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패션위크의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여전히 패션 미디어에 종사하는 선배도 즐비하겠지만, 나름 20년 넘게 패션위크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소회를 말하자면 그렇다. SNS는 고사하고 휴대폰 기능에서 무엇보다 차이가 컸다. 사진가 없이는 무엇을 찍고 기록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패션위크는 오로지 패션 매거진의 지면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말 그대로 프레스, 바이어 등을 비롯한 우리만의 리그였다. 특히나 인종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그 배려나 포용성에서 확연히 달랐다.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패션 본고장을 자부하는 서양인과 아시아에서는 오로지 일본 정도만 패션위크의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중요한 프라이빗 이벤트에 초대됐다. 사진가나 비디오그래퍼만 기록할 수 있었던 백스테이지나 인터뷰 등 기삿거리도 주로 그들에게만 주어졌다. 2003년과 2004년 처음 간 밀란과 파리 패션위크에는 편집장, 기자를 포함해 우리나라 프레스는 고작 예닐곱 명에 불과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본지의 리프트를 받거나 쇼장에 몰린 인사들을 촬영하는 게 전부였다. 우리나라 연예인의 참석? 앰배서더? 이런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필자 주관적 의견으로 지드래곤과 태양이 참석한 파리 패션위크부터다. 물론 그전에 톱 배우 한두 명이 특정 브랜드의 초대를 받아 쇼에 참석하기는 했지만 지드래곤과 태양과는 좀 달랐다. 그들은 당시 하나의 쇼가 아닌 여러 개의 쇼를, 그 브랜드의 옷으로 갈아입은 채 참석했는데,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구름 같은 인파를 몰고 다녔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팬과 함께하는 패션위크. 그것도 한국 뮤지션이? 그들이 방문한 쇼 이후에 다른 나라 프레스가 내게 물은 것은 더 이상 ‘한국과 북한의 사이’가 아니었다. ‘지디와 태양을 섭외할 수 있느냐?’였다. 블랙핑크를 기점으로 이런 현상은 더욱 확장된다. 그 콧대 높은 브랜드의 광고모델로 등장하는 글로벌 앰배서더의 영역까지 열린 것. 코비드19 시기로 한동안 오프라인 공간이 닫혔다가 재개되면서 더욱 증폭된 우리나라 셀럽을 바라보는 전 세계 패션위크의 시선은 코리안 파워를 넘어 아시안 파워까지 몰고 왔다. 최근 패션위크 양상은 디지털 지표라는 결과를 동반하는데 한국, 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안 셀러브리티가 차트를 ‘말아먹는다’. 오늘날 서양 어느 지역을 가도 이른바 명품을 들고 다니는 이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오로지 아시아 혹은 중동이 명품 브랜드의 타깃 지역이라는 말은 더 이상 거짓이 아니다. 명품과 패션을 향한 2030세대의 시선과 철학이 바뀌었다. 패션위크 역시 마찬가지일 뻔했다. 파리이고, 밀란이고, 런던이고, 뉴욕이고 세간의 관심에서 사라질 뻔했다. 그나마 이만큼 디지털에서 패션위크라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안 셀러브리티의 영향력 덕분이다. 부정할 수 있겠는가. 더불어 패션계의 고질적 문제였던 인종차별의 벽도 깨부쉈다. 여전히 동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처참할 정도로 빈곤한 수준이지만, 아름다움을 보는 기준의 폭이 넓어지면서 아시안 프레스나 바이어의 위상이 달라졌다. 단순히 옷을 사주는 지역의 장사꾼이 아니라 콘텐츠를 제작하고 창조하는 제3의 프로덕션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한류를 비롯한 아시안 셀러브리티야말로 뉴 럭셔리이고, 패션위크의 미래다. 서양 셀러브리티가 아무리 패션위크에 간다고 해도 쉽지 않을, 팬들이 자발적으로 쇼장으로 모이고, 무료로 그들의 옷차림을 퍼 나르고 세상에 알리며 환호하는, 제대로 된 하이브리드 마네킹 역할에 동양인이 주인공인 시대가 드디어 도래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이상 지난밤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본 그대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

 

 

이겸
李兼
Guiom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