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쯤 로에베와 자신의 레이블을 디렉팅하는 패션 디자이너 조나단 앤더슨을 대면 인터뷰했다. 당시 나는 그의 팬을 자처하는 막내 에디터를 현장에 내보냈다. 위풍당당하게 인터뷰를 위해 떠난 그가 돌아오자마자 한마디 내뱉었다. “앤드로지너스androgynous란 말은 뺄 걸 그랬어요.”
순간 아차, 싶었다. 말해 뭐 하겠는가.
사전에 인터뷰 질문을 꼼꼼히 체크하지 못한 내 불찰이었다.
“그런 말은 쓰는 게 아니라면서, 여러모로 달가워하지 않더라고요.”
앤드로지너스,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스타일이라는 의미로 통용되곤 하지만 이는 여자와 남자의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고 시작하는 말이다. 유럽에서는 1980년대에나 썼다. 이 말을 하는 순간 스스로 분리주의자가 되는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나였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해지는 뼈아픈 기억이다.
상징, 기호 등으로 모두가 동등하게 연결된 지금의 세계에서 무언가를 나누는 것만큼 시대착오적 발상은 없을 것이다. 여성과 남성은 가장 원초적인 예일 것이고, 재미와 진정성은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예일 것이다. 심장과 머리, 육체와 정신, 인간과 기계 모두 마찬가지다. 분리해서 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곧 모두가 연결됐다는 의미다. 팬데믹 상황에 처해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디지털계의 지배를 받게 된 요즘은 더하다.
반분리주의, 이 개념이 가장 각광받는 곳은 대립보다는 서로가 다치지 않는 선에서의 이해를 추구하는 패션계다. 21세기 이전에는 주로 성별이나 신분의 경계를 논했다면, 2000년대를 넘어오면서 리얼 웨이와 런웨이, 데이 룩과 나이트 룩 등 TPO 부분에서 활발한 논쟁을 불러왔다. 그리고 2010년대 유용성과 럭셔리 혹은 스트리트와 하이패션이라는 서로 모순되던 개념이 통합되면서 반분리주의의 가치가 비로소 패션계의 필수불가결한 덕목 중 하나로 자리 잡는다. 2020년대 초반을 보내고 있는 요즘 우리에겐 다시 코로나19로 인해 인종적 이슈가 부각되기도 했지만 결국 인간과 로봇 혹은 아바타, 현실과 가상이 패션을 비롯한 전체적인 우리의 가치관에 분리주의를 용납하지 않는 시기가 될 것임은 확실하다.
이달 <데이즈드> 커버를 장식한 아바타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에스파와 하드웨어라는 개념을 진취적으로 도입한 매튜 M. 윌리엄스Matthew M. Williams의 지방시 모두 이러한 면에서 가장 뾰족하게 반분리주의 이념을 실천하고 있는 크리에이터라 볼 수 있다.
다시 봄, 다시 3월, 정확히 1년 전에는 파리 패션위크에 있었다.
그것이 기약할 수 없게 된 마지막 오프라인 패션위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당시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 이런 발상조차 구식이거늘. 온라인과 오프라인, 현재와 미래, 서울과 파리, 심지어 마감 시즌과 비마감 시즌, 이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
무경계, 초연결, 그리고 비분리주의의 시대.
나는 이제 그 무엇도 분리하고 싶지 않으며, 분리할 수 없(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