뎀나가 기습적으로 발표한 ‘구찌: 라 파밀리아’ 컬렉션은 기내 와이파이를 구매한 김에 하늘 위에서 먼저 봤다. 아니, 뎀나 당신의 구찌를 맨 처음 목격하고자 열 몇 시간을 날아가는 와중에 갑자기 이렇게? 밀란에서는 뭘 보여주려고? 의아했고 궁금했고 달리 방법이 없어 혼자 웃었다. 뎀나의 전복과 배반은 늘 흥미로운 물음표와 웃음만이 남는다.
밀란에 도착해 미룬 잠을 자고 일어난 늦은 아침, 호텔방을 나설 때 올 블랙 구찌 상자가 거기 있었다. 구찌 가문의 오리지널 문장을 보증하는 진품 증명서와 은빛 목걸이. 문장의 중앙에는 장미와 바퀴로 둘러싸인 기사가 백과 화장품 케이스를 들고 있다. 이는 아름다움과 성공을 향한 추구인 동시에 구찌의 근본이 ‘패션’임을 상징한다. 과감한 섹시함, 화려함, 어떤 담대함으로 쉽게 규정할 수도 있는 구찌는 모두가 알고 있듯 어떤 식으로든 드라마틱하다. 역사니, 전통이니 하는 순수한 금기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스토리텔링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뎀나의 구찌는 벌써부터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이만큼 차고 넘치는 듯하다.
뎀나가 더 가릴 것도 없단 듯 업로드한 첫 번째 구찌 컬렉션 ‘구찌: 라 피밀리아’에 이어 스파이크 존즈와 할리나 레인이 공동연출한 단편영화 의 소식이 들렸다. 밀란에서 그 스페셜 스크리닝 행사를 보기 좋게 공개할 참이었던 것이다. 뎀나는 이를 위해 증권거래소였던 팔라초 메차노테Palazzo Mezzanotte 본관 1층 전체를 극장으로 탈바꿈했다. 여느 쇼와 달리 에스프레소를 왈칵 엎지른 듯 브라운 빛 카펫이 바닥 너머 의자와 벽과 커튼까지 하나로 물들이며 사람들을 반겼다. 서라운드 사운드와 플로럴 모티브가 새겨진 세 개의 샹들리에가 선사한 경험은 단순한 사치 이상의 기묘한 노스텔지어를 자극했다. 그건 ‘구찌’라는 말로만 설명되는 기분이었다.
먼 친척을 간만에 만난 듯 뎀나가 유독 친근하게 손님맞이를 하던 극장은 어느새 차분해졌고 영화가 시작됐다. 의 기운을 입은 데미 무어가 대뜸 화면을 장악한다. 이미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는 라 메체나테La Mecenate 룩을 입은 데미 무어는 ‘바바라 구찌’ 같은 이름으로 그의 가족과 개성 넘치는 손님들이 모인 대저택 안에서 구찌의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식탁에는 숙명처럼 한 마리의 호랑이가 눌러앉았다. 그 호랑이는 오랜 사연으로 마음이 갈라진 가족 사이를 가로질러 소리 없이 걸어간다. 데미 무어의 머리칼에서는 비밀스러운 향기가 피어난다. 포도주를 따르는 손끝, 치맛자락을 스치는 낮은 음성들. “왜 패션이죠?” “왜 옷과 섬유, 신발이죠?” “왜 제 질문을 두려워 하시죠?” 찌르는 질문 앞에서 구찌의 직물처럼 교차하는 운명과 기억들. 뎀나의 구찌는 아코디언처럼 접혔다가 펴지는 시간 위에서, 바람처럼 스며드는 색채와 가족이라는 이름의 낡고도 따사로운 풍경에서 이야기를 맺고 끝낸다. 누구에게나 도달하는 결론. 삶은 대담한 패턴과 그 사이사이에 새겨진 부드러운 실밥들, 그리고 다시 사랑을 배우는 사이클. 그것이 바로 뎀나의 구찌, 가족의 세계다.
는 몽환적인 시간의 틈새에서 길을 걷다가 문득 마주친 한 편의 오래된 꿈 같다. 뎀나의 구찌는 그 어느 때보다 현란하고 대담하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는 사라지지 않는 상실의 그림자, 그리고 품위와 유머를 동시에 잊지 않는 이탈리안식 가족애의 미묘한 온도가 스며 있다. 가족의 이야기, 칵테일 잔을 기울이는 특별한 손님, 즐거움과 긴장감이 한데 뒤섞인 우아한 만찬. 때론 부드럽고 환상적이며, 때론 현실로부터 불쑥 걸어 나온 듯한 망설임. 에도 잔뜩 쏟아져 내린 ’구찌: 라 파밀리아’ 컬렉션은 서울을 포함한 전 세계 10개 도시의 구찌 매장에서 10월 12일까지만 짧고 굵게 판매한다. 그런 뎀나의 기세, 좀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