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순간이 많은 것을 결정한다.
엄마는 1월 8일부터 엄청난 산통을 느꼈다. 그러고는 60여 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태어난 날과 시각의 숫자를 마치 짜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1월 10일 낮 1시 10분에 나를 낳았다. 첫아이기도 했지만 유독 더 힘들었던 까닭은 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태어날 당시 몸무게가 4.5kg으로 시흥 병원 역사의 우량 신생아 기록을 갈아치웠으며, 출산 전 담당 의사가 엄마에게 쌍둥이일 거라고 이야기했을 정도였다.
온갖 고초를 겪은 엄마는 실신했고, 나는 첫 울음을 터트리지도 못한 채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엄마는 지금도 내가 태어났던 즈음이 되면 며칠씩 꼭 몸살을 앓는다. 나는 내 기억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원인 불명의 폐소공포증을 지닌 채 니트나 터틀넥처럼 몸에 달라붙는 옷은 입지 못하게 됐는데 다수의 의사가 말하길, 태어날 때 인큐베이터 안에 있던 것이 원인일 수 있다고 했다.
한 편의 전쟁과도 같았을 나를 출산할 당시 엄마는 고작 스물세 살이었다. 사실 그때 엄마는 고통의 시간을 단축시킬 방법을 알고 있었다. 수차례 의사가 물었다. “위험할 수 있으니 인공분만을 하는 게 어떨지요?” 엄마는 단호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말을 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있는 힘껏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연분만을 고집했다. 의학 기술이 요즘 같지 않던 시절, 어린 엄마는 그것만이 나를 지킬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장군. 믿기 힘들겠지만 그렇게 태어난 나의 첫 별명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넓은 어깨와 비범한 몸무게를 지닌 나를 경기도 고천의 이웃부터 버스 안내양까지 모두 장군이라 불렀다. 돌 때는 서너 살, 서너 살 무렵에는 초등학생이라 생각할 정도로 몸집이 컸다. 엄마는 그 별명을 무척이나 흡족해했다. 죽을 고생해 낳은 자식이 장군이라 불리니 그나마 뭔가 위로받는 느낌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때부터 살면서, 왜 누구나 있겠지만 정말 모두 놓고 싶은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나를 낳을 당시의 엄마를 떠올린다. 이것은 나를 잡아주는 데 꽤나 큰 효과가 있다. 새해가 됐고, 여지없이 내가 태어난 날도 찾아왔다. 어릴 때는 엄마가 아픈 게 싫어 생일이 다가오는 게 무섭기까지 했다. 문득 이런저런 잔상을 되새겨보니 이젠 엄마가 아픈 내 생일이 될 수 있는 한 오래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2001년생부터 2005년생까지 만으로 치면 아직 모두가 10대인 친구들이 빼곡히 담긴 2월호 커버를 보고 있자니 실로 새 시대가 됐음을 실감한다. 나의 10대 또한 바로 어제 같거늘, 새 시대라는 반복되는 굴레 속에서 <데이즈드> 편집장으로서 나 자신이 마치 남처럼 아득히 느껴진다. 창밖에는 누구도 모를 그때처럼 다시 눈이 내리고 있다
202102 #161

VALENTINO MILANO COLLEZIONE FASHION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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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디 셔먼의 ‘패션적’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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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 #1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