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검정 스타킹
‘드러냄’의 행위에 매혹된 사람들. 내 몸을 사랑할 때 그렇다. 릭 오웬스는 로스앤젤레스 출신이다. 그에게 티셔츠와 반바지, 운동화는 많은 걸 함축한다. 유년 시절부터 수십 년간 그 옷차림을 고수한 그가 요즘 가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유는 하나다. 자신의 젊음이 유효하지 않음을 깨닫고 노출을 결심한 것이다. 그는 올해로 예순하나, 가장 최근에 느낀 변화라고 한다. 나의 신체 노출도 같은 결이겠지 하며, 그러니 되레 세상과 단절되고 싶을 때 나는 검은 스타킹으로 다리를 가린다. 속내를 모르겠는 새까만 색의 검정 스타킹이어야 한다. ‘감싸는’ 행위가 좋아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날도 감싸고 시작하자고.

아니쉬 카푸어
2012년 리움미술관에서 <아니쉬 카푸어> 개인전을 한 적이 있다. 그 선홍색을 잊지 못한다. 터진 내장이 사방에 튄 채 회전축을 돌며 움직이는 모양새였다. 히죽이던 내 모습도 기억한다. 카니발리즘까진 미친다 할 수 없고 파괴, 파열, 파손된, 하여튼 ‘깨트릴 파破’가 좋았던 것 같아. 그런 그와 재회하고자 국제갤러리로 향했다. 입구에 걸린 회화 작품과 점으로 만든 점 같은 조형작까지 발걸음을 사푼히 옮기면 그게 있다. 터졌다. 여전한 날것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불쑥 튀어 오른 혓바닥도 있었다. 아! 통쾌해, 배 맛 사이다처럼. 그러다 마지막에 본 달을 잊지 못하겠다. 바위 안에 초승달을 숨겨놓고는 다시 투명한 거즈로 감쌌다. 베일이란 뭔지 다시 떠올려보기도 하는데.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인지 또는 더 뽐내기 위한 은유인지 헷갈린다. 나는 초승달이었다.

아이엠 택시
가만 보면 택시란 것에 익숙해지면서 잘도 뻗어 다닌다. 기동력을 ‘+1’로 획득한 셈이니. 그 가운데에서도 아이엠 택시를 유난히 좋아하는 데엔 ‘자동문’이라는 답이 참 묘하다. 탑승과 하차 시 차문을 열어주는 느낌이 참 좋다. 조건과 감정 없는 환대가 더 반가운 때가 있더라고. 물질주의와 실용주의가 고안한 ‘원 플러스 원’보다 심적으로 개이득이다. 주변에 이런 대접의 뉘앙스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부르고뉴 레드 와인
시월의 가장 강렬한 자극은 혀에서 비롯된다. 혀끝의 미각이라는 통증이 얼마나 예민할 수 있는지 이제야 경험한다. 상대가 될 맛들은 비교적 단순하다. 와인 정도. 와인을 한 모금 입에 털 때 포도의 품종이 어떻고를 차치하고 온갖 과일과 미네랄, 바닐라, 소금 등 수십 가지 조합을 통해 기승전결을 이루는 걸 보면 이것 역시 작은 우주더라. 혀끝에 와인이 닿는 순간은 와이너리의 땅과 물과 날씨를 떠올린다. 딱 그만큼의 공상은 숨 막힌 현대를 살아가는 와중에 조그만 사치이자 어떤 꿈이 되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 왜 부르고뉴냐 하면, 2016년쯤, 장우철 선배가 쓴 책 <좋아서 웃었다>의 한 구절이 이랬어. “실은 서울에서부터 티슈로 겹겹이 싸 간 물건이 있었다. 나는 겉멋의 화신이니까 싸면서 일말의 민망함 따윈 없었다. 그건 바카라의 아르쿠르 와인 잔이었다. 부르고뉴에서 이 잔에 와인을 마시겠노라는 순진한 기쁨!” 욕망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우철 선배가 한번씩 보고 싶을 땐, ‘선배’라 부를 사람이 진짜 필요해서다. 어제까진, ‘오빠’였을 거야.

달은 가장 오래된 TV
1965년 뉴욕 보니노 갤러리에서 처음 선보인 백남준의 비디오 설치미술 작품명이자 새 다큐멘터리 제목. 부르고뉴 와인을 한잔 걸치곤 이수로 떠났다.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시사회가 있었다. 먼저 달만 보자면, 달은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빛이라 일컫는다. 그는 텔레비전 속 진공관에 자석을 넣은 뒤 신호를 조작해 주기별로 변하는 달의 모습의 표현했다. 시공간을 재조합해 만든 세상은 참 번쩍인다. 서로 다른 축을 뒤흔들 줄 안다는 것 자체가 선구자의 자질이로다. 이따금 나는 그런 환영 속에 살고 싶은 건 아닌지 자문한다.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했을 때처럼 세상 사람들의 이목이 한 줄기 희망을 품을 때까지 백남준은 멈추지 않았다. 기세를 이어 1984년 1월 1일, 프랑스와 미국에서 동시에 쇼를 생방송으로 진행하고, 독일과 한국에 생중계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인터넷 방송의 모태이자 누구든지 자신의 채널을 가질 수 있는 오늘날 유튜브를 예견했다. 이런 그의 엄청난 예지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한평생을 반추하면 서글퍼지는 점도 있다. 정작 그는 알아듣지 못할 20개 언어를 뒤섞어 구사하며, 한국·독일·일본·미국에 살면서 그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정착할 수 없어 떠돌아 다녔다고. 그의 얼굴에 드리운 뚝심이, 외로움이 마음에 쓰였다. 이런 불완전함이 되레 원동력으로 작용하기까지, 나는 당분간 좌절하진 못할 것 같다. 몇 날이고 달을 볼 때마다 그가 꿈꾼 자유를 떠올릴 것 같아서. 하여튼 한날 두 개의 달을 본 건 우연이 아니겠지.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시월에 뜨는 저 달은 문풍지를 바르는 달

오유라
Oh Yu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