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짱한 집 놔두고 호텔에서 잔다. 여전히 그 결심과 실천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 정확히 설명할 길이 없다. ‘호캉스’라는 어엿한 말이 어디서 튀어나온 것 같긴 하던데 백만 번 듣고 쓰고 읽어도 도무지 입에 들러붙지도 않고 볼수록 못생긴 말 같아서 그냥 영원히 죽이기로 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도시의 호텔에서 하룻밤 혹은 그 이상 외출하듯 잠만 자는 취미는 단순한 사치가 아니다. 말짱한 집에 기어 들어가 기절하는 일이 끔찍한 날이 있기 마련이니까.

한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서울의 호텔을 이야기할 때 맨 먼저 언급해야 하는 지역은 중구로 대표하는 명동과 소공동이다. 서울에서 가장 적은 인구가 살지만 해가 저물기 전까지 가장 많은 사람이 스쳐 가는 지역. 서울을 방문한 여행자들이 공항을 떠난 후 최초로 당도하는 곳. 정치와 경제, 종교와 문화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이 일대는 도시의 배꼽이라는 별명에 합당하며, 그만큼 크고 작은 호텔이 높은 밀도로 빼곡히 모여 있다.
명동에 있는 건 전부 아는 것들이었다. 명동의 진가를 알아본 건 스무 살이 훌쩍 넘어서다. 집을 떠난 서울살이가 한순간 쓸쓸할 때도, 명동 길바닥을 헤매다 다리가 아프거나 느긋한 풍경 위로 한적하게 쉬고 싶을 때도 명동성당은 늘 담보 없는 위로와 쉼을 주었다. 거리의 풍경이 변해도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명동돈가스와 명동교자야말로 진정한 서울 음식이라 말하고 싶다. 나는 그 음식을 먹고 두둑한 배를 만질 때마다 집을 생각한 다. 힙스터도, 럭셔리도, 도시의 불야성도 존재하지 않는 명동과 명동의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는 유난히 쾌적하다거나 아름답다거나 뭐 그런 측면이라기보다는 다만 멈춰 있다는 인상 자체 때문이다. 그런 공간이나 풍경에 유난히 애착이 있었으니, 연고도 무엇도 없는 곳에서조차 어떤 유대감을 느꼈던 것일 테다.

한자로 ‘밝은 마을’을 뜻하는 볕 좋은 명동. 르메르디앙 & 목시 서울 명동 호텔은 명동 거리 끝 새빨간 대문이 성벽처럼 둘러싸인 주한 중국대사관 바로 앞에 위치했다. 르메 르디앙 & 목시 서울 명동 호텔은 쌍으로 나란히 놓인 간판에서 알 수 있듯 전무후무한 듀얼 호텔 시스템을 도입했다. 끝 과 끝은 통한다고 하더니 15층짜리 복합 건물 한 동에 가격과 스타일, 타깃 고객층과 서비스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호텔이 공존한다. 알다시피 르메르디앙은 사부아 비브르Savoir Vivre의 유럽 문화와 스타일을 강조한 고급 호텔이다. 한편 목시는 기존 호텔 형식을 타파하는 도발적 콘셉트를 내세운 열정적인 면면을 자랑한다. 호텔 내 유일한 공용 공간인 4층에 이르자 르메르디앙과 목시 두 이름을 독창적으로 묶어 내는데, 우리는 여기서 갈림길에 선다. 기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 문으로 향하면 르메르디앙 서울 명동의 세계가 펼쳐진다. 공항 체크인 카운터를 연상시키는 리셉션 데스크와 비행기를 모티브로 한 벽 장식품이 눈길을 끈다. 천장에 별처럼 찍힌 모바일 펜던트 조명은 빛의 도시 파리와 ‘밝은 도시’ 명동을 동시에 상징한다고 한다. 리셉션 데스크 옆에는 로비 라운지 & 바 ‘르미에르’가 있다. 전통적인 호텔 로비를 우아하고 편안한 휴식 공간으로 구현했다. 낮에는 향긋한 차 한잔을, 밤이 들이치면 칵테일과 와인, 위스키를 원 없이 즐길 수 있다. 돈만 있다면. 라이프스타일 호텔 르메르디앙 서울 명동은 시대와 유행을 초월한 200개의 객실과 스위트룸을 갖췄다. 객실 입구에 있는 경첩이 달린 천장 높이의 전신 거울부터 침대 헤드에 설치된 항공기 날개 모양의 기하학적 패턴이 한동안 멈춰선 여행을 다시 꿈꾸게 한다.


기둥 왼쪽은 목시로 향하는 길이다. 르메르디앙과 분위기가 영 딴판인 목시 서울 명동은 ‘플레이 온Play On’ 콘셉트에 맞 춰 재미와 즐거움을 강조한다. 체크인은 프런트가 아닌 ‘바 목시 Bar Moxy’에서 칵테일을 주문하듯 진행되는데, 그 말마따나 체크인과 동시에 웰컴 칵테일 ‘갓 목시Got Moxy’가 무료로 제공된다. 바 목시는 로비에 자리해 투숙객이 식사를 하거나 친목을 다지는 공간으로 운영된다. ‘24/7 그랩앤고’ 셀프 서비스를 이용해 원하는 시간에 스낵이나 음료, 술 등 원하는 식음료를 자유롭게 가져갈 수도 있다. 바에는 칵테일이 메인으로 제공되는 ‘리퀴드 디너liquid dinner’ 메뉴와 다이닝 메뉴가 준비된다. 핑크빛 네온 사인이 시선을 끄는 복도는 마치 잘나가는 클럽이 연상될 정도인데, 이와 대비되는 공간감을 극대화한 소박한 객실이 특징이다. 모든 객실에 간이 의자와 각종 도구가 걸린 옷걸이 벽이 있다. 펼치면 바로 사용이 가능하고, 접어서 걸면 벽에 착 걸리는 극강의 실용주의. 한 건물에 두 간판이 걸린 르메르디앙과 목시에서 하룻밤씩 잠을 청한 아침. 호텔의 아침은 평소보다 부지런히 시작된다. 명동의 또 다른 고수 하동관 본점에서 뜨끈한 특곰탕을 후루룩 들이켜고 나섰다. 코로나19로 멈춰 섰던 명동 거리 곳곳에 한국말과 외국 말이 동시에 퍼진다. 밝은 빛이 들이치는 명동의 새로운 얼굴. 자, 그럼 이제 어느 곳을 고를까요.
Art Kim Hyo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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