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에서 굴렀다?
아니 접질렸다?
아니 뒹굴었다?
아니 꺾였다?

왼쪽 다리가 부러졌다.
난생처음 신체의 일부가 부러져 봤다.
워낙 몸 쓰는 일을 안 하고 살았던 터다.

만화, 딱 그런 데서 본 것처럼
무릎 아래 다리가 밖으로 꺾인 모양이 됐다.
그 광경을 목격한 동료의 눈이 어떤 의미에서든 휘둥그레졌다.

근데 정작, 그렇게 문득 웃겼다.
진짜 아팠는데 배시시 실소가 터졌다.
‘아, 이거였구나.’

구급차 타고 실려간 파리의 병원에서
물 한 모금, 진통제 한 방 맞지 못한 채
덜렁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누워 있었다.
배고프고 아프고 서럽고 말도 안 통하고 죽겠는데 진짜 죽을 만큼은 아니었다.
‘아, 날 정말 사랑하시는구나.’

어찌어찌 다시 구급차에 몸을 싣고 12시간 넘는 비행 끝에
서울에 왔고, 몇몇 검사를 더 한 후 수술대에 올랐다.

알싸한 감각이 하반신을 다시 지배하기까지 꼬박 한나절이 지났다.

뭐라 뭐라 하는데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뼈가 아닌 다른 쇠붙이 친구들도
내 종아리에 함께 살게 된 거구나, 그랬다. 뭐.

수술한 지 보름 정도 됐다.
조금 다친 건 아니라서 당분간 목발과 휠체어는 필수다.

맞다.
걷고 싶다.

혼자 외출도 못 하고
제대로 씻지도 못 하고
예쁜 옷도 못 입고
메이크업도 좀 늘었는데 하지도 못 하고
다음 주 도쿄에서 친구가 큰 파티를 여는데 거기도 못 가고
아, 술과 담배도 못 한다.

맞다.
낫고 싶다.

그런데 진짜 진심으로 내 속을 말해 볼까?

괜찮은 게 아니라 다행이다.
다 못 해서, 천만으로!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파리의 나선형) 계단에서 철들었다?
아니 확인했다?
아니 도망쳤다?
아니 살았다!

이겸
李兼
Guiom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