나도 그랬다. “여자친구 있어요” 그렇게 말하거나, “요즘 괜찮은 여자가 없네요”라거나, “무성애자예요”라고. 출근하면서부터, 그러니까 질풍노도, 부정과 혼돈의 10대를 거쳐 사회에서의 나는 어떤 가면을 쓴 채 살아야(만) 했다. 마치 애니스처럼 세상이 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는, 그렇지만 그 동네(사회)를 떠날 수는 없는. 이걸 어떻게 표현하면 네가 알까? 난데, 내가 맞는데, 내가 아니어야 하고, 그러니까 진짜 나 자신은 계속 작아지고 불쌍하고 또 그걸 인정하기 싫고, 그러나 그렇다고 가짜인 나로 살기엔 참을 수 없고, 병신 같고, 막 그런. 누군가는 그럴 거다. 네 그 불같은 성격에? 게다가 넌 그 어느 사회보다 열린 패션계에서, 그중에서도 최첨병인 패션 에디터였던 네가? 누군가는 모르니까 그러는 거다. 그 시절엔 발각돼서 쫓겨난 선배, 동료가 많았다는 걸. 마치 개죽음 당하는 잭을, 허구일 거야,라고 받아들이는 게 차라리 편한 너처럼, 나처럼. 2 결국 나는 둘로 나뉠 수 없으나 둘이 돼야 했다. 그리고 이 둘은 창의적 교류를 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했다. 사회의 나와 진짜의 나, 모두 매력적이어야 했고, 결국 사랑받고 싶었다. 그러려면 일단 그 두 개의 나, 그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야 했다. 꽤 오랜 시간 연구한 끝에 발견한 방법은 단순하되 아팠다. 내가 나에게서 분리돼 나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것. 내 손에 쥔 메스를 들어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 피가 낭자했고, 아리는 고통이 온몸의 구멍을 틀어 막았다. 욕을 못하는 게 다행이야. 아물 수 없는 공존, 곧 평화다. 확장이다. 숨 쉴 수 있다. 이보다 현명할 수 없다. 애니스와 잭, 나와 나, 예술과 패션, <데이즈드>와 메종 마르지엘라, 정희민과 조율. 아 참나, 먹고 먹히는 게 아니라니까. 그런 건 그런 거라니까. 죽도록 사랑할게Loved to Death. 그걸로만은 안 돼. 난 나를 둘로 쪼개봐서 잘 알아. 그래서 이게 맞아. 맹세할게. 그 경계를 허물어봐서 잘 알아. 메종 마르지엘라, 그러듯.

“Don’t you ever feel like people are suspicious of you? Like when you’re out in the city, and it feels like everyone’s watching, like they all know something?” Ennis asks Jack. “Then leave that town.” Jack replies. Ennis scoffs, as if the advice is absurd. It was the early 2000s. (Hard to believe that was over twenty years ago). Back then, I did the same. I used to say, “I have a girlfriend.” “I haven’t been meeting many women I really click with lately.” Or even, “I’m asexual.” From the moment I stepped out for work, I wore (had to) a mask— After the storms of adolescence, this was how I had to live in society. Like Ennis, under the gaze of suspicion, unable to leave “that town(society).” How do I explain this so you’ll understand? I was me—but I couldn’t be. The real me kept shrinking, becoming pitiful— and I didn’t want to admit it. But living as a fake me was unbearable. Pathetic. Messy. That kind of thing. Some might say, “With your fiery personality? In fashion, of all places? Weren’t you an editor—at the forefront of the most open industry?” Some just don’t know. Back then, we watched senior editors and colleagues get outed and ousted. Like how it’s easier to believe Jack died a fictional death— That’s how I coped. How you coped, too. 2 In the end, I couldn’t truly split in two. But I had to become two. And those two selves had to speak to each other. The public me and the real me— Both needed to be compelling. Both wanted to be loved. To get there, I had to erase the line between them. After years of grappling, I found a way— simple, but painful. I had to see myself from outside myself. I picked up the scalpel and sliced myself clean in half, from head to toe. Blood spilled. A deep, aching pain sealed off every part of me. It’s a relief, not knowing how to curse. An unhealable coexistence— That’s peace. That’s expansion. I can breathe. Couldn’t be wiser than that. Ennis and Jack. Me and me. Art and fashion. <DAZED> KOREA and Maison Margiela. Chung Heemin and Joyul. Oh, come on. It’s not about consuming or being consumed. It’s just what it is. I’ll love you to death Loved to Death. Love alone is not enough. I know this, because I’ve split myself before. That’s why this feels right. I swear. I know what it means because I’ve broken the boundary myself. Just like Maison Margiela does.

 

이겸
李兼
Guiom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