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과 울컥 사이, 밀란에 왔다. 몇 년 만인지.
<데이즈드>에서 일하면서는 5~6년 전 여성복 패션위크 때 한 번 왔다.
밀란 남성복 패션위크는 직전 타 매체에서 일할 때 왔으니 진짜 10년 만인 것 같다.

“요즘은 쇼 티켓이 따로 없어요.”
연신 하드 카피 프린트 초대장을 확인하는 내게 후배 에디터가 일러준다.
서너 개의 쇼를 제외하곤 그저 바코드를 포함한 이메일 초대장이 전부다.
파리에서도 많이 겪었지만 밀란에서도 그러니 사뭇 다른 느낌이다.
밀란에서는 늘 바리바리 초대장을 한 줌 들고 다니던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 있는데,
이곳에 디지털이라니, 온라인이라니, 어찌 보면 파리보다 앞서가는 형국이다.

정이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또한 그만큼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강한 위기의식에서 발동된 과거와의
확실한 절연이다. 밀란에 자리한 전통적인 모 하우스 브랜드의 본사 마케터와 미팅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젊은 층은 확실히 파리 브랜드를 더 좋아합니다. 밀란을 대표하는 브랜드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밀란의 패션 오리지낼리티를 환기시킬 만한 교육을 해야 합니다.”

쇼는 대체로 좋았다. 밀란의 디자이너 모두가 벼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도발적인 뉴 디자이너도 눈에 띄었다.
시몬 크래커Simon Cracker, 프로논스Pronunce 등은 과거 밀란에서 선보인 남성복과 확실히 궤가 달랐다.
파리와 달리 여전히 온기도 동반됐다. 함께하는 디너, 따뜻한 프레젠테이션 현장, 분주하지만 서로에 대한
격려를 잊지 않는 차우·그라치에·프레고.

사실 이 글을 휴대폰 메모장에 끄적이고 있는 지금은
1월 16일 오후 2시 37분 밀란에서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다.
-그간 에디터스 레터를 비행기 안에서 꽤나 쓰곤 했다.-
이 시기 밀란에서 파리로 넘어가는 비행기 안 거의 모든 사람은 서로를 다 잘 안다.
모두 패션이라는 한 배를 탄 채 패션이라는 예술과 비즈니스에 평생을 걸고
바보스러우리만치 순수하게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노선의 비행기는 늘 아프다.
그들의 조울과 환희와 지침에 내가 고스란히 투영된다.
우리 모두 파리에 도착해서는 남성복 패션위크부터 오트쿠튀르까지 버텨내야 한다. 10일 이상 더 남았다.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초인이 될 수 있었기에 여기까지 달려온 내가 이젠 패션에 대한 사랑 하나만 가지고
온 힘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냉혹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데이즈드> 편집장으로서 9년,
<데이즈드>를 발행하는 렉스트림 대표(뭐, 현실이니까)로서 7년. 지금의 너와 몇 살 차이 나지 않을 때 시작해
어떤 것을 얻은 만큼 어떤 것은 잃었다. 결심하고 결정할 것이 많은 나날이다.

곧 파리 CDG(약자도 참 예뻐) 공항에 도착한다는 기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창가의 사람들이 창을 열기
시작한다. 창공의 온갖 빛이 나를 향해 쏟아진다. 눈이 부셔 눈을 감았더니 끝도 없이 그윽해진다.

Great Consuming Love.
“내가 사랑하면 된 거예요.”

나는 밀란이 아무리 그리워도 그리워할 수 없다.
온 힘을 다해 간절히 열망해도 이미 떠난 밀란이 될 수 없다. 곧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을 테지만
그 밀란에 닿을 수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결코. 밀란을 위해서라도, 절대로

 

이겸
李兼
Guiom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