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럽습니다.
머리와 가슴이,
육체와 영혼이,
무엇에도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나 자신을 탓하자.
절대 남 탓 하면 안 된다.
그런데 솔직히 이런 생각도 들어요.
남 탓만 하는 건 정말 못나고 비루한 거지만
남 탓을, 그러니까 내 탓도 해가면서 남 탓을 좀 해도 되는 건 아닌가.
아닌가요?
말까요?
정말 어떤 때는요.
네, 요즘 같은 때는요.
쉽지 않아요.
누군가를 믿기가,
뭐라도 터놓기가,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주기가.
어찌 여기에 속내를 다 뱉을 수 있겠어요.
나름 오피셜한 공간인데.
그 정도 상식은 있죠, 네.
2025년이라는데요,
사람이 무서워지는 게 얼마나 슬픈지 알아요?
2025년이라는데요,
나를 잃고 싶지 않아요.
그저 내년 이맘때도
이만큼 흔들리고 고통스러워도
딱 이만큼만 이길 바라요.
그럼 돼요.
+ <데이즈드> 디지털&피처 에디터 소희가 지난 12월 7일, <데이즈드> 인스타그램에 남긴 글을 한 번 더 첨부합니다.
다리 부상도 핑계고요. 제가 그 현장을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보다 더 잘 쓸 자신이 없는 까닭에서요.
알록달록 동의할 수 없는 밤이지만 국회 앞 광장은 그 어느 때보다 알록달록했습니다. 2024년의 응원봉은 촛불보다 좀 더 예쁘고 가볍고 그립감까지 있다고 하니 꽤 효용적인 아이템입니다. 뭐라도 좋으니 그걸 하나 갖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큰 디스플레이 너머로 우원식 국회의장이 묻습니다. “우리 국회법에도 114조의 2,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귀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 이런 조항의 국회법까지 있습니다. 이것마저 훼손되는 것이냐.” 이에 파다하게 흔들리는 가지각색 불빛만큼은 어느 당론에 속한 게 아닌 것 같아 괜스레 웃음이 났습니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누군가는 묻습니다. 그러고 싶어도 이름 하나하나 불러줄 수 없는 다수가 어떻게 나 한 사람만을 좋아할 수 있는지, 그 마음은 대체 뭔지. ‘그러게요…’라고 그 알 길 없는 마음을 같이 되새긴 날이 많습니다만 오늘 그 이유와 명분에 대해서는 가까이서 본 것 같습니다. 생활의 관성을 깨는 ‘힘’은 결국 사랑으로부터 나옵니다. 구태여 <사랑의 기술>의 한 문장을 응원처럼 꺼내고 싶습니다. “사랑은, 한 사람과 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태도다.” 시장의 논리, 세계의 권력, 눈앞의 비합리에 안전하기보다 모험적이길 선택한 이들은 오늘이 처음이 아닐 겁니다. 대담하고 곱고 애틋한 마음입니다. 매주 토요일 알록달록한 응원봉과 함께하는 거국적인 연말 콘서트가 여의도광장에서 벌어질 예정입니다. 좀 남다른 역사가 여기 쓰여지고 있습니다.
이겸
李兼
Guiom 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