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런던에서 100여 일간 머물렀다.
영어 학원을 다녔는데 수업이 끝나면 꼭 집 앞의 펍에 들르곤 했다.
그곳에 도착하면 언제나 오후 4시 30분 무렵이었다.

내 행동 또한 일관됐다.
일단 펍에 들어가면 카운터로 직진해 큰 사이즈 맥주 한 잔과 올리브 한 접시를 주문한다.
그러고는 쇼디치의 교차로를 끼고 도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야외 테이블에 앉는다.
4개의 야외 테이블은 모두 높았지만 의자도 높았으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두 명이 앉는 테이블이라 한 번쯤 누군가와 같이 오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실현되진 못했다.
맞아. 쓰다 보니 다시 그 생각까지 나네.

자리에 앉은 지 6~7분이 지나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노랗다기보다 주황빛에 가까운 수염이 난 가게의 남자가 쟁반을 들고 다가온다.
그의 수염보다 훨씬 금빛에 가까운 맥주는 언제나 찰랑찰랑, 절묘할 정도로 한가득이다.
쟁반 위에는 스시 접시만 한 그릇에 담긴 올리브도 있다.
올리브 한 알의 크기는 거짓말 안 보태고 다섯 살 내 조카 주먹만 하다.
언제부턴가 서비스로 간장 종지 같은 데 땅콩도 담아 줬다.

황홀한 순간.
온전히 나만의 시간.

지금도 꼴깍 군침이 돌 정도로 목구멍을 타고 잘도 넘어가는 맥주.
무엇보다 압도적인 것은 전방위에 펼쳐진 군상이다.
에이스 호텔과 올드 스트리트 사이를 오가는 다양한 사람의 표정, 옷차림, 걸음걸이, 희로애락의 몸짓은
그 자체로도 살아 있는 패션쇼이자 연극이고 영화다.

맥주 한 잔을 딱 비우는 데는 채 20분도 걸리지 않는다.
이쯤 하고 돌아가야지 할 때면 어김없이 나를 붙잡는 것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올리브다.
올리브 한 알을 맥주 두세 모금에 나눠 쪼개 먹으니, 한 잔에 열 모금 정도라 치면
맥주 한 잔을 비우는 데 올리브 네다섯 알이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중간에 땅콩도 먹으니 그보다 못할 때도 많다.
그러다 보니 꼭 애매하게 남은 두세 알의 올리브.
날로 먹자니 기분이 또 어디 그런가.
작은 잔의 맥주로 대신하자니 그 또한 영 찝찝하다.

오후 5시 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세상.
남은 올리브 한 알을 입에 물고,
두 번째 시킨 맥줏잔의 바닥의 보이는 바로 그 순간,
이제 행인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석양이라 해야 하나, 햇볕이 딱 눈을 내치는 느낌이 드는데
그때다.
내 삶의 중심에 내가 있다고 느낀 순간이.
맞아, 그때였다.

“저는 삶의 중심에 제가 있어요.”
이번 커버의 주인공, 지수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 유독 가슴을 울린다.

삶의 중심에 나 자신이 있다는 것,
아마도 나는 쇼디치의 그 펍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나 보다.

+
그리고 이 에디션은 어려운 시기, 딱 그때 그 올리브처럼 맥주 한 잔에 충분히 넘칠 뿐 아니라
맥주 한 잔 더를 부를 수 있는 그런 선물 같은 존재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