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너무 많이 소비되고 있다.
오늘 밥 먹는데 2000년생 친구가 그러더라.
“전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욕심 자체도 많이 없어요. 그저 제가 숨 돌릴 시간이 충분히 있어야 해요.
적당히 벌 만큼 벌고, 사고 싶은 거 사고, 먹고 싶은 거 먹고 그냥 그렇게 살고 싶어요.”
‘살아봐라. 적당히가 되나. 그만큼 벌어서 사고 싶은 거 사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을 수 있나.’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삼켰다. 그 친구에게 사준 스시가 얼마짜리인지는 알까.
돈은 책임감이다. 늘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를 발행하고 영상 프로덕션 ‘스렉’을 운영하는
렉스트림을 만든 것을 진심으로 후회한다. 점차 규모가 커질수록, 그리고 몸집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되어버릴수록
함께 일하는 몇십 명, 거래처 몇백 명, 또 독자와 클라이언트 몇만 명, 아니 그 수를 가늠할 수 없는 뭐, 그 어떤 틀 속에서
그들의 미래와 생계까진 아니어도 뭔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정말 이상한 위치가 되어버렸다.
돈이 낳은 이 책임감, 이 굴레에서 ‘완벽히’ 노예가 되어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나를 파는 거다.
뭐, 행복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본디 나란 작자는 쉽게 말해 히피 근성이 충만하다.
속하는 것 자체를, 뭔가 내가 누굴 책임지는 것 자체를 혐오한다.
그런 내가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다가 스스로 쳐놓은 덫에 떡하니 제대로 걸려버린 거다. XX!
어떻게 할까.
결국 그 돈이 나를 이토록 외롭게 만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애정 결핍이 아니라 책임감 과잉에서 비롯된 자아분열이자 분리불안장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실로 위대한 일임은 알고 있다. 위인들, 선배들, 주변인들 등 다양한 직간접 체험을
통해 이것이, 이 버틴다는 것이, 이 견뎌낸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도 알고는 있다. 문제는 이것은 그 자리에,
그러니까 나처럼 스스로 쳐놓은 덫에 걸려 오도 가도 못 하는 처지가 된 사람만 이 존재가 주는 미친 듯한 무거움을
알 수 있다는 거다. 진짜 무서운 건, 돈 때문도 아니다. 수년째 난다 긴다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답을 구해 봤지만
대체 아래 질문들에 대한 답을 도저히 찾지 못하겠다는 거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그나저나 그 ‘적당히’란 무엇일까.
이겸
李兼
Guiom 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