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괜찮지?”
엄마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다.
‘좋아요, 버틸 만해요, 기도해주세요,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힘들어요, 두고 봐야죠.’
후보는 많은데 정답이 없다. 늘 엄마의 질문은 이런 식인데 이번만큼은 한결 고차원적이다. 조카 키우느라 정신없는 엄마도 느끼고 있다시피 이런 시대를 산다는 것은 훗날 교훈이 된다 한들 분명 모두에게 힘든 일이다. 패션 에디터로서 이야기한다면 지옥과도 같은 상황이다.

패션 매거진 시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업종으로 취급하지 않을 정도로 늘 논외의 영역이다. 무료로 배포되는 멤버십 매거진까지 합쳐봤자 채
스무 곳이 되지 않는 데다 이번 사태로 그마저 문 닫은 곳도 생겼다. 노조도 없고 지원도 없다. 이런 힘든 시기라 한들 영화계처럼 독립영화를 돕자는 챌린지도 없고 업계를 지켜야겠다는 기부 문화 따위는 더더욱 없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패션 매거진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던 유럽과 미국 또한 사정이 좋지 않아 보인다. 등 미국의 큰 패션 매거진 회사조차 해고와 감봉 등 비참한 뉴스가 쏟아진다. 유럽과 아시아의 몇몇 매거진은 화상 통화나 3D 기법으로 커버를 제작하는 등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100페이지 분량으로 한 호를 완성하거나 남녀 버전을 통합하는 등 콘텐츠 자체를 축소하고 있다. 앞으로가 더 문제인데, 패션 매거진의 주된 수익 기반인 하반기에 담아야 할 브랜드의 광고캠페인 등이 촬영조차 어렵게 되면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 디지털로 치른다고는 하지만 2021년 S/S 시즌 컬렉션도 어떻게 될지 오리무중이다.

그럼에도 내가 좌절하지만은 않는 이유는 패션 매거진 에디터가 진화하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특히 우리나라 패션 에디터는 더욱 칭찬받아 마땅하다. 단연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 에디터들은 섭외뿐 아니라 스타일링, 인터뷰, 사진가 및 스태프 어레인지까지 콘텐츠 제작을 총망라하는 프로듀서로서 역량을 갖추고 있다. 나는 아무리 훌륭한 사진가와 모델이 있다 해도 좋은 에디터 없이는 결코 좋은 콘텐츠가 나올 수 없다고 믿는다. 톱클래스 사진가도 에디터의 역량에 따라 패션 화보의 수준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패션 화보는 사진가의 예술일 뿐 아니라 에디터의 예술이기도 한 것이다.

더불어 우리나라 에디터들은 세계에서 가장 디지털화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 패션 매거진의 각 소셜 플랫폼 콘텐츠 제작 수준은 가히 세계적이다. 월간을 넘어 일간으로 소개되는 콘텐츠의 양 자체가 방대함에도 기획력과 창의력 등 퀄리티 자체가 대담하고 세련됐다. 각종 IT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한 혁신적 시도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면은 물론 영상 제작에도 능한 멀티플레이어 에디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국제적 감각은 그 어떤 분야와 견줘도 손색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며, K-Pop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성장을 바탕으로 기획된 수많은 콘텐트는 에디터 각자의 시야를 문화 전반으로 확장시켰다. 여타 어느 나라 매거진보다 브랜드와의 관계가 밀접한 에디토리얼이 많은 특성은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타협할 수 있는 비즈니스적 역량도 키우게 했다. 1인 미디어 시대에 발 맞춰 진행부터 취재, 편집까지 전방위에 걸친 능력을 지닌 이른바 스타 에디터도 탄생했다.

이 모든 것을 바탕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패션과 뷰티 업계는 물론 엔터테인먼트와 문화 예술계 전반에 걸쳐
패션 매거진의 에디터가 첨병이 돼 일하고 있다. 바야흐로 에디터의 시대다.

우리가 이 험난한 시기에 풀어야 할 숙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존재한다. 먼저 에디터 입장에서 보자면 당연히 스스로 안위하지 않고 성장해야 한다. 업무에 한계를 두지 말아야 한다. 쉽게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도전과 실험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에디터라는 허울에 갇혀 오만하지 말되 에디터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에디터를 공급하는 운영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먼저 한 명의 연습생을 한류 스타로 키워내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처럼 장기적 안목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 일반 회사원이 아닌 새로운 계약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에디터 한 명 한 명이 스스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패션 매거진을 넘어선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닌 프로덕션의 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모쪼록 패션 매거진을 발행하는 운영자의 철학이 가장 중요한 시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엄마, 괜찮아요.”
‘괜찮냐’는 질문에 ‘괜찮다’고 대답하는 것이 가장 당연한 것이자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 때로는 말이 앞서는 것도 나쁘지 않는 법이다. 이 글이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훗날에도 ‘괜찮게’ 기억될 수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