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다는 게 무엇인가.
세상 모두가 다 착할 수 있을까.
착하길 강요하는 세상에서 문화가, 예술이 창조될 수 있을까.
패션이든 음악이든 뭐 여튼 예술이라는 영역은 영감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순응보다는 저항에서, 그 대비되는 묘미를 더욱 크게 느낄 수 있다.
미안하지만, 착하고 선하고 좋은 것보다는 못되고 악하고 나쁜 것,
‘good thing’이 아닌 ‘bad thing’에서
사실 예술이라는 것이 영근다.
미래를 왜 로봇이나 반도체 같은 기술에서만 찾으려 하는가.
미래는 문화에 있다.
문화가 언어 이상임을 K-Pop이 증명하고 있고, 문화가 산업 이상임을 한국 영화로 파생되는 수많은 비즈니스를 통해 모두가 체감하고 있다.
패션 쪽은 많이 아쉽다.
디지털 시대에 가장 유용할 수 있는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숫자에 집착했다.
인플루언서의 틀에 갇혔고, 창작보다는 모방으로만 이어졌다.
K-Pop과 한국 영화의 부흥기에 충분히 더 성장할 수 있음에도 여전히 구태의연한 스타 마케팅에 맴돌았다.
물론 세상도 언제나 그렇듯 도와줄 마음조차 없었다.
유일하게, 모델들은 대단했다. 유리창을 깼고, 더 깰 거다.
패션계 종사자로서의 각성과 별개로 착함이 만연한 세상에서 예술적 허용에 대한 인식의 무지함은 격렬하게 아쉬운 부분이다.
예술의 기초가 되는 다양성을 위한 배려의 미학이 존재하지 않음이 슬프고 처량하다.
우리가 지금 만들어놓은 규범이라는 것이 결코 답은 아니다.
마치 남녀칠세부동석처럼 구태의연하고 시대착오적인 것에 둘러싸여 우리 모두 착각하고 사는 것일 수도 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나이를 다르게 계산하고, 현재 중국보다 더 유교적 가족주의에 갇혀 있는 것 같지만 이혼율은 엄청나고 출산율은 최저다.
착함을 강요하지 마라.
이 나이에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지 마라.
스스로 이 정도는 도덕적으로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허용 범위, 그 잣대의 틀을 깨라.
예술이 고프다.
대중이 요구하는 ‘착함’의 틀에 갇혀 이 땅에 몇 없는 귀한 천재들이 부디 하향평준화되지 않길 바란다.
개인의 자유가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인 곳이 되어야만 세계를 장악할 만한 예술과 문화가 자라고 미래가 꽃핀다는 것을 확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