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고 말지.
내겐 고약한 버릇이 있다. 집중이 필요할 때 입을 움직인다는 것. 다양한 분야의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게 업인 기자치고 나는 말수가 워낙 적다. 말하는 데 그다지 쾌감을 못 느끼는 걸 어.떡.해. 그 주둥이는 오롯이 먹는 데 충실한가 본데···.
집중할 일이 잦은 요즘은 뭔가를 씹거나 목구멍으로 흘려 보내는 행위에 힘쓴다. 일을 시작하기 전 워밍업은 필요하기
마련이니까.
과연 ‘씹는다’는 행위는 어디까지 포용할 수 있는가?
영국 프로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이 은퇴 전 마지막 경기에서 씹은 것으로 추정되는 껌이 경매에 나와 39만 파운드(약 6억 6000만원)에 낙찰됐다는데, 씹는 행위가 실제 집중력과 경기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걸 알고 있나. 이 행위는 뇌로 흐르는 혈류량을 증가시켜 뇌에 산소를 공급한다. 뇌에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면 뇌 기능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이로써 집중력이 향상되는 원리다.
그러니까 ‘씹는다’는 게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닌데, 문제는 누군가를 헐뜯기 위해 ‘씹는다’는 게 잘못됐다는 것이다.
맹목적 사랑을 하기에도 24/7은 부족한데, 대체 무엇을 위해 남을 비난하는 것인가.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는 비단 미국만의 사회문제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무분별한 폭력과 범죄는 날로 증가하고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K-콘텐츠를 빌려 우리 존재를 알리고 그 힘을 더욱 강화하는 것. LGBTQ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소수의 취향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배타적이어야 하나. 포용할 수 없다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고.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니 남 씹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거다. 모두가 다름을 인정할 때 우리 사회는 더욱 풍요로워진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 미움은 또 다른 증오를 낳을 뿐이다.
그러니까 씹고 싶으면 가장 원초적인 행위에 집중해. 그럼 인류애가 거기서 나온다고.
오유라
Yura O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