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고등학교에 문과, 이과가 통합됐다.
가슴이 따뜻한 의사, 논리적인 작가, 이런 수식어가 부질없이 들리는 것만큼이나 우린 때로 시스템 안에서 나뉨을 강요받는다.
“넌 문과적 인간이고, 난 이과적 인간이야. 그래서 우린 뭐가 달라도 달라.”
열다섯 살 시절 나눈 이런 대화처럼.
2년 전 패션, 뷰티, 피처, 디지털 등 기존 매거진의 업무 분담 시스템이
각자 지닌 고유의 성장과 개성, 역량에 한계를 둔다는 점에 반감이 들어 그 틀을 깨고 융합한 적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개념인 에토스Ethos, 로고스Logos, 파토스Pathos로 팀을 나눠
패션과 뷰티, 디지털과 인터내셔널, 피처와 패션 등 역할의 폭을 합치고 넓혔다.
이 개편안을 공표하는 순간 팀명의 괴랄함만큼이나 <데이즈드> 팀원들의 표정은 괴랄했다.
업계는 난감해했고, 심드렁했다.
올봄, 2년 여간 실행한 이 실험을 철회했다.
스스로 지르고, 스스로 덮은 결정이었다.
여러 사정을 고려했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자라와 버렸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면 철회가 아닌 포기다.
면접 때 자주 묻던 질문이 있다.
고정관념이 있는가, 스스로 자신의 틀을 깼던 일탈이 있다면 무엇인가.
질문은 만족할 만한 답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때로는 예의이고, 때로는 시간을 채우기 위함이며, 또 때로는 나 자신에게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답이란 게 놀랍게도 그 당시 감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 0.1초 앞의 미래도 볼 수 없다.
고로 평등하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혹은 할 수밖에 없는 그 뜻, 법, 상식, 잣대, 시스템?
이것이 진정 우리를 보호한다고 생각하는가.
차별과 갈등, 혐오가 빚어낸 비인간의 시간, 인간에게 주어진 그 자격이란 것.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지 않을 방법은 이 정도다.
용서, 포용, 나로서는 동정.
자본주의에 목맨 무언의 자유가 치솟는다.
겁난다.
우린, 같다.
거기서 거기다.
귀엽고 가여워.
이겸
李兼
Guiom 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