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 BYE
신민아 씨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실로 오랜만에 민아 씨와 촬영하는 거다. 연기는 물론 패션 아이콘으로서 최고 정점을 달리는 그는 패션 에디터에게는 실로 매력적인 피사체다. 그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더하고 싶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그의 오랜 스타일리스트 강윤주 실장 등 모든 스태프와도 긴밀하게 연락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잘 마치고 새로운 10년을 시작하고 싶다. 더불어 나도 성장하고 싶다. 다가올 10년이 기대되고 또 기대된다.
위 글은 지금 얘기가 아니다. 2009년 12월호 매거진에서 패션 에디터로 일하던 당시의 모습을 끄집어낸 단상이다. 데자뷔처럼 2019년 12월호 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때 이후 딱 10년이 흘렀건만, 매체와 직함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나는 신민아 씨를 촬영하기 위해 준비했고, 잘하고 싶었고,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고, 스타일리스트 강윤주 실장과 성실히 연락했고, 이 촬영을 잘 마치고 새로운 10년을 시작하고 싶었다.
당연히 새로운 10년에 대한 큰 기대도 품고 있다.
2010년, 시작은 좋지 못했다. 2월 초 2년여 간 다니던 가 폐간했다. 그 소식을 통보받은 바로 다음 날 나는 캘빈 클라인 진과 함께 해외 화보 촬영을 하기로 돼 있었다. 비행기표는 물론 호텔 예약도 다 마쳤고, 게다가 모델은 연예인이었다. 지난 몇 달간 월급도 못 받고 쫓겨나게 생긴 마당이었지만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이 촬영을 어떻게든 수습해야 했다. 당시 캘빈 클라인 진의 마케팅 담당자 이정은 씨가 큰 도움이 됐다. 재빨리 다른 매거진으로 이 촬영을 넘긴 것이다. 그러나 모든 진행과 기획은 이미 내가 한 상황, 다니던 직장이 사라진 고통을 뒤로한 채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 촬영이 끝나고 동남아 어디선가 그 마케터와 스태프를 붙잡고 통곡했다. 서울에 도착하니 그 마케터가 객원 에디터라는 명목으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금액, 30만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30만원은 한두 달 뒤 입금됐고, 그 화보도 매거진에 실렸다. 그 매거진은 다름 아닌 였다.
살길이 막막해진 나는 주변의 도움으로 한섬 마케터로 한동안 지냈다. 이라는 책도 냈다.
그 후 2011년 8월, 창간한 에 패션 디렉터로 합류했다. 같은 해 6월, 파리 패션위크 기간에 당시 톱 모델이던 알렉산더 조핸슨과 창간호 커버를 촬영했다. 혈혈단신으로 밀란에서 이미 컬렉션 취재와 토즈 화보 촬영을 마친 후 파리에 도착했던 터라 몸은 천근만근 상태였다. 그럼에도 파리에서 열린 패션쇼를 모두 본 후 촬영을 위해 파리 곳곳을 누볐다. 나를 제외한 사진가, 헤어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모든 스태프는 프랑스인을 비롯한 유럽인이었다. 얼마나 더웠는지 땀이 물처럼 흘렀다. 남은 커버 컷, 사진가가 몽마르트르 언덕 정상에서 찍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는 20대 초반으로 젊었다. 차가 갈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었다. 옷을 산더미처럼 들고 언덕을 걸어 올랐다. 정상까지 가는 길은 지금 생각해도 거칠면서 아늑하다.
그렇게 완성한 커버 컷에는 알렉산더 조핸슨이 푸른 하늘과 대비된 빨간색 니트를 입고 있다. 옷은 모두 디올 것이었다.
에서 편집장을 맡고 난 후 첫 커버도 디올이었다. 발행인이 되고 난 후 첫 커버도 디올이었다.
얼마 후 로 옮겨 꽤 다녔다. 고통은 빛으로 승화된다. 그곳을 다니던 중 사랑을 만났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딱 오늘이 그날로부터 2000일째다.
2015년 10월호부터 편집장이 됐다.
팀에는 나 말고 패션 에디터 한 명과 어시스턴트 에디터 한 명이 더 있었다. 편집장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은 그 두 친구가 다였다.
축하의 꽃을 정말 많이 받았다. 200개도 넘었던 것 같다. 행복했다.
2016년 1월 10일, 데이비드 보위가 죽었다. 내 생일이기도 했다.
2017년 9월호부터 발행인이 됐다. 10평 남짓한 논현동 사무실에서 시작했다. 두 패션 브랜드에서 쓰고 남은 의자와 가구를 선물해줬다. 나머지 가구는 이케아에서 샀다. 배송비를 아낀다고 택시에 실어 들고 와, 조립비를 아낀다고 에디터들이 이틀 내내 조립했다. 총 여섯 명으로 시작했다.
그중 두 명은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 네 명도 잘 살고 있길.
2019년 5월, 성수동으로 회사를 옮겼다. 이곳을 오게 된 이야기 또한 판타지 드라마인데 너무 길어 패스한다. 사적으로 만나면 들려주겠다.
오픈 파티를 열었고, 밴드 혁오가 무료로 공연해주었다.
2019년 12월호에는 신민아 씨와 더불어 두 디자이너의 인터뷰를 실었다.
수식어가 필요 없는 릭 오웬스와 지난 30년 넘는 시간 동안 에르메스 남성복을 지켜온 베로니크 니샤니앙.
맥락은 다르지만 두 창조자가 한 말은 같았다. “삶이 다 그렇죠.”
나는 딱 1980년생이라 10년 주기에 따라 나이 셈이 남들보다 더 편하기도 하고 더 아프기도 하다. 결국 이렇게 나는 빼도 박도 못하고, XXX로 간다.
“네, 삶이 다 그렇죠.”
마지막 페이지 무렵부터는 에디터 중 몇몇의 2010년대에 관한 개인적인 리포트를 담았다. 현재 에는 스물세 명이 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