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운드리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 <Game Changer>, 제목이 사뭇 비장합니다.
‘게임’은 제게 놀이와 자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스포츠를 주제로 해 작품 전반을 구성했어요. 경기장 안에서 이뤄지는 스포츠는 보통 규칙과 방식이 정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이 변화했을 때에야 무언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됩니다. 요즘 제가 관심 갖고 있는 여성의 활동 영역에서 뭔가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를 직감하고 있어요.
여성이 게임 체인저로군요. 당신의 작업에서 여성들은 주어진 규칙과 방식에 굳이 순응하려 들지않아 보입니다. 동작이 눈에 띄게 크고, 강한 에너지가 느껴져요.
제가 표현하고 싶은 건 모든 여성과 소녀들이 내적으로 가지고 있는, 본래의 거친 에너지와 힘입니다. 모두 가지고 있지만 사회 속에서 길들여지죠. 이런 에너지를 드러내는 건 중요합니다. 실제 제 작업과 삶에 접근하는 제 태도와도 관련이 있어요. 이를테면 저는 작업을 할 때 온몸을 쓰면서, 작업실을 크게 돌아다니기도 하면서 여성들의 원초적인 에너지를 표현합니다.
오늘 처음 만났지만, 당신과 닮아 보여요. 특히 말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저 여성이요.
넘어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균형 잡기는 제게 매력적인 일이에요.(웃음) 전 실패할 위험이 있더라도 다양한 시도를 하는 걸 꺼리지 않아요. 실수를 받아들이면서 균형을 잡는 거죠. 저는 구도와 균형 잡는 일에 관심이 있어요. 여성들은 작품 속에서 어떤 극적인 상황 아래 손과 발을 뻗고, 어딘가 닿으려고 노력하면서 균형을 잡죠. 그게 때때로 지나치게 과장된, 터무니없는 장면이 되기도 해요. 이런 과장된 상황과 인물을 묘사하기를 좋아해요. 위험을 무릅쓰고 시도하다 보면 체면은 좀 구겨도 용기 있어 보이죠. 넘어지면 좀 어때요?
재미있네요. 유쾌하고요.
때로는 유쾌한 게 비판적이고 진지한 것보다 더 명확하죠. 경계심을 늦추는 게 중요해요.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이 작품에 이끌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길 바라요. 그러다 보면 관람객이 작품 하나하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고, 더 복잡한 층위를 읽어내 또 다른 질문이 파생될 수 있고요.
얼핏 분노가 읽히기도 합니다. 머리카락은 뻗쳐 있고, 눈썹이 올라가 있네요.
맞아요. 분노와 같은 강한 반응에 흥미를 느껴요. 제가 생각했을 때 분노는 한계를 넘어섰을 때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분노는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이면서, 많은 것을 환기한다고 생각해요. 억압이나 학습에서 비롯된 게 아니니까요. 우리 사회에서 분노는 과소평가된 것 같아요. 특히 여성들은 자신에게 ‘분노’라는 감정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부아르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했어요. 당신은 어떤 여성인가요.
열다섯 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어릴 때 저는 여성으로서, 여성에게 기대되는 행동이 있다고 느꼈어요. 예의 바르고, 수줍어하고, 순종적인 모습 같은 거요. 미술사에서 제가 관심을 두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여성들은 많은 경우 천재라고 불린 남성 화가들의 뮤즈에 그칠 뿐이었죠.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관한 이 모든 상황이 제가 가장 바꾸고 싶은 판도, 즉 게임입니다.
대상화, 성 역할에 관한 문제에 대해 일찍이 체감하는 바가 있었네요.
여성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데 질렸어요. 너무 구식이죠. 아마 1980년대 광고를 본다면, 그건 거의 농담처럼 느껴질 거예요.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야 했죠.
여성을 판단하는 ‘시선’의 주체는 오래도록 여성이 아니었죠.
많은 경우 남성의 시각에서 이뤄지죠. 하지만 제 그림에서만큼은 여성이 남성의 뮤즈나 대상화된 존재에서 벗어나 하나의 주체로서 스스로의 욕망을 좇아요. 하지만 어느 곳에서는 이 같은 일이 일부만 누리는 엄청난 특권이기도 하고, 때때로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죠. 이 가운데서 투쟁은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고, 그건 무서운 일입니다. 저는 제가 자란 지역에서 어느 정도 여성과 남성의 평등이 이뤄졌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믿은 거죠. 여성 예술가로서도 동등한 위치에 놓였다고 생각했었는데, 지난 2019년 미술 작품에 나타난 불평등에 대한 데이터를 한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때 여전히 여성은 매우 뒤처져 있다는 것과, 진정한 평등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배신감과 동시에 자각했군요.
네, 제 남은 인생을 뒤처진 상태로 보낼지도 모른다는 배신감 같은 게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다른 여성들과 연대해 남녀의 균형을 바로잡고 싶습니다. 이건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더 젊은 여성, 특권을 가지지 못한 다수의 여성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여성 예술가들이 ‘여성’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때때로 강력한 고발의 의미를 지니죠.
한때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MeToo 운동에서 발생한 논쟁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한편 남녀평등을 위한 투쟁은 전 세계적으로 계속되고 있어요.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죠. 그런 세계 곳곳 여성들의 삶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직 여성으로서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진정한 ‘나’보다 사회가 규정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행동해야 할 것만 같거든요.
몸보다 몇 배는 큰 캔버스 앞에 섰을 때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나요.
자신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육체적 반응, 감정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분노, 갈망, 강함 그리고 즐거움, 위험을 느끼고, 그러다 실수하기도, 이를 바로잡으려고 하기도 하고요. 작업실에서 저는 자유롭습니다. 그게 여전히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일지도 몰라요.
여성의 무엇이 이 판도를 뒤집을까요.
이미 역사적으로도 전 세계 여성들은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여성들은 더욱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어요. 따라서 여성의 존재는 가시적으로 드러나야 하며, 더욱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에게 기회를 준다면, 그들은 이 세상을 구할 거예요.
마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 작품은 관심이 있는 모두에게 향해 있어요. 실제로 많은 남성이 제 작품을 좋아하고, 지지합니다. 놀라운 일이자 제겐 희망이에요. 모든 사람이 제 작품 속 인물들의 에너지를 느끼고,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길 바라요.
Text Kwon Sohee
Art Song Yul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