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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플스 호텔의 복도 끝, 은은한 향이 공기 사이로 피어올랐다. 그 순간을 기억한다. 이탈리아 코모 호수의 빌라 데스테에서 처음 마주한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고요한 물결과 대리석 기둥 사이로 스쳐 지나가던 찬란한 드레스의 빛, 그 여운이 열대의 밤공기 속에 다시 스며들었다. 지난 4월, 빌라 데스테에서 선보인 샤넬의 2025/26 크루즈 컬렉션이 싱가포르의 전설적인 래플스 호텔로 옮겨 왔다. 코모 호수의 햇살은 싱가포르 바다의 습도를 만나, 또 하나의 새로운 패션 신scene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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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은 호텔 라이프를 떠올렸다. 호텔은 언제나 이야기를 품은 장소다. 도착과 이별, 그 사이의 느릿한 시간들. 객실 문틈으로 스며드는 오후의 빛, 벨보이가 들고 가는 슈트케이스, 그리고 침대 위에 던져진 실크 스카프 한 장. 이 모든 것이 크루즈 컬렉션의 무드 보드가 되었다. 빌라 데스테는 세상과 격리된 낙원처럼 고요하다. 물가에 부서지는 햇살이 오래된 회랑을 스치고, 손끝에는 한여름 공기가 감긴다. 그곳에서 탄생한 옷들은 느긋하면서도 찬란했다. 피치, 블루, 핑크 등 코모 호수의 컬러 팔레트와 빌라 데스테 오커와 옐로, 오렌지 컬러. 눈을 감으면 호수 위를 스치던 빛의 조각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그 여운은 싱가포르에서도 이어졌다. 래플스 호텔의 로비 라운지, 정원의 복도가 거대한 런웨이가 되었다. 모델들은 밝고 생동감 넘치게 걸었다. 마치 크루즈의 떨림을 그대로 품은 듯. 멀티컬러 시퀸 팬츠 슈트, 골드 루렉스 재킷, 핑크와 오렌지 라메의 점프슈트. 그들의 발걸음마다 부드러운 리듬이 피어났다. 섬세한 비즈 브레이드·시퀸·트위드 스커트 슈트와 플로럴 드레스는 빌라 데스테의 정원을 꼭 닮았고, 목련·철쭉·동백·협죽도는 향기로웠다. 그 모든 꽃이 샤넬 2025/26 크루즈 컬렉션에서 레이스와 자수로 다시 피어났다. 화이트 슈트의 단정한 선과 여유로운 균형, 그 안에서 샤넬이 말하는 우아함이 숨 쉬었다. 크루즈의 코드도 빠질 수 없다. 스윔슈트, 석양빛 피코트, 머린 스트라이프, 니트 카디건, 아이스크림 백, 커다란 선글라스, 그리고 발목의 실크 스트랩까지. 모든 것이 자유로운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장식이었다. 소피아 코폴라가 연출한 티저 영상처럼 현실은 조금씩 비틀렸고, 빛은 계속 번졌다. 그 와중에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머리를 스쳤다. 가브리엘 샤넬의 친구이자 코모 호수를 사랑한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속 여인처럼 우아하면서도 현실적인 그가 이곳에 여전히 살아 있었다. 쇼가 끝나자 래플스 호텔 정원에는 가수 레이의 라이브 음악이 울려 퍼지고, 인도네시아 뮤지션 리오 시딕의 트럼펫이 열대의 밤을 흔들었다. 싱가포르 아티스트 니콜렛의 DJ 공연이 한창인 가운데, 래플스의 밤은 쉬이 잠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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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당일 아침, 먼저 샤넬은 싱가포르의 예술·패션·디자인 학교에서 온 학생 420명과 또 다른 이야기를 나눴다. 앰배서더 틸다 스윈턴, 프로듀서 마거릿 장, 편집장 타일러 브륄레, 작가 어맨다 리 코와 샤넬 패션 부문 사장 브루노 파블로브스키가 모여 창의성에 대해 논했다. 지역의 창의성이 어떻게 세계적 상상력을 자극하는지. 그들이 말하고자 건 하나같이 자유다. 패션이, 도시가,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배우는 자유. 샤넬은 언제나 그 경계에 있다. 자유와 억압, 현실과 환상, 호수와 바다, 낮과 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시 한번 그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그 위에서 여유는 숨을 쉬고, 우아함은 새로운 생기를 얻는다. 싱가포르의 밤은 그 모든 순간을 담아,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
text BANG HOKWANG(BANG)
art KIM JIWON(JUNO)
Discover more in KOREA DECEMBER 2025 iss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