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YOUR BEST YOU ARE LOVE
파리에 가면 꼭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re’를 가고 싶었다. 장 폴 샤르트르는 내게 뮤즈 같은 사람이었는데, 그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카페 드 플로르에서 나눈 시간들의 냄새라도 맡을 수 있다면 내 존재감은 지금보다 현실의 지배를 덜 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기회는 빨리 왔다. 2003년 겨울, 잡지사 에디터를 한 덕분에 패션위크 참여차 파리를 가게 됐다. 20대 초반 혈기왕성하던 나는 샤를 드골 공항에 내려 북역 근처인 10구의 엘리베이터는커녕 계단조차 낡은 6층의 호텔 방에 짐을 풀자마자 그곳으로 향했다.
카페 드 플로르는 9시가 넘은 밤이었다. 그날의 옷차림마저 기억나는데, 거금을 들여 구입한 에디 슬리만이 만든 디올 옴므의 흰 머플러가 포인트였고, 겉옷은 디올 옴므스러운 H&M 사파리 재킷이었다. 파리 통신원(아마 미리 예약해준)과 한국에서 함께 출발한 두 명의 동지도 함께였다. 강낭콩 색 의자에 앉아 ‘킁킁’ 샤르트르의 구토 찌꺼기라도 맡으려고 할 때쯤, 자그맣게 파리 통신이 이야기를 건녰다.
“저기, 그가 있어요.”
칼 라거펠트였다. 동양인으로서 미국 패션 매거진의 중심부를 뚫고 있던 스테판간Stephen Gan과 함께였다. 내 손에는 사진과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산요의 노란색 작은 카메라가 들려 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던 혈기왕성한 시기였기에 가능했던 부탁, 도저히 그 사진을 찾을 길이 없지만 분명 그렇게 첫 파리, 첫 카페 드 플로르에서 그와 사진을 찍었다. 쿵쾅거리던 심장 소리가 여전히 생생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런던, 밀란, 파리를 전부 다 돌기는 무리한 스케줄이었다. 런던에서의 패션위크가 끝나고 밀란으로 가기 위해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계속 투덜댔다. 비까지 왔다. 나 스스로에게 ‘이제 부디 네 나이와 체력을 인정하렴’ 다그치며 눈을 감았다.
“그가 떠났대요.”
서울의 지인이 칼 라거펠트가 세상을 떠났다는 외신의 기사 링크를 더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운 좋게도’ 직접 본 그의 생전 마지막 피날레가 돼버린 뉴욕 메트로 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린 지난 샤넬 공방 컬렉션부터 카페 드 플로르에서의 추억까지 머릿속에 소환됐다. 그 앞에서 나는 스물세 살이기도 하고, 서른아홉 살이기도 했다.
자크 드 바셰르Jacques de Bascher. 밀란에서 펜디 쇼를 보며 진정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원조다운 그의 역량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다가 파리에 도착한 첫 날 밤, 자크 드 바셰르를 떠올렸다. 밀란에서는 후배 에디터와 한 방을 써 별다른 생각을 하기에도 힘들긴 했다.
사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던 칼 라거펠트의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알려진 것은 2017년 발행된 전기 작가 마리 오타비Marie Ottavi가 쓴 자크 드 바셰르 자서전 를 통해서다. 자크 드 바셰르는 1951년 베트남 사이공에서 태어난 귀족 집안 출신의 사교가로 칼 라거펠트와 20년 가까이 연인 관계를 유지했다. 그들의 사랑은 어떤 의미에서 장 폴 샤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의 관계만큼이나 남달랐는데, 라거펠트는 오타비에서 “나는 자크 드 바셰르를 사랑했으나 우리는 신체 접촉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I infinitely loved that boy but I had no physical contact with him”라고 이야기했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더불어 자크 드 바셰르는 이브 생 로랑과 은밀한 관계를 맺는 등 자유롭고도 심미적인 둘의 관계는 서른여덟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자크 드 바셰르가 에이즈로 사망하면서 끝나게 된다. 자크 드 바셰르가 죽기 전날 밤, 라거펠트는 함께 있었다.
“칼 라거페트는 그의 어머니와 1989년 에이즈로 죽은 자크 드 바셰르의 골분을 섞어 흩날려질 것이다.” 샤넬의 발표가 이어졌다. 라거페트는 항상 자신의 장례식은 없을 것이며, 죽은 후에는 유골 가루를 자크 드 바셰르와 섞어 항아리에 담아달라고 이야기했다. The Beat Goes On. 샤넬 쇼에 도착하자 자리에 칼 라거펠트와 가브리엘 샤넬이 함께 있는 일러스트가 이 말과 함께 놓여 있었다. 쇼를 보는 내내 나는 패션보다 사랑을 생각했다. 사랑이 없는 패션은 사과나무에서 오렌지 향을 맡으려 하는 것이 아닐까.
카페 드 플로르에 가게 된다면 꼭 너와 함께여야겠다.



